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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망월동에서 드리는 ‘순교자호칭기도’
  • 전순란
  • 등록 2018-05-21 10:28:25
  • 수정 2018-05-21 10:2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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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0일 일요일, 맑다 흐려짐


내리에서는 바다로부터 여명이 떠오른다, 바다가 서쪽에 있는데도. 고깃비늘 같은 물결 위로 잠든 물고기를 거둬들이러 우리 동네 구장만큼이나 부지런한 어부가 굽은 허리를 편다.


어젯밤 내가 일기를 쓰자 율리아나의 두 손자 보스코와 요한 두 꼬마는 호기심에 가득 차 태블릿 피시에 써내려가는 내 글에서 오자를 찾아내는 놀이라도 하듯 재미있어 했다. 그러다 할머니가 각자에게 만원 자리 두 장씩을 주며 만원은 내일 주일 헌금, 만원은 맘마 말리가타회 회비로 내라니까 벌떡 일어나 진지한 표정을 한다.



“할머니, 만원만 헌금하고 만원은 나 용돈으로 가지면 안 돼?” “엊저녁부터 이 집에서 먹고 잤으니 내야 돼.” “우리한테는 돈 천원도 아끼면서 이래도 돼?” 손주들의 면박에 면구스러워하는 할머니에게 애들이 돈을 어디다 쓰냐 물어보니 작은애는 통장에 넣어 돈이 늘어가는 재미를 보고, 큰애는 돈을 모아 옷 사는 재미를 붙였단다. 


중딩1인데 거울 앞에 서는 시간이 길어지고 옷사는 일을 취미로 삼는 일은 외삼촌 강신부 어렸을 적과 비슷하단다. 강신부가 학교 다닐 때 싸게 파는 메이커 옷을 사서 멋지게 입고 다니면 친구들이 팔라고 조르고 그 옷을 친구에게 팔아 다시 새 옷을 사 입곤 했는데 그런 것마저 닮으니 참 신통하다나. 할머니 소원은 저 손주들이 외삼촌처럼 살레시안이 되는 것이다. 


강신부는 살레시안들이 도와야 할 폭력배 청소년들을 돌보는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 마포다리 밑 폭주족 청소년에게 딸딸이 수준의 오토바이를 끌고 밤 한두 시에 찾아가 걔들과 함께하는 모습은 하나의 미션이다. 그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내는지 모르지만 그 불량청소년들에게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는 메시지는 오늘 성령강림대축일에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아침 해가 떠오르는 시간에 성령강림대축일 미사를 올렸다. 미사를 주례한 김선오 신부님은 주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암흑과 슬픔 속에 그분이 떠나시며 보내 주신 충실한 동반자 성령이 우리 각자에게 베푸신 특은으로 우리가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모습을 얘기하였다.





아침식사 후 절반은 태안반도 끄트머리의 ‘솔향기길’을 걷고, 나머지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아버지들은 족구를 하고 엄마들은 나물을 뜯거나 주변 산보를 하고 12시 식사시간에 만났다. 


걷는 일은 힘들지만 쉬고 있던 모든 근육을 깨워 나태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촉진제가 된다. 무엇보다 보스코를 세 시간 가량 걸려 기분이 좋다.



점심 후 오후 1시 헤어졌다. 올가을 11월 3~4일 대전 수련관에서 모임을 갖기로 하고. 천둥 번개 치듯 뜨겁게 만나 정신없이 갈 곳으로 떠나다 보면 과로사 하는 건 살레시오 수사 신부들뿐만 아니고 그들 부모도, 후원과 봉사로 살레시안들과 이어지는 사람들 모두의 숙명이 아닐까? 활활 모든 걸 다 태워버리고 불처럼 뜨겁게 살다가 재가 되는 삶도 나쁘지는 않다.


5시에 광주 신안동 수도원에 도착하자 신학생들이 일렬로 서서 부모님들을 환영했다. 마치 먼 길에서 돌아온 부모님을 맞는 아들들의 자세여서 주변에서 신학생들을 올바르게 양성하고 있음이 보인다. 더구나 할아버지 노신부님까지 나오셔서 반기시니 황송하다. 양성 공동체에 저리 좋으신 신부님이 살아있는 교과서로 함께 계시니 살레시오회는 잘 될 일만 있다.


돌아오는 길에 ‘5·18민주묘지’에 갔다. 향을 피우고 보스코는 거기 묻힌 모든 사람의 묘석을 돌면서 마치 교회의 ‘성인호칭기도’를 드리듯이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대로는, 강우일 주교의 4·3 강론대로는 그들 모두 ‘현대의 순교자’다.





보스코가 광주 순교성인들 모두에게 호칭기도를 올리느라 2시간 넘게 묘역 참배를 했다. 보스코의 가슴 밑바닥에 늘 고여 있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 때문이다. 그런 슬픔을 주체 못하고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면서 1980년에 그를 서둘러 로마로 유학 보낸 분이 송기인 신부님과 윤선규 신부님이다. 나는 윤한봉의 묘 앞에 앉아 그를 위해, 묘역의 모든 연령들을 위해 기도를 바쳤다.


하늘은 맑디맑아 멀리 있는 무등산이 지척으로 보이고, 추월산 너머로 불타는 노을은 5·18 그날의 거리처럼 뜨겁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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