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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망자에게 할 만한 마지막 이바지는 기도뿐
  • 전순란
  • 등록 2018-03-16 1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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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5일, 목요일 비


새벽부터 비가 내린다. 앞산도 짙은 물안개에 싸여 골짜기와 능선을 감춘다, 죽음 그 뒤를 아무도 못 보게 가리듯이… 준이서방님이 심장마비로 짧은 고통 속에 죽은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도 급작스러워 가슴 아프지만, 본인은 늘 그렇게 쉽게, 간결하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떠올린다.




내가 결혼한 1973년, 그는 이미 결혼해 큰아들 해영이가 태어나 있었다. 이듬해에 세 동서들이 모두 아들 하나씩을 낳아 ‘뚱기’(성준영이), ‘빵기’(성하은). ‘꼬끼’(성하영)라는 아명이 붙여졌고, 셋은 동갑이면서도 날짜상의 위계질서를 잘 지켜 사이좋게 지냈다(전씨 집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에는 성씨 집안 남자들은 하나같이 순하고 말 잘 듣는다).


도로공사에서 일하던 준이서방님은 서울로 올라와 우이동에 종점을 둔 버스회사에서 기사로 일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두 아들을 키우는 동서에게 생활비를 보내느라 기사들 숙소에서 숙식을 하며 절약하며 살았다. 그 달치 내려 보낼 액수가 부족하면 어렵사리 형수에게 얘기를 꺼내 반드시 채워서 보냈다.



1975년 추석, 어머니 산소에서 온 가족



어느 날 버스 운전이 너무 힘들다며 지입버스로 유치원 아이들을 실어 나르면 좋겠다기에 중고 버스를 마련해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밤이면 차 안에서 숙식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우리집에 방도 있고 찬성이서방님도 간간이 와서 지내니까 함께 있자 해도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자존심 땜에 한사코 마다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거나 지리산에 내려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집에 와서 묵지 않았다. 그 뒤로도 무엇이 그를 떠돌게 하는지 강원도로, 남도로 헤맸다. 입도 무거운 사람이지만 비밀도 많아 나와 막내동서는 그를 ‘크레믈린’이라 불렀다. 


적어도 노년에는 스스로 몸을 추슬러야겠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듯해서, 버스 회사에서 넣던 연금을 이어받아 최소한의 연금을 넣어주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십여 년 전 큰아들이 광주 가까운 시골에 집을 사주자 거기 혼자 묵으면서 밭에서 농사를 지어왔다. 본인 말로는 자기 생애에 가장 행복하고 맘편한 삶이라고 했다.


만날 적마다 서울대 교수가 된 큰아들 자랑, TV연속극을 쓰는 며느리 자랑을 들으며 나도 마음이 크게 놓였다. ‘나는 죽을 때 여러 해 앓거나 누굴 괴롭히는 짓은 절대 안 할 거요.’라는 장담을 하곤 했다. 살고 죽는 일, 아프고 성한 것은 맘대로 안 될 텐데, 자기 손으로 자기 무덤을 파고 들어가 눕는 사람은 없을 텐데 해 오다, ‘그토록 폐 끼치기가 싫어 이번처럼 최선의 죽음을 골랐느냐?’고 묻고 싶지만, 그 대답은 영영 들을 길 없다.


보스코네 4형제 몇 장면




4형제를 키워주신 살레시안(노신부님, 박신부님)과 함께



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보스코가 한숨 속에 젊은 시절 4형제가 찍은 사진들을 들여다보고 있다. 우리가 귀촌한 지난 10여 년은 휴천재에서 추석과 설을 지낸 사진에도 준이서방님이 나온다. 가여운 동생의 부재에 보스코의 침묵은 산처럼 무겁다.


빵고가 춘천에서 아침에 건강검진을 하고 서울에 가서 고속버스로 광주에 도착하는 시간이 7시 30분이라 해서 그 시간에 맞춰 지리산에서 광주까지 달려가 버스터미널에서 아들을 만나 운전대를 넘겨주고 상가로 갔다.



빈소에는 막내서방님, 하영이와 하빈이, 전주에서 내려온 정훈이고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단 가톨릭신자들끼리 연도를 드렸다. 우리가 망자에게 할 만한 마지막 이바지가 기도뿐이다. 8시 30분에 영란이고모 부부가 왔다. 


이렇게 5년에 한 번쯤 결혼식이나 장례식에서 만나 인사하고는 다음엔 누구 차롄지 모른 채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헤어진다. 내일 아침 8시에 빈소에서 빵고신부의 장례미사 집전을 약속하고 신안동 살레시오 수도원에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자정이 넘었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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