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일 화요일, 맑음
작년 대선 투표기간 중에 내가 함양 휴천에서 민주당측 ‘참관인’ 자리에 앉아 있는데 민주당 지역담당자가 면사무소로 찾아왔다. 수고하신다는 말과 함께 이웃마을 할머니들을 찾아온 한국당 운동원이 포스터를 그려서 들고 다닌다며 견본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이 문맹인 할머니들에게 시청각 교육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치는데, ‘1번 문아무개’ 자리에는 ‘인공기’를, 홍준표 이름 앞에는 ‘태극기’를 그려서 갖고 다니며 ‘1번 찍으면 북한 빨갱이한테 투표하는 거’, ‘2번에 찍어야 남한 대한민국을 위해 투표하는 거’라고 자리까지 짚어주며 ‘우리나라를 위해 꼭 2번을 찍으라’고 했단다. ‘자유한국당 경남도당 디지털정당위원회’가 원흉이었다.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에 보도된 기사. 초등학생이 그린 ‘통일나무’에 태극기와 나란히 인공기를 그렸다고, 홍준표라는 자가 “인공기가 은행 달력에 등장하는 그런 세상이 됐다”고 소리치자 모든 보수언론이 도배하는 정국이다.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마저 색깔론으로 밖에 볼 수 없는 저자들이야말로 누가 봐도 크게 병든 인간들이다. ‘증오’와 ‘탐욕’ 외에 머리에 든 게 없는 정치집단, ‘거짓’과 ‘왜곡’밖에 보도할 게 없는 언론이라니! 수구 꼴통들을 자기네 지지세력으로 결집시키겠다는 의도로 정치가들이 저런 말들을 내뱉는다지만, 정신나간 노인들은 그 보도 그대로 저런 말을 확대 재생산할 텐데….
엊그제 놀러온 프란치스코도, 자기 집에도 그런 글만 읽고 숨이 ‘헉!’ 하고 막히는 소리를 쏟아내는 아버지와 마주앉는 게 괴로워 부모님댁 가기가 꺼려진다고 자백하였다. 그 집에 나뒹구는 태극기도 보기 싫단다. 태극기가 보기 싫어지고 자기 아버지한테도 저런 역겨움을 느낄 정도면, 생판 처음 보는 노인들이 ‘꽁짜 전철’에 몰려다니며 증오에 찬 한심한 소리를 내뱉는 광경에 젊은이들은 얼마나 역겹겠는가!
오죽하면 전철 경로석 앞을 지나는 젊은이들이 “요금도 안 내고 공짜로 타고 다니는 틀딱(틀니 끼고 딱딱거리는 꼴통)!”이라고 한 마디 한다니! 그런 말 들으면 화는커녕 나 같으면 부끄러워 얼굴을 못 들 꺼다. 나 역시 내 또래 남녀들의 ‘틀딱’ 소리를 견디기 힘드니까…
수구 꼴통들의 증오와 편견으로 가득 찬 사고방식이 그대로 간다면 우리 모두에게,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 저주로 되돌아올 한반도 정세 아닌가. 전쟁이라는 참화, 이젠 핵전쟁으로 한반도가 전멸하는 형세이기에 소름이 끼친다.
이번 성탄절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반도의 전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한반도를 위해 매일매일 기도한다’는 말씀까지 하신 터에…
교황님은 신년 카드에 1945년 미군의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한 소년이 숨진 동생을 업고 화장터 앞에서 화장 순서를 기다리며 아랫입술을 깨무는 비통한 사진을 손수 골라 전 세계인의 양심을 일깨우셨다.
한반도 남북 7,000만이 몰살할 전쟁을 못 일으켜 안달하는 정치집단들도 한심한데, 어디서나 성조기를 들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어린이의 그림에 나오는 인공기를 놓고 괴성을 질러대는 자들은 어느 나라 사람들일까? 평범한 주부가 연초부터 너무 흥분하나? 모처럼 북한에서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오자 오히려 사납게 짖어대는 반공교도들 맘에도 제발 이 새해에는 인간다운 너그러움과 남북화해에 대한 기다림이 움트기를 기도한다.
오후에 소나타 운전석을 좀 손질하고 차 밑까지 세차해달라고 카센터에 주문하고서 나는 한목사랑 한국도자기 가게에서 ‘성탄컵’을 보러 삼선교에 나갔다. 가게를 둘러 그릇 몇 개를 사고서 한목사랑 돈암동 태극당에 들러 커피를 마셨다. 60년대 말에도 돈암동과 장충동의 ‘태극당’, 삼선교의 ‘나플레옹제과’는 가난한 신학대학생들이 드나들기엔 좀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50년을 흐르면서도 그 자리를 지켜준 게 고마워 우리 중늙은이 여성동지들은 아직도 그곳에서 가끔 만난다. 세월이 가도 변함없다는 건 친구든 가게든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