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 22일, 목요일 맑음
해는 밝게 빛나는데 지붕에서는 눈녹은 물이 줄기차게 비가 되어 내린다. 종일 내리고 또 내려 마당이 빗물로 진창인데다 진이네 트럭이 갈고 간 잔디밭은 회복이 불가능하다. 보스코가 움퍽질퍽 녹아가는 마당에 하트 그리기를 포기하고 데크 위에 작은 하트를 그리고 ‘나니’를 써넣었는데 그것마저 정오가 되기 전에 녹아내렸다.
사랑은 눈녹듯 사라지는가? 가슴의 대지에 녹아들어 그가 떠나 없을 시간, 눈녹은 물기로 여생의 목마름을 적셔주려는가?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보스코가 묻는다. "여보, 나이가 들면 할머니들 입가는 왜 바느질 하듯 조글조글 해질까?" 나도 요즘 거울을 보면 얼굴 가득 잔주름에 나이를 실감하는데… 그렇더라도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그 아리따운 처녀 오드리 헵번이 자글자글 주름진 얼굴에 전쟁고아를 안고 서구사회의 무관심에 분노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봤을 때, 젊은 날의 그니보다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얼굴은 모성에 있기 때문이다.
어제 참깨를 볶으려다가 ‘이게 일어 말린 것인지?’ ‘이웃 아짐이 털어서 그냥 한줌 준건지?’ 기억이 안나 찍어 먹어 보니 모래와 흙이 지검지검… 씻어 일어보니 모래가 한줌. 좌우가 확실하지 않을 때는 우선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 씻지 않은걸 그냥 볶았다가는 큰 낭패다.
오늘 문대통령이 베트남엘 갔다. 얼마 전 월남새댁이 ‘한국인들이 나를 보면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 놀라웠어요.’ 라고 했다. 적어도 우리는 일본인들과 달라야 한다. 일본정부에 ‘정신대’ 문제에 사과를 요구하려면 우리 국민도 우리 군인들이 짓밟은 월남전 피해자들, 특히 한국군에 무죄하게 학살당한 월남인들에게 머리 숙여 사과해야 한다. 엊그제 만난 제주 강주교님도 이번에 월남에 가서 사과하셨다며, 문대통령에게도 사과하라는 서신을 올렸다고 했다.
오늘 읽은 이기주 작가의 『언어의 온도』라는 책에 나온, 병원을 다녀오는 할머니와 손주 이야기. “아직 열이 있네, 저녁 먹고 약 먹자.” “네, 그럴 께요. 그런데 할머니, 할머니는 내가 아픈 걸 어떻게 그리 잘 알아요?”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한국염목사가 대표로 있는 ‘정대협’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하는 수요집회가 1300회를 넘었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지 않고 꾸준히 기억하여 촛불로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듯이, 수요집회가 언젠가는 일본이 사죄하는 날이 오게 하리라 믿는다.
잘못했다고 머리 숙일 수 있는 것은 도덕적으로 성숙한 인격을 소유한 사람만이 할 수 있고, 문대통령이라면 해내리라고 본다. 이번에 안하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올 것이다.
물론 꼴보들에게 휘둘리는 소위 참전용사들이 반발하겠지만, 그자들은 자기네 머리 위로 고엽제를 뿌린 미국과 자기네 참전수당을 떼먹은 박정희와 그 딸에게 대들어야 하는데 번지수를 잘못 잡고 있어 안타깝다.
자정이 다 되어 ‘이명박 구속영장’ 소식이 떴다. 애 타게 기다리던 뉴스였다. 그 자가 페이스북에 띄웠다는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라는 글귀가 크리스천인 나마저 아연하게 만든다. ‘쥐박이’라는 별명처럼, 나라 곡간의 돈을 모조리 물어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그에게 돈 뜯는 대상에 불과했는데, 기생충이 숙주가 살아남아 있기를 위해 기도한다?
“바라건대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는 구절이라도 장로다운 참회의 글이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10년의 노력 끝에 그 자를 동부구치소에 집어넣은 주진우 기자의 감동어린 눈길을 담은 사진이 각별한 공감을 준다. 박근혜가 들어가고 한 해만에 이명박이 갇히고 나니 국민의 맘에도 봄 기운이 돌겠다.
휴천재 화단의 봄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