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9일 화요일, 흐림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질 날씨다. 어제 밤에 마당에는 사르륵 여름 홑이불 덮듯이 눈이 내렸는데, 먼 산봉우리에는 혹시 멋진 설경이라도 기대하며 서쪽 창 커튼을 열었다 별 볼 일 없어 실망을 했다.
2년여 만에 남북회담을 하러 ‘니~북에서’ 아자씨들이 떼로 온다니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어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이런 아낙이 ‘니~북’에 고향을 둔 나(아버지는 평강, 어머니는 해주)뿐이겠는가?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제발 형제간에 그만 싸우고 사이좋게 지내라, 남부끄럽지도 않느냐?’고 하시지 않았나? 이 말마디는 내가 붙였지만 교황님은 정말 우리 땜에 조마조마하시다는 보스코(세 번 뵙고서 하는) 얘기가 다음 말씀에서도 여실하다. “이제 대화하고, 만나고, 차이점들을 넘어서도록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모든 한국인이 같은 언어로 말하는 형제자매이고 한 가정의 구성원들이며 하나의 민족입니다.”[2014.8.18] “한반도의 대치 상황이 극복되고, 상호 신뢰가 세계 전체 이익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2017.12.25] “한국 국민들과 전 세계의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대화에 필요한 모든 노력을 지지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2018.1.8.]
그간 김정은이가 미국의 트럼프와 맞장 뜨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꽤나 끌었나보다. 골치 아픈 이웃집 망나니 아들을 논길이나 고샅에서 만나면 혹시 궂은일이라도 당할까 전전긍긍하듯, 이젠 세계 어딜 가도 ‘코리아가 어디 붙어있나?’ 묻는 사람은 없는 대신에 “남조선이요? 북조선이오?”라는 질문은 더 성가시게 받는다. 거기다 트럼프(미국언론이 “어쩌다 백악관에 들어온 남자”라고 부른단다)라는 덩치 큰 깡패까지 한데 설치니까 온 동네 사람들이 눈을 내리깔고 설설 기는 세상이다.
덩치 크고 덩치 작은 저 둘은 도무지 예측을 불허하고 합의한 사항도 언제 엎을까 신의가 안가는 게 사실인데 우리 ‘태그끼아재들’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진 않는다. 박근혜나 이명박이나 국제협약이라 하면 이면합의는 기본에다, ‘그런 것 없다’는 오리발로 터질 때까지는 버티는 거짓말쟁이다. 무슨 콩가루 나라가 전쟁에 자동개입하는 방위조약을 국방장관이 대통령도 모르게 맺는단 말인가?
예전 같으면 ‘도대체 사내들이 하는 짓꺼리란!’ 하면서 혀를 찰 텐데, ‘선덕여왕 이후의 현군’이라고 조중동이 비행기 태운 여자가 죽을 쑤고 그 죽을 뒤집어 쓴 채로 추락한 이후로는 저 욕마저 못해 속이 터진다. ‘혼수성태’를 대표로 하는 당에 들어가면 다들 제정신을 놓는지 자기들이 싸놓은 똥더미에 퍼질러앉아 구린내난다고 내내 큰소리를 치고 있고…
판문점 회담이 조마조마하여 책도 손에 안 잡혀, 성탄절 과자 굽고 남은 식재료 전부를 섞어 쿠키를 구웠다. 구수한 냄새가 집안에 가득하자 기분이 좀 차분해진다. 보스코도 일손이 안 잡히는지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 말구유와 성탄그릇들을 뜯고 정리하고 챙겨서 3층 다락에 날랐다. 나도 성탄절 식탁보와 깔개 냅킨을 빨고 삶고 밤늦게까지 다림질을 하여 2017년 크리스마스를 마감했다. 축제로 오신 ‘아가 예수님’, 이제부터는 우리 맘과 이 땅에 잘 키워내는 일만 남았다.
금방이라도 전쟁 날 것 같다고 멀리서 가까이서 외국인 친구들 문안 전화를 받다가, (‘쌈구경’ + ‘불구경’이 최고라며) 언제쯤 한반도에서 핵전쟁 나나 호들갑을 떠는 국제여론에 접하다, 트럼프가 핵폭탄으로 북한을 몰살시킬 날 손꼽아 기다리던 ‘태그끼아재들’의 소란을 보다가, “우리 민족이 한반도 문제 당사자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해 나가겠다”는 공동합의문을 접하고서 조중동 기자들(신방과 나온 언론이기보다 문창과 나온 소설가로 공대받는다는)이 내일 아침 톱기사에 어떻게 제목을 뽑을지 궁금해지며 일기장을 편다.
날씨가 추워지는지 방 안도 싸늘해져 친구가 보내준 쌍화차를 따끈하게 데워 한잔씩 마셨다, 조장관 일행도, 북에서 온 사람들도 아랫목이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 편한 마음으로 발 뻗고 자기를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