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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복) 연중 제33주일 독서・복음 묵상
  • 김수복
  • 등록 2017-11-17 18:53:59
  • 수정 2017-11-17 18:5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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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잠언 31,10-13.19-20.30-31) 해설

<훌륭한 아내를 얻음은 큰 은총이다>


잠언의 끝에 나오는 ‘훌륭한 아내’에 대한 예찬은 지혜를 다루는 이 책의 결론에 걸맞다.


이스라엘 백성은 근동의 지혜 문학을 소화하여 하느님께 대한 자기의 체험과 조화를 이루게 하려고 노력했다.


옛 현인들은 인생에서 아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재삼 강조했지만, 오늘 독서에 나오듯이 이스라엘 백성도 한 걸음 더 나아가 훌륭한 아내는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커다란 선물이요 은총이라고 말한다(잠언 18,22. 19,14. 집회 7,19). 또한 훌륭한 아내를 구체화한 지혜 자체로 여긴다(잠언 31,30). 남편은 그런 아내에게서 든든함과 기쁨을 느낀다(11-12).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그런 아내를 자기를 이해해 주는 가장 가까운 친구로 느낀다(19-20).


예언자들이 자주 이스라엘 백성과 인류의 충실치 못함을 꾸짖기 위해 간음한 여인이라는 상징을 사용했듯이, 지혜 문학에서는 더 낙관적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훌륭한 아내를 하느님의 말씀을 무조건 신뢰하고 따르며 자기 자신을 서슴없이 바치는 인류에 견주고 있다.


인류는 훌륭한 아내처럼 하느님의 사랑을 다소곳이 받아들이고 하느님 뜻이 실현되도록 충실히 협력하고 몸 바쳐야 한다.


시편(127) 해설

보라,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이렇듯 복을 받으리라


이 시편은 성전을 향하여 순례하면서 부른 노래이다. 첫 부분에서(1-3절) 사제들은 계약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복을 상기시킨다. 순례자들은 다시 한 번 계약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어 ‘아멘’이라고 응답한다(4절). 그러면 사제들은 복을 빌어준다.


신자의 생활과 생애 전체는 하느님과 맺은 계약에 비추어보면 하느님의 친밀한 벗이 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제2독서(1테살 5,1-6) 해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바오로와 실라스는 유다인들이 일으킨 소동 때문에 밤을 새워 테살로니카에서 피신해야 했다(사도 17,1-9). 신앙을 받아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소수의 테살로니카 신자들은 충분한 지도도 받을 수 없고 의지할 데도 없었다. 거기에다가 박해자들의 추적과 행패가 자못 심했다. 이 작은 교회의 장래를 염려한 바오로가 그들의 신앙을 다져주고 사랑을 키워주고 희망을 불러일으키려고 이 편지를 썼다.


오늘 독서는 죽은 사람들의 운명과 주님의 오심에 관한(4,13-18) 실천적인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실 정확한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참조. 마르 12,32). 이는 마치 도둑이 어느 시각에 들지 모르는 것과 같다(2절). 그 날은 예기치 못할 때 갑작스럽게 닥칠 것이다. 인정 없는 부자들이 자기네들만 풍요를 노래하고 있을 때 갑자기 멸망이 그들에게 들이닥칠 것이다(3절).


빛의 자녀들, 낮의 자녀들은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으며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그 날이 도둑처럼 갑작스레 들이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 날이 어서 와서 구원이 완전하게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학수고대한다(4-5절). 여기에서 나오는 실천적 결론은 명백하다.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복음(마태 25,14-30 또는 25,14-15.19-20) 해설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마태오 복음서 저자는 이 비유를 종말론에 관한 말씀들 속에 끼워 넣는다. 마태오는 하느님 나라의 법을 부지런히 또 충실하게 준수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 비유를 싣고 있다. 동시에 하느님 나라에 자기 스스로의 힘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판단을 지적하고 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의 은총이지만, 그 은총을 받으려는 사람의 협력이 또한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론은 뻔하다(29절).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결실을 맺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종교적인 국수주의에 빠져 있는 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의 계획에서 제외되기 쉽다. 그리고 교회도 자기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데 쓰이는 도구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 울타리 안에 안주하여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처럼 생명을 바치지 않으면 구원에서 제외되기 쉽다.


세상에서 큰 사업을 하고 세도를 휘두르는 지위가 중요한 것이 결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관계에 쏟는 인정의 깊은 정도이다. 정의감과 사랑의 뜨거운 정도이다. 하느님 나라에서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마음에 들도록 하느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묵상


참된 교회개혁


그리스도의 제자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교회가 인류 전체 앞에서 또 그 안에서 오늘날처럼 자기 본질과 수행해야 할 임무에 관하여 심각한 역사적인 위기에 처한 적이 별로 없을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그 공동체(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관하여 다양한 질문과 연구를 편 바 있다.


