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20일 수요일, 눈
아침 청소를 마무리하는데 ‘한마당’ 출판사에서 오늘 막 출간한 책 「우리 아버지」를 갖고 역자인 보스코를 찾아왔다. 분도출판사와 협약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집 일부라도 라틴어 원문에서 번역하겠다며 그 일에 올인하고 있기에 그 밖의 일은 좀처럼 손을 대지 않는데 오랜만에 이 작업을 했다.
우선 '한마당' 출판사는 보스코와 찬성이 서방님의 친구 최권행 교수의 동생이 운영하면서 민주화투쟁에 헌신한 출판사이고, 책 내용을 보니 프란체스코 교황님이 이탈리아에서 청년독자를 휩쓰는 마르코 포짜(Marco Pozza) 신부와 대담한 ‘주님의 기도’ 해설서로 단순하면서도 감명이 깊고, 무엇보다도 분량이 적어(포켓판으로 143쪽) 보스코가 번역을 했다.
그 책이 나왔다고 출판사 여사장님이 들고 찾아온 길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가까운 친구들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다 했는데 보스코가 늘 존경하는 ‘사제단’ 신부님들 50여명에게 이미 발송을 했단다.
우리 큰 스승 문동환 목사님이 100세의 연세에 ‘두레방의 신학’을 정리하신 「두레방 여인들」이라는 책을 쓰셔서 오늘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 연세에 이런 신학 책을 쓰셨기에 120세까지 사셔서 또 한 권의 책을 쓰시라고 축원해드렸다. 우리 젊은 세대에게도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기지촌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 어디서나 유린당하는 절대 약자 여성들을 위한 많은 신학서적이 나오길 바란다.
온 세상에서 제국주의 전쟁의 피해자, 군사주의 폭력의 희생자, 남성위주 사회 어디서나 짓밟히고 밀려난 피해여성들이 살아가는 그 거친 삶의 맨 밑바닥 여정을 어떻게 기술할까 문목사님이 고민하실 때 그녀들의 삶이 생생한 수기 「두레방 여인들의 수기」를 읽고 정신이 번쩍 나셨단다. 그 고통 중에도 “고향에 있는 어머니를 위하여 견뎌야지”, “불행하게 태어난 내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지”, “소망이 없어 보이는 내 가정을 그래도 버릴 수는 없지” 하며 끈질기게 살아가려는 삶의 원천은 생명을 사랑하는 영의 절규더란다. ‘하느님의 모상’으로 지음 받은 영이 치솟는 샘 줄기로 보였단다.
문박사님의 부인, 이젠 치매로 모든 기억에서 놓여난 문혜림 여사(미국인)가 당신 나라 군인들이 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저질러 놓는 반인륜적 행동에 대한 속죄의 뜻으로 기지촌 여성들을 돕고 보호하는 ‘두레방 활동’을 시작했다. 30년 전에! 문박사님은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그 두레방 활동을 신학적 성찰로 끌어올리신 거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문목사님께 들은 첫 설교(“여러분들은 다른 사람을 등쳐서 뜯어 먹으려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의 밥이 되어 먹히십시오!”)가 비수처럼 심장에 꽂혔다는 우리 후배 이승호 목사가 작사 작곡한 노래를 부르자 ‘우리는 참 스승을 모시고 살았구나!’하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두레방 식구들과 헤어져서 돌아오는 길, 눈이 펑펑 쏟아졌다. 어제 치운 골목길 눈이 미처 녹기 전에 다시 쏟아지는 눈을 보며. 우리 모두의 어두운 곳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분의 순백한 손길이 이 나라를 덮어주소서 비는 마음이 간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