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9일 수요일, 맑음
제주의 아침 공기는 육지보다 더 차고 더 맑다. 지리산의 산공기도 만만찮게 깨끗한데 간혹 중국에서 불어온 황사가 시야를 어지럽힐 때가 있다. 더구나 서울 사람들 교통체증과 오염된 공기… 만사에는 지불하는 대가가 따른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7시에 맞춰 살레시오 수녀원으로 미사를 갔다. 십수 년 전엔 기다란 가건물 하나가 전부였는데 이시돌 목장의 창립자 골롬반 선교회 임피제 신부님이 지금의 멋진 ‘젊음의 집’과 수녀원을 지어 주셨단다. 수녀님들이 일을 많이 하시는데 집이라도 편해야 한다며… 몇 주 전에 돌아가신 임신부님은 이시돌목장이 내려다보이는 양지바른 언덕 위에 누워계신다.
100만평 넘는 이시돌 목장의 땅은 기후와 온도와 습도 안개 등, 모든 자연조건이 임신부님이 떠나오신 고향 아일란드와 흡사하여 그곳의 하늘을 그리며 고향에서의 목축사업을 제주 금악에 이뤄놓으셨다. 60년 전부터… 제주 도민들의 가난하고 폭폭한 삶에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의 문을 열어주신 임신부님은 이 섬사람들의 가슴에 영원히 남겨질 이름이 되었다.
살레시오 수녀원 원장수녀님이 나와서 기다리다 빵고신부와 아침미사를 드리러 오는 우리 부부를 맞아 주셨고 오신부님도 오셔서 성무일도와 미사를 함께 바치셨다. 특히 최근까지 로마 트레폰타나에 있는 ‘작은자매회’ 총원에서 최고평의원을 지내신 셀레나수녀님이 그 수녀원에 손님으로 와 계셔서 반가웠다. 빵고가 여섯 살 적부터 기억하시는 그 수녀님은 그 꼬마가 자라 사제가 되어 집전하는 미사가 무척 감격적이란다.
살레시오 수녀님들이 차려주신 소박한 아침식사를 함께 들면서 한참이나 담소를 나누며 행복했다. 앞으로 빵고신부가 일할 ‘숨비소리’ 라는 청소년 쉼터도 둘러보았다. 작은 석조건물인데 무슨 일이든 해내는 살레시안들의 젊음이 부럽다.
빵고는 왜 자기를 이 자리로 보냈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나 ‘많이 생각하고 결정하신 관구장님께 순명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단다. 때로는 관구장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뜻’을 못 알아들어 어리둥절하며 인생을 살아가지만 그분 섭리에 통째로 맡겨드릴 때 (사실 그분 손에 맡겨드리는 수밖에 없는 게 인생이다. 우리가 아무리 안달복달해도 하느님은 당신이 알아서 우리 삶을 끌어가신다) 결국은 ‘만사가 은총이었음’을 감사드릴 수밖에 없음을 절감하던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9시가 좀 넘어 ‘사려니숲’으로 갔다. 제주교구장 강주교님이 머리가 복잡하고 생각하실 일이 많으면 이 숲을 찾아 거니신다는 얘기도 듣고 우리 귀요미 미루도 강추하는 곳이어서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더구나 우리 작은아들이랑 함께! 사려니숲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숲 입구까지 2.5km를 산언덕을 오르내리며 걸어가 정작 사려니 숲의 평탄한 숲길을 5km 걸었다.
숲은 태고의 모습과 그 향과 빛깔을 간직하고서 끝없이 이어졌다. 천남성, 산죽, 키큰 연산홍, 삼나무, 서어나무, 이제 막 꽃을 품은 산수국이 지천이었다. 어디서 숨어 향을 날리는 더덕이며 시원한 고사리 모양의 관중들 위에 하룻밤을 구걸하는 검은 나비며… 제주 한라의 대자연이 내게 한꺼번에 달려와 안기니 정신을 못 차릴 만큼 황홀했다.
왕복 6시간 족히 15km는 걸었으니 보스코와 나는 우리 몸에 대한 임무를 완수한 듯 기분 좋게 지쳐있었다. 자연이 주는 이 환대는 열두 달 인생에 덧보태지는 큰 보너스다.
제주에 왔으니 회는 한번 먹어야 한다고 오신부님이 우리를 한림 어귀에 있는 횟집에 데려갔다. 문 앞이 바로 바다니 모든 해물이 싱싱하여 달디 달다. 신부님은 이시돌로 올라가시고, 우리는 빵고신부랑 잔잔한 파도소리가 방파제에 고백하는 사랑의 밀담을 들으며 바람 한 점 없는 바닷가를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가족이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 어디인들 아니랴만 신록이 우거지는 늦봄의 하루니 더는 바랄 것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