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3일 목요일, 눈
첫눈, 첫사랑, 첫 키스, 첫 만남, 첫 경험…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그 처음은 각자의 기억 속에 각별하다. 올해 처음 내리는 눈 같은 눈이다. 서울 오는 길에 흰 눈이 펄펄 버스 차창 앞에 내려앉아 창 안의 사람들을 기웃거린다. 어제 느지막이 버스표를 샀더니 맨 앞자리는 하나뿐이어서 보스코와 따로 앉았다. 좀처럼 드문 일이다. 언제부턴가 내가 운전 않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하지만 앞자리는 괜찮아 늘 미리 앞자리 표를 구매한다.
유림에 산다는 옆자리의 얌전한 할메는 서울 고덕동에 사는 둘째딸한테 간단다. 딸만 넷인데 큰딸은 며느리가 애를 낳아 수발하느라 못가고, 둘째와 셋째랑 호주에 사는 넷째 딸에게 가는 길이라고 얼굴이 발그레 자랑을 하신다. “어머님, 딸만 낳으셨으니 비행기 타는 거예요. 구찌베니(루즈)까지 바르시고 곱게 차리고 나오셨네요. 이쁘요.”
나더러 ‘애가 몇이냐? 어디 사냐? 뭐하냐?’ 한참 호구조사를 하시고 나서는 작은아들이 신부라는 말에, 스물두 살(55년 전) 새색시 때 성당 다니던 신랑과 상림 옆 성당에서 ‘가짜 결혼’(아마 관면혼배를 말씀하시는 듯)을 했는데, ‘칠남매 맏이로서 죽어라 일하면서 먹고 살다보니 성당 다니는 것도 잊었다’는 말씀. 지금이라도 나가시겠다면 내가 댁으로 가서 모셔 가겠다니까 ‘요즘은 절에 다니는 중’이니 그럴 필요 없단다. 그분이 절에 다니며 착하고 행복하게 살든, 성당을 다니든 하느님께서는 별 문제 안 느끼실 게다.
어제 내 차를 ‘끝까지 고쳐서 타겠다’고 보스코 앞에서 선언을 했더니만 내 속셈을 알아챘는지 오늘 아침 후진 기어를 넣자 차가 안 움직인다. 차표는 사놓았겠다, 난감해서 진이아빠에게 함양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보았다. ‘뭐야? 이젠 안심하고 망가지자 작심한 거야? 너 이러면 폐차시킨다, 알간?’ 그러자 체크 등이 들어오긴 하지만 차가 뒤로 움직인다. 겨우겨우 달래 함양까지 나오긴 했는데 서울에서 돌아와서가 문제다. 꼭 요즘 내 몸 상태랑 똑같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는 게 몸 아닌가.
서울 쪽으로 차가 밀리기 시작하자 버스기사는 경부선으로(중부고속도로가 주행선) 바꿔 달린다. 버스 전용차로로 승용차들 약 올리듯 달렸다. 한강이 보이고 롯데 타워가 옆으로 지나가자 강변역이 다 왔구나 싶었는데 바로 200m를 눈앞에 두고서 한 시간이 걸린다. 서울은 정말 징그러운 동네다. 오죽하면 두더지도 아니면서 사람 체면에 땅속으로 기어 다닐 생각을 다 했겠는가!
우이동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서니 3시가 좀 넘었다. 칼국수와 돈가스를 파는 집에서 늦점심을 먹었다. 예전에 있던 식당인데 몇 번이나 시작하고 망하고 떠난 자리다. 내가 모르는 애엄마가 아들과 함께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학원에 데려간다며 나가는데 먼저 나가 문에서 기다리던 대여섯살된 아이가 신발을 내던졌다. 다행히 빗나가 식탁을 넘어 의자 위에 떨어졌는데 아이를 자세히 보니 다운증후군이었다. 엄마는 우리더러 ‘다 드시고 그대로 놓고 가셔요’라며 얼른 애를 데리고 나간다. 그 난감한 표정이 같은 어미로서 아프게 다가온다. 가끔 와서 음식 사먹는 일로 저 엄마를 응원해야겠다.
이런 식당일을 하며 아이를 돌봐야 하는, 장애아를 키우는 삼중고의 여인. 저런 아이를 두면 으레 아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엄마 혼자서 아이를 키우며 책임지고 돌보는 세상이다. 여자이기에, 엄마이기에만 가능한 일이다. 아아, 왜 하느님이 엄마한테 한번 태어나보고 싶으셨는지, 누구를 ‘엄마!’하고 불러보고 싶으셨는지 알만하겠다.
보스코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지리산에서 우이동까지 끌고 온 밀차에는 정옥씨가 마련하여 골목입구 ‘샘터슈퍼’ 아줌마에게 전하는 감사의 선물이 담겨져 있었다. 엽이가 우리집에 살 때 택배와 우편물 등을 받아 주었고, 심지어 결혼식에도 와주었기에 그 고마움이 가득 담긴 참깨, 들깨, 들기름, 거피한 들깨, 감말랭이… 그리고 감사의 편지까지 소반에 싸여 전달되었다. 고마움을 알고 감사하는 마음과 그 손길은 받는 사람은 물론 주는 사람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 시어머니가 저렇게 마음 착하니 엽이네 신혼집에 쌍둥이라도 들어앉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