교회가 인류에게 바쳐야 할 특수한 봉사와 헌신은 어떤 성질의 것이어야 하는가? 교회가 자기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떤 길을 가고 어떤 방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사회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 구조와 조직과 제도를 끊임없이 시대와 장소에 맞추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새로운 의식(意識)


오늘날 이 시대에, 우리는 어느 누구든 지구라는 한 마을에 속해 있음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인류는 이제 한 가족처럼 살지 않으면, 한 가족으로서 연대성을 살려내지 못하면 망하고야 말 것이다.


그 같은 의식화 교육은 각 사람이 마음을 바로잡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신문, 잡지, 라디오, 텔레비전, 인터넷 같은 홍보수단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이제는 통신수단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지구는 어쩔 수 없이 한 마을처럼 되었다. 지구상에 일어나는 온갖 사건과 문제가 신속하게 보도되고 전달되며, 세계 어느 곳 어떤 나라의 사건도 자기 나라와 무관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생활에 그 영향이 파급된다. 마치 한 나라의 정책 결정과 경제운영이 개인생활을 당장 직접 조건 지우는 것만 같다.


우리는 세계가 사회적‧경제적으로 심한 차별과 불균형으로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다. 바야흐로 세계는 크게 두 부류로 갈라진다. 소위 남북문제이다. 가난한 나라들과 부자 나라들로 갈라진다. 굶어죽는 사람들과 향락이 넘쳐 정신과 마음이 병들어가는 사람들로 크게 갈라진다.


한 나라 안에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인류는 급기야 투쟁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영영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교회와 세계

 

이러한 세상 현실 속에서, 교회가 설 땅은 과연 어디이며,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은 과연 어떠한 것인가?


아직도 교회가 독선과 선민의식에 갇혀 개인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공덕을 착실히 쌓아 가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세례를 받아 교회 조직에 들어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식으로, 교회 밖에 있는 복음을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나 무지렁이같은 후진국의 수많은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한 구원사업이야 성령께서나 하실 일, 우리와 별로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닫힌 사고방식에 사로 잡혀 있는 한, 교회는 그 존재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


이스라엘 백성이 선택받은 목적이 인류의 구원에 있었듯이, 교회가 선택받은 목적도 인류의  구원에 있다. 인류가 죄악과 불의와 미움과 분열과 전쟁의 올가미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자녀의 정의(공평)와 친교(인정의 나눔)와 단합을 위하여 몸과 생명을 바치라는 목적으로 교회가 선택받고 세워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도구로 삼아 인류를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한 밥상에 앉는 한 식구로 만들려 하신다. 당신을 아버지로 모신 인류가족을 만들어내시는 일이야말로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이다.


교회(신자들의 공동체)의 사명은 그 같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져 하느님의 나라가 오도록 목숨을 걸어놓고 몸 바치는 데 있다.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세상, 권력과 재물을 지키고 키우기 위해서라면 무력행사와 전쟁도 서슴치 않는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하느님의 것을 공평하게 사용하고 누리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 친하게 지내는 세상으로 바꾸기 위하여 목숨 걸고 몸 바치는 막중한 사명을 교회와 신자들이 지고 있다. 그 사명은 비단 교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지고 있는 사명이기도 하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인류가족’을 당신 아버지께 바쳐드리고, 영원한 나라로 건너가게 하실 것이다.



연중 제33주일 독서·복음


제1독서(잠언 31,10-13.19-20.30-31)

<훌륭한 아내를 얻음은 큰 은총이다>


훌륭한 아내를 누가 얻으리오? 그 가치는 산호보다 높다. 

편은 그를 마음으로 신뢰하고 소득이 모자라지 않는다. 

그 아내는 한평생 남편에게 해 끼치는 일 없이 잘해 준다. 

양모와 아마를 구해다가 제 손으로 즐거이 일하고 

한 손으로는 물레질하고 다른 손으로는 실을 잣는다. 

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준다. 

우아함은 거짓이고 아름다움은 헛것이지만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은 칭송을 받는다. 

그 손이 거둔 결실을 그에게 돌리고 그가 한 일을 성문에서 칭송하여라. 


시편(127)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이 모두!


제2독서(1테살 5,1-6)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 시간과 그 때에 관해서는 여러분에게 더 쓸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날이 마치 밤도둑처럼 온다는 것을 여러분 자신도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평화롭다, 안전하다.” 할 때, 아기를 밴 여자에게 진통이 오는 것처럼 갑자기 그들에게 파멸이 닥치는데, 아무도 그것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어둠 속에 있지 않으므로, 그날이 여러분을 도둑처럼 덮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합시다. 


복음(마태 25,14-30 또는 25,14-15.19-20)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필진정보]
김수복 : 살레시오 수도회에서 10년 동안 수도생활을 하고, 그 동안 서울 가톨릭 신학대학 6년을 수료했다. 40년 동안 5개 언어에서 성서와 신학 관련 서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번역노동자였다.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 둘, 손자 넷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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