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년 4월 27일 금요일 맑음
어제 수유리 ‘4·19 민주공원’에 같이 갔던 친구들이 말했다. “노무현이 죽었을 때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하고 불쌍했던지 몇날 며칠을 많이도 울고, 죽은 사람마저도 원망스러웠다.” 그 뒤 명박이가 산하를 망가뜨리고 그네가 나라를 죽사발을 만들자 더는 참을 수 없던 민초들이 하나둘 촛불을 들고 일어나자 그게 횃불이 되어 이 산하의 잡스러운 것들을 집어 삼켰다. 노무현의 죽음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문재인을 통해 부활하는 모습을 오늘 TV에서 생생하게 보았다.
몇날 며칠 이 회담의 성공을 기도하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 우리집은 ‘TV 없는 집’이었다. 온 식구가 책을 읽고 두 아들과 대화하는 분위기를 위해서. (관련글)
2000년대부터는 누가 쓰다 준 TV가 있어 하루 한 시간 뉴스(지금은 jtbc) 볼 때에 켜진다. 정말 뉴스 외에는 TV를 아예 안 보는 보스코가 오늘은 아침부터 서재로 TV를 꺼내서 켜고 눈을 떼지 못하고, 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에 감격한 내 친구들은 끊임없이 카톡방의 문을 두드린다. 모두들 우국지사다.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정은을 기다리는 우리 대통령, 김정은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대통령의 손을 잡는 순간의 감격을 내 주변의 사람들이 쉬지 않고 전화로 문자로 알려온다. 둘이 나란히 걸으며, 통역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 ‘우리는 하나였는데 누가, 왜 우리를 갈라놓았는가?’ 가슴을 치게 된다.
우리 미루의 표현이 걸작이다. “김정은이가 문재인 옆에 있으니 너무 착해 보인다!” “빵고신부 닮았다!”는 말도 나온다. 이엘리는 ‘참다참다 눈물보가 터졌다’고 알려왔다. 저 정도면 병상의 백기완씨도 마음을 놓고 눈을 감을 게다.
보스코는 최권행 교수를 만난다고 수유역에 나가 점심을 하고서 들어왔고, 우리집엔 영심씨와 숙연씨가 점심을 먹으러 왔다. 두 사람은 아주 오랫동안, 남편의 계모를, 35년 이상 모셨고, 최근에 계모들이 돌아가신 공통점이 있어 그 동안의 수고를 따독여 주고 싶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며 TV를 보던 숙연씨가 하던 말. 부모님이 고향 함흥에서 큰오빠랑 두 언니를 큰집에 맡겨 놓고 지금 서울 사는 큰언니만 업고서 잠깐 다녀온다고 서울에 내려오셨다가 38선이 단혀 영원히 갈라졌단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는 명절이나 언니 오빠 생일이면 흘리시는 눈물 바람을 참 견디기 힘들었단다. 왜 북녘에 두고 온 형들은 ‘다 똑똑하고 잘생기고 공부도 잘했다’고 하시는지, 50년이 지나서도 그 형들 얘기가 나오면 밥상머리에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는지,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그렇게 했는데도 왜 당첨이 안 되었는지… 이젠 그럴 가능성이 성큼 다가오자 그니의 눈은 벌겋게 그렁그렁했다.
‘판문점선언’을 남기고 늦게 끝나는 만찬에 졸린 눈을 하고 떠나는 김정은의 지친 모습에서 진정성이 보여 어서 6월이 오고 트럼프와의 배짱 좋은 회담으로 모든 게 매듭지어지기를 속으로 축원하며 보냈다. 사실 오늘은 문대통령 주선으로 김정은이 국제무대에, 우리 국민 앞에 정식으로 등장하는 날이었다! 곁에서 입속의 혀처럼 움직여주는 누이동생, 그의 조용한 부인이 참 예뻐보였다.
온 민족의 경사, 남한에서만 국민 50%가 TV 앞에 환호하는 와중에도 민족 분단의 아픔을 빌미로 권세와 부귀를 누려온 집단의 반발이 내 속을 뒤집는다. 감옥 간 여자 밑에서 KBS 이사장을 한 이인호라는 여자는 “남북한 정상 회담을 두고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고 매체들은 마치 남북 간에 평화통일이 이미 기정사실이 된 듯 호들갑을 떨고 있는” 오늘, 조선일보에 “드디어 나라가 망하는구나 하며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이 터져 나온다.”는 공개편지를 띄웠다.
이 나라 꼴통들을 대변하는 홍준표는 저녁에 ‘판문점 선언’이 나오자 “남북 정상회담은 김정은과 문정권이 합작한 남북 위장평화쇼”라고, “북의 통일전선 전략인 우리 민족끼리라는 주장에 동조하면서 북핵 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 하고 김정은이 불러준 대로 받아 적은 것이 남북정상회담 발표문”이라고 욕했다. 역사의 도도한 물결에서 떠내려가는 쓰레기더미의 비명처럼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