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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기적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나
  • 이기우
  • 등록 2026-06-05 19:56:43
  • 수정 2026-06-05 19:5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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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마인츠 대성당 앞에 세워진 성 보니파시오 동상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2026.06.05)

: 2티모 3,10-17; 마르 12,35-37


그리스도 신앙을 선포하는 교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리스도 즉 메시아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에는 그분 자신도 당신이 메시아이심을 공공연하게 밝히지 않으셨고 그분이 선포하신 복음의 실체도 가려져 있었습니다. 단지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를 실천하셨던 행동만이 알려져 있었을 뿐입니다.


이 모든 것, 즉 메시아 신앙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것은 성령께서 강림하시고 나서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신자들이 깨달음을 얻고 나서부터입니다. 이 깨달음으로 사도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다고 선포하기 시작했으며, 그 선포의 일환으로 생전의 예수님께서 하셨던 것처럼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기적을 일으키는 신적인 권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신자들도 공생활 당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던 예수님께 대한 기억을 되살리고는 놀랍게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의 증언에 귀기울이는가 하면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찬 예식으로 예수님을 기억하기 시작했으며, 그분이 당부하신 대로 가진 것을 자기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고 기꺼이 가난한 이들과 나누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신자들의 공동 생활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가 초대교회에서 실현되기 시작한 하느님 나라의 사회적 실체였습니다. 이를 확인한 사도들 역시 성령으로 충만하여 더욱 용감하게 예수 부활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고, 이에 대해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 다가온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신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해 온 율법 학자들의 반응, 즉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며 따라서 나자렛 목수 출신으로서 출신이 의심스러운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라는 데 대해서 예수님께서 스스로 당신의 신성을 다윗의 고백을 인용하며 입증해 보이시고 이를 두고 군중이 기뻐했다는 보도를 들었습니다. 군중은 예언자들이 예로부터 알려주었던 메시아 도래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는 징표로 보았기 때문이고, 그 반대로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이 신봉해 온 율법 때문에 도리어 예언의 진실에 대해 눈이 가리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시는 예수님


그러니까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는 대로, 예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두루 갖추신 분이십니다. 하느님이시자 인간이신 존재이신 그분의 신성과 인성 모두가 그분을 메시아요 구원자로 믿게 만드는 근거입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그분의 신적 능력을 목격했으면서도 공연히 “메시아는 다윗의 자손”이라는 성경 구절을 들어 그분의 신성을 모함하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그래서 훗날 마태오는 통한의 심정으로 자신의 복음서 첫머리에 예수님께서 다윗의 후손이심을 증명하는 족보를 실었습니다(마태 1,1-17). 인성으로서도 그분은 메시아이심을 입증해 보이려던 시도였습니다.


또한 마태오와 루카는 신성으로서도 그분은 메시아이심을 입증해 보이시고자, 성령의 개입으로 인한 잉태와 동정녀로부터의 출산을 아울러 보도하였는데, 루카가 더 치밀하고 상세하게 보도하였습니다(마태 1,18; 루카 1,26-38). 그뿐만 아니라 인성으로도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는 사실도 마태오가 빠짐없이 보도하였고(마태 2,1), 특히 루카는 로마황제의 호구조사 칙령에 의해 요셉이 자기 본관인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고 그 때 만삭의 몸이었던 마리아가 동행했다가 거기서 예수 아기를 출산하게 된 역사적 배경까지도 자세하게 언급해 놓았습니다(루카 2,1-7).


복음서들이 기록된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예수의 신성과 인성 문제가 중요했던 배경은 이것이 이스라엘을 당신 백성으로 삼으셨던 하느님의 역사적 선택이 약속대로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는 데다가, 그 이스라엘이 예수의 신성을 알아보지 못해서 하느님의 선택이 새 이스라엘로서 그리스도 교회로 옮겨졌다는 교회의 정체성 및 그리스도인들의 신원을 확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니케아 공의회, 325년)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을 당연시하되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소홀히 여겨지는 오늘날 교회의 현실과 신자들의 신앙 세태도 문제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신성이 여전히 우리가 진리로 고백되어야 하는 계시라면 부활하신 그분은 당연히 교회와 신자들의 현실에 성령으로서 현존하심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현존에 대한 의식이 없이 인습적인 고백 정도로만 인식되는 이상 그분은 사기지은을 포함하여 그 어떠한 부활의 징표도 우리에게 보이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벌써 반세기 전에 공의회가 열어 젖힌 교회 쇄신의 문과 신앙 활성화의 기회 그리고 이를 원동력으로 삼아 이룩되어야 할 복음화 과업이 마냥 늦추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초래된 배경이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공생활 초기부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복음선포를 위하여 기회가 될 때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기적을 여러 차례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느님의 존재와 권능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는 사도들로 하여금 당신이 하셨던 그대로 기적을 일으키게 현존하심으로써 초대교회의 복음선포가 가능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이러한 예수 신성의 현실은 오늘날 우리 교회와 신자들의 현실에서도 여전히 필요합니다. 믿음으로만 일어나는 이 신성의 현실이 기적을 일으키고 이 기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또 다른 믿음을 불러일으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신성에 대한 믿음이 메마른 이상,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요한 기적을 일으키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신앙 고백은, 믿음이 부족하고 용기도 모자랐던 제자들을 사도로 변화시키시어 초대교회를 로마 복음화의 도구로 삼으셨던 역사적 사실에 비추어, 오늘날 믿음이 부족하고 용기도 모자란 우리들도 그분이 부르고 계시고 사도로 변화시키실 것임을 알게 해 줍니다. 현실은 늘 문제 투성이이고 상황은 언제나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우리의 능력으로만 돌파하라고 예수님은 다그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둘이나 셋이라도 마음을 모아 당신의 이름으로 구하기만 하면 그 기도를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셨으며(마태 18,19),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보증하셨는데(18,20) 그 시점이 무려 세상 끝 날까지(28,20)입니다. 그리하기만 하면 당신보다 더 큰 일도 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장담하신 그분은(요한 14,12), 산이 바다로 옮겨지는 기적조차도 이루어진다고 믿으면, 그대로 되리라는 말씀(마르 14,23)으로 복음화 과업에 대한 역사적 상상력을 부여하신 바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그분의 인성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분의 신성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기적을 일으켜 주실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신 구세주이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을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신 구세주로 고백하는 한, 즉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한 그분이 우리를 도구로 삼아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의 현실로 초대교회에서 이룩된 현실처럼 지금 여기에 다가올 것입니다.


하지만 초대교회에서 이룩된 복음화의 과업은 사도 바오로의 고백에서 입증되듯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따르는 선교 활동의 열매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가 에페소 교회를 물려준 티모테오에게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이는 모두 박해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확실히 믿는 것을 지키십시오.”(2티모 3,12.14.)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께 대한 고백과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고백으로 일치되어 있다면, 그리고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성경의 말씀을 진실되이 받아들인다면, 우리 역시 온갖 선행을 할 능력으로 유능하게 복음화 과업에 나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성 보니파시오는 7세기 무렵에 영국에서 태어나 독일을 비롯한 유럽 북부 지방에 온갖 선행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재건한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인 ‘보니파시오’(BoniFacio)는 좋은 행동 즉 선행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세례명으로 받으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면서, 우리 모두도 선행으로 복음화의 길에 나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필진정보]
이기우(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사전담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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