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13일 화요일 흐리다, 맑음
산너머로부터 눈이 마을 찾아 내려왔다. 동네에 와서는 잠깐 멈추고 서성거리다 돌아서서 강쪽으로 간다. 그래서 휴천강(休川江)이다. 마천(馬川)에서 말떼처럼 여울져 흐르던 강줄기라도 우리집 앞에선 얌전히 쉬었다 숨을 고른다. 그러고 나서 연화동 쪽으로 휘몰아치면 흐름이 급해지는데 한남마을 사람들은 저 강을 엄천(嚴川)이라 부른다. 우리 집 당호가 휴천재(休川齋)요 남편 동창들이 보스코에게 휴천(休川)이라는 호를 붙여 부르는 것도 여기서 비롯한다.
한남마을은 옛날 세종 아들 한남대군이 유배와서 살다 죽은 데서 유래된 이름으로 마을앞 강을 건너 모래섬이 대군이 거쳐하던 곳으로 ‘새우섬’이라 부른다. 지금도 함양1C를 나와 우리집까지 가려면 굽이굽이 길을 돌아 산과 산을 넘다 보면 ‘정말 옛날엔 이곳까지 사람들이 들어오려면 귀양을 왔거나 세상을 버린 사람이나 살았을 법하다’는 느낌을 주는 첩첩산중이다.
우리가 사는 동네 문정리(文正里)라는 지명은 이 첩첩산중에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다. 유래를 보면 고려말 이조년(李兆年: 시조 ‘梨花에 月白하고 銀漢이 三更인 제…’의 작자)의 맏형 이백년과 넷째 형 이억년이 이 골짝에 들어와 살다 죽은 역사에서 유래한다. 이억년은 우리 집에서 100미터 거리 안에 무덤이 있다. 마천 쪽으로 오리 떨어진 ‘백연마을’은 이백년의 이름에서 왔다. 이 깊은 지리산 속에도 사람이 살고 있어 두 사람은 서당을 열고 사람을 가르쳐 마을 이름 ‘문정리’가 생겨났단다. ‘글을 바르게 배운’ 이들이 살만한 곳이어서 학문하는 보스코도 운명적으로 예까지 이끌려 왔나보다.
눈은 쌓였고 신작로에 오가는 차도 없는데 서울은 가야하고… 한숨을 쉬고 있노라니 철없는 남편은 ‘그냥 미끄럼 타듯 차를 끌고 내려가라’는 말씀. 다행히 해가 뜨자 내 염려를 녹여주듯 싸악 눈이 녹았다. 그래도 고속도로에서 덕유산에 들어서자 요새 내린 눈이 그 누구도 그려내지 못할 수묵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속도를 최대한 늦추고서 설경감상에 감탄에 감탄을 거듭한다. “여보, 하느님은 우리나라 어느 화가에게 사사하셨기에 저렇게 아름다운 수묵화를 치셨을까?” 다른 때 같으면 (내 일기에 넣을) 사진 좀 찍으라면 정말 싫은 표정으로 전보선 대, 찌그러진 집, 얼키설키 전기줄에다 카메라를 들이대던 ‘심술남편’ 보스코도 오늘은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오늘은 빵고가 논문심사를 받는 날이다. 4시쯤 전화를 해서 오간 대화. ‘준비는 어떠냐?’ ‘자알~’ ‘공부만 빼고 다 좋아하고 다 잘하는데, 바로 그 공부를 하려니까 비극이구나.’ ‘아빠 아니고 엄마를 닮은 게 비극의 시작이지요.’ ‘솔직히 나도 공부는 싫단다. 그러나 공부하는 남편은 좋단다.’
오늘도 나 혼자 운전하고 서울 와서, 나 혼자 물건정리, 저녁 준비, 청소로 정신없는데, ‘지친 아내’(사람들은 ‘철의 여인’이라 부르지만)를 도울 생각은 않고 오자마자 책상 앞에 당겨 앉는 남자, 나 혼자 구시렁거리면서도 그가 밉지 않으니 까닭을 모르겠다. 옛 적에 못 배운 여자들에게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아들이 사랑방에서 글 읽는 소리였다지만…
논문심사에 참석한 신부 수녀들이 사진을 찍어 몇 장 보내왔다. 밤에 작은아들에게 축하전화를 했더니만 자기 사진을 엄마 일기에 올리지 말란다. 까닭을 물으니 ‘웬 석사논문 갖고 사진씩이나…’라는 대답인데 아빠 박사, 형 박사 아래서 아직 석사만으론 겸연쩍다는 얘길까? ‘네가 뭐래도 사진 넣을 거야.’ ‘엄마, 그럼 제 얼굴 초상권 침해에요.’ ‘네 얼굴 초상권이 누구한테 있는데?’ ‘저한테죠.’ ‘얘, 네 얼굴 낳아준 건 이 엄마야.’ ‘……’ 큰아들이 사진을 보내온 두 손주 얼굴의 초상권도 이 함무이에게 절반은 있으니까 맘 놓고 올려야겠다.
‘국정농단’의 기세당당하던 여자가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오늘밤 감방에서 무슨 심경일까? 더구나 무뇌에 가까운 여자를 군주처럼 모시면서 ‘글을 바르게 배우지 못해서’ 사내다운 충언 한 마디 못하던 장차관, 청와대 관리들, 국정원장들은 쇠고랑 차고서 옥살이하는 신세는 또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