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1일 토요일, 맑음
다른 해 4월 중순이면 화분을 다 집밖에 내놓고, 분갈이를 하고, 가지치기를 한 포인세티아는 자그마한 화분에 심어 창너머로 우리 꽃을 탐내던 아짐들에게 한 개씩 나눠주곤 했다. 그러나 가을이 지나 날씨가 추워지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면 다시 우리집을 기웃거리는 동네 아짐들. “우리껀 이집꺼허구 달라. 나쁜 걸 줬나봐. 우리꺼도 좀 좋은걸로 줘봐.” 그러나 가져간 지 몇 주 지나 화분의 안녕을 물어 보면 “죽어삐렸어.”
이유는 딱 하나, 태양이었다. 집집이 어두컴컴하여 밤낮으로 불을 켜야 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 들농사야 하느님이 주시는 태양을 양껏 받으니까… 남향인 우리집 거실처럼 넓은 창에 겨우내 햇볕이 거실 북쪽까지 드는 집이 없으니 포인세티아가 견뎌내지 못할밖에…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지하철도 한가하고 종로통도 사람이 드물어 도회지라는 느낌이 덜 든다. 공안과에도 주말이어선지 사람이 별로 없다. 공원장님도 와 계시며 내 수술 결과를 눈여겨보신다. 너무 빨리 일선에서 물러나셔서 아쉬운데, 후진들이 자리잡도록 뒤에서 지켜보시니 함께하는 의료인들의 복이리라. 사람을 키운다는 것은 소리 없이 지켜보면서 발 앞의 돌을 슬그머니 치워주는 일이다.
어제 안대를 떼고 집에 와서는 눈에 하얗고 둥근 그림자가 불빛에 어리고 그 동그라미가 얼룩덜룩하여 덜컥 겁이 났었다. 주치의 이수정선생님께 까닭을 물으니 끼워 넣은 렌즈에 약이나 체액이 아직 스며들지 않아서란다. 오늘이 이틀째인데 어제보다 잘 보인다. 일주일간 매일 병원에 출근해서 점검을 받으라니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지난번 함양에서 왼눈 수술을 하고 고생한 일을 떠올리며 유비무환이려니 했다.
전철로 돌아오는 길.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칸이어선지 지하철에 자전거가 가득하다. 태양을 향해 달려 나가는 젊은이들의 근육질 다리가 탐스럽고 부럽다. 알프스 산악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들의 터질듯한 팔다리 근육을 할머니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손주 시아가 하던 말. “할머니, 너무 멋있지 않아요? 부러워요.” 시아도 축구, 자전거, 탁구, 필드하키, 스키 등 모든 운동을 좋아해서 여름마다 캠프에 다니곤 하는데, 시우도 ‘엉아 따라’ 뭐든지 하려고 한단다.
둘이 만나면 투덕거리지만 시아가 자전거 캠프를 가자 형을 엄청 기다리더란다. “형이 없으니까 재미없다.” “만나면 싸우면서?” “싸우는 것도 재미예요.” 그래서 ‘형제는 단둘’이다. 오늘은 스카이프로 통화를 하며 형이랑 둘이서 마카롱을 만들었다고 ‘함무이’한테 자랑이다.
자전거가 가득하니 노인석도 입석인데 대부분 할머니들. ‘힘드시면 젊은이들 앞에 가서 서세요’ 했더니 ‘요즘 일하고 공부하느라 애들이 더 피곤해요’한다. ‘젊은이들 앞에 가서 쿡쿡 찔러 일어서게 만드는 영감탱이들을 보면 꼴 보기 싫어 그쪽으론 아예 안 간다우.’ 때론 여자들이 더 염치가 있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 들어도 꼿꼿이 서서 품위를 지키는 남자들에게서는 신사의 향기가 나지만 태극기나 들고 다니며 ‘틀딱’으로 소란을 피우는 노인들은 ‘꼰대’라는 말을 들으며 집에서도 밖에서도 스스로 천덕꾸러기가 된다. 남 얘기 말고 우리도 잘 늙어야지…
북한이 핵실험 중단과 핵실험 시설 폐쇄를 공표하였다. 정말 2018년은 연초부터 세계뉴스를 장악하고 트럼프와 시진평 귀를 잡고 ‘고추먹고 맴맴’을 시키는 사람이 김정은이다. 작년만 해도 미국이 나서서 ‘코피를 흘리게’ 만들어야 할 ‘땅딸보’ 취급을 받았는데…
한반도 동북아만 아니라 세계평화에 중요한 조처여서 전 세계 언론이 대서특필하는데 여기다 초치는 유일한 집단이 ‘대한민국 자유당’! 그야말로 한반도에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오늘 기온이 33도로 오른 대구에서 두꺼운 겨울외투를 입고서 ‘아이 추워! 아이 추워!’를 외치고 ‘틀딱일보’들은 ‘드루킹’으로만 지면을 도배하니 국민의 시선이 딱하기만 하고 저 당의 지지도가 12%로 떨어질 수밖에…
내일 일요일에도 안과병원에 가야 해서 토요미사엘 갔다, 큰아들과 함께. 벌써 ‘착한 목자’ 주일이어서 우리가 아는 모든 신부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였다.
미사 후 말남씨가 집에 있다는 얘기에 병문안을 갔더니만 불면증까지 앓는 그니가 겨우 잠들었다는 친구 돌보미의 말에 소리없이 물러나왔다. 역전의 용사가 병들어 누우니 도봉구가 조용하겠다는 농담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