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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는 왜 낙태죄 찬반논란 중심에 서게 됐는가.
  • 편집국
  • 등록 2017-12-06 11:52:01
  • 수정 2017-12-07 17: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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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출처=가톨릭프레스 자료 사진)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 청와대 공식 답변 중에서



낙태죄 폐지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다. 논란은 지난 9월 3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약 합법화 및 도입을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이 올라오면서부터 시작됐다. 


한 달 동안 진행된 해당 청원에 최종 235,372명이 참여했고, ‘30일 동안 20만 명 이상의 국민들이 추천한 '청원'에 대해 정부 및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하기로 함’에 따라 청와대는 지난 11월 26일 공식 답변을 내 놓았다. 


조국 민정수석은 답변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매우 소중한 권리이지만 처벌 강화 위주 정책으로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상의 것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은 물론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비혼이든 경제적취약층이든 모든 부모에게 출산이 기쁨이 되고 아이에게 축복이 되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며 국가의 의무와 역할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 (사진출처=대한민국청와대 영상 갈무리)


조 수석은 ‘태아 대 여성’, ‘전면금지 대 전면허용’과 같은 식의 대립구도를 넘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단계라고 명확한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청원을 계기로 정부는 법제도 현황과 논점을 다시 살펴보게 되었다”면서 2010년 조사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내년에 당장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임신중절 현황과 사유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가 선행될 때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된 논의가 한 단계 진전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입장이었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탈출 20,13)


이와 관련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이하 주교회의) 입장은 확고하다. 주교회의는 앞선 11월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최근 청와대 누리집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낙태죄 폐지 논란과 관련하여 한국 천주교회는 심각한 우려와 함께 낙태죄 폐지 반대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며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가톨릭교회의 교리는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계명과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탈출 23,7)는 하느님의 법은 언제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지켜야 하는 살아 움직이는 법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교회의는 “아기를 임신하고 있는 어머니의 자기 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보다 더 소중한가? 혹은 어머니의 사회경제적 사유가 태내의 아기를 죽일 수 있는 판단 기준이 될 수 있겠는가?”라면서 인간의 생명은 결코 다수의 의견으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우리 모두의 깊은 성찰이 필요한 때다. 우리의 삶과 의식 속에 어느덧 ‘죽음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깨어있는 양심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고 밝혔다. 


“생명에 대한 책임은 낙태죄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교회 가르침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천주교신자의 편지가 언론에 공개됐다. 모태신앙이며 ‘라파엘라’라는 이름으로 유아세례를 받고 성당에서 일상을 보냈다는 한 여성은 < 오마이뉴스 >를 통해 ‘신부님, 우리들을 감옥에 보내실 건가요?’라는 제목을 붙여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합니다”라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라파엘라 씨는 “12월 3일 천주교에서 대대적으로 낙태죄 폐지 반대 서명을 시작합니다. 여성의 성을 오로지 재생산을 위한 것으로 보고, 임신중절을 여성의 선택으로 두지 못하는 것에 충격이 큽니다. 남성의 성은 책임 없는 것으로 두고, 여성의 성에 책임을 지우는 것이 여성 억압이라는 것을 진정 모르는 것일까요?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요?”라고 심정을 고백했다. 


그러면서 “생명에 대한 책임은 낙태죄로 길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잘 양육할 수 있는 환경에서 길러집니다. 부디 천주교에서는 낙태법 폐지 반대 서명과 그 움직임들을 중단하고, 진정한 생명을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다시 재고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로 편지를 끝냈다. 


‘새로운 균형’은 무엇일까


▲ (사진출처=cpbc News)


현재 천주교회는 서명운동과 함께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낙태죄 폐지 반대 청원을 올리고, 사제들에게 ‘서명과 온라인 청원을 위한 설명서’를 배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청원 동참 운동을 펼치고 있다.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자기결정권, 무엇이 먼저랄 것 없이 소중한 가치이며 인간의 생명은 결코 다수의 의견으로 생사가 갈릴 수 있는 대상이 아님도 확실하다. 그렇다면 이 논란에 과연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청와대 공식입장을 밝히는 과정에서 조국 민정수석이 인용해 논란이 된 교황 프란치스코의 발언이 있다. 주교회의가 공식적으로 제공한 교황 발언 번역문은 이렇다. 


“교회의 교의적 도덕적 가르침들이 모두 동등한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사목은 일관되게 제시되어야 하는 다양한 교리를 서로 연결 없이 전달하는 일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선교 형태의 선포는 본질적이고 필요한 것에 집중됩니다. 또한 더욱 매력적이고 강하게 끌어당기는 것, 엠마오의 제자들에게 그랬듯이 마음에 불을 댕기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의 도덕적 뼈대까지도 짚으로 만든 집처럼 무너질 위험이 있고, 복음의 신선함과 향기를 잃고 맙니다. 복음적인 제안은 더 단순하고 깊고 발산적이어야 합니다. 이런 제안들에서 도덕적인 결과들이 나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새로운 균형’이 무엇을 뜻하는지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며, 무엇인가에 집착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 다는 것은 확실 해 보인다. 


시민들은 똑똑하다. 이번 찬반 논란으로 인해 그동안 ‘낙태죄’에 관심 없던 사람들도 ‘과연 무엇이 쟁점인가’ 기사를 찾아보고 청와대 입장발표 동영상을 돌려봤다. 그리고 2010년 이후 중단됐던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내년에 재개하겠다고 하니 그 결과를 기다려 정확한 상황을 파악해 보자는 이들도 적지 않다. 


신앙인도 똑똑한 시민들이다. 살인해서는 안 되며,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쯤은 모두가 동의하는 바이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회적 논의 과정에 참여해 개인의 생각을 밝히고 타인의 입장을 공감해 보는 일. 이를 통한 건강한 합의와 새로운 균형을 찾는 일에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고위성직자들만 참여하는 ‘그들만의 회의’가 아니라, 여성과 남성을 가르지 않고 모든 주체가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공론의 장, 이런 문화가 교회 안에 형성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까. 적어도 임심중절 관련 이야기를 하는데 여성이 함께 논의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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