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17일 수요일, 맑고 한여름 무더위
“그동안 참 무심하게 살아 왔어요. 아내가 시장가서 생선이나 나물 꺼리를 사 와서 다듬고 손질하고 생선은 굽거나 졸이고 나물은 데쳐 무치는데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젠 알게 됐어요. 예전엔 ‘나물인가 보다’ 했고, ‘손이 많이 간 것이니 버리면 아까우니까 먹어라’고 하면 성가시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 그런 일 하나하나를 내가 하다 보니 아내의 노고를 돌아보게 됐어요. 50년 간 저 여자가 겪었을 고생을 되갚으리라’ 여기고 있어요.”
75세의 여인은 2~3세 아이로 돌아와 있다. 용변은 가리지만 남편은 아내를 살피고 “화장실?”이라 묻고서 아내의 손을 잡고 근육이 다 사라진 다리로 한 걸음 한 걸음 마치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이를 이끌듯 화장실로 데려간다. 그때마다 그녀는 남편에게 수고료로 환한 미소를 지불한다. 가슴 아프지만 가슴 뭉클한 뜨거움이 보는 사람들에게 솟아오른다. 오늘 휴천재를 작별하면서도 여인은 보스코의 포옹을 받고 ‘고마워요!’라고 큰 소리로 밝은 인사를 남겼다. 그런 처지에서도 김 선생은 내년 모임은 대전에서 식당을 예약해서 벗들을 모시겠단다.
수십 년 이 모임을 해 오며 단 한 번도 자기 집에 초대하거나 식사를 낸 일이 없는 사람도 있다. ‘너무 잘 먹었고 지리산 경치도 좋고 이 집이 편해서 자주 오겠다’는 사람에게는 전순란의 영악한 대꾸가 나온다. ‘선생님 댁에 먼저 한 번 가보고서 생각해 봅시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먹지도 자지도 않고 한집에 살지만 각자의 삶을 살아요.’라는 대답에는 가슴이 아리다.
예전에 그렇게 사는 친구집에 초대받아 간 일이 있었다. 일층엔 아내가 살고 남편은 지하 차고에 살았다. 남편이 차린 저녁상에는 슈퍼에서 사온 음식들이 스티로폼에 담겨 랩을 쓴 채로 놓여 있었고, 혹시나 해서 내가 재간 불고기를 굽기 위해 위층에 올라가 부엌의 가스렌지를 쓰는데 어디선가 찬바람이 레이저처럼 쏘아져 왔고 아내는 끝끝내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부부를 함께 초대하면 그들의 삶 전부와 인생관이 고스란히 내보인다. 나를 돌아볼 기회를 만들어 앞으로 내 인생을 마무리 지을 이정표가 된다. 오늘 이 선생님의 부인이 ‘살레시오 교육은 신부(神父)뿐만 아니라 신랑(新郞)으로서도 최고’라며, 남자들 군대 가듯, 청년시절에 우리나라 남자들 살레시오 수도원 입회를 한두 해 시키면 좋겠다는 농담까지 한다.
남편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을 저렇게 에둘러 고백하면 듣는 사람들이 참 기분 좋아진다. 사람의 두뇌신경 상태를 관찰할 때 가장 평온하고 밝은 상태는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한 순간’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니 “삶에 감사를!(Gracias a la vida!)”이라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노래 가락 그대로, 삶 자체를 감사할 때 우리는 최고의 행복을 만끽하는 셈이다.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내가 두 눈을 떴을 때 흰 것과 검은 것, 높은 하늘의 많은 별,
그리고 많은 사람 중에서 내 사랑하는 사람을
또렷하게 구별 할 수 있는 빛나는 두 눈을 주신…
3개월 만에 느티나무독서회에 갔다. 아프다고, 여행중이라고, 아들이 와서라고 변명을 대왔지만 아우님들과 소통할 시간이 그리웠다. 오늘은 신입회원도 하나 왔다. 총무 윤희 씨는 나더러 먼저 발표를 하라고 했다. 내 뒤로 신입회원이 발표를 하고 정옥 씨와 희정 씨 순으로 했는데, 아우들은 내가 읽은 일화를 두고도 좀 다른 각도에서 얘기했다.
관동군 사령관 모리를 위해 음식을 하는 첸. 누군가 나를 알아주긴 하는데 목숨줄을 팽팽 하게 움켜잡힌 주인공은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해 요리를 하지만 요리는 요리사의 절실한 욕망이기도 하다. 살기 위하여 요리를 만들지만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는 아이러니…
그리고 전쟁 중에도 가장 강한 욕망은 ‘검소한 가정에서 어머니가 해주시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라는 진리. 쓸데없는 전쟁이 사라지면 여성적인 보살핌이 세계를 지배하리라는 따스한 신념을 그 소설 『칼과 혀』가 우리 여인들에게 여운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