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휴천재일기] 부처님도 저 몽니들을 부디 한 자리에 앉히시도록 빌던 법회
  • 전순란
  • 등록 2018-05-23 10:38:03
  • 수정 2018-05-23 10:38:29

기사수정


2018년 5월 22일 화요일, ‘부처님 오신 날’ 맑았다 저녁에는 비.


8시 30분 강건너 진이네 펜션에서 광주학교 살레시안들과 함께 아침미사를 드렸다. 맑은 공기 속에 살면 마음까지도 맑아져 세상과 우애를 쌓기보다 하느님과 더 가까이 있음이 느껴진다. 이번에 온 신부님 두 분은 자신의 문제와 주변의 문제에 직면하여 어린나이부터 인생을 포기하려는 N포족 애들과 함께 살고 있다. 부모마저 포기하여 거친 세상에 방치된 아이들, 예수님 시대에도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버림받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더 간절히 찾았듯이 이 아이들에게도 살레시안이 더 필요하다.




미사경본도 성무일도도 핸드폰으로 읽는 시대…



아침 늦게 학교에 와 두어 시간 화장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여학생들을 보면 엄마라도 속이 터질 텐데 “그래, 그래. 화장해야지. 그래야 예쁘게 공부하지.”라며 기다려주는 신부님들 마음이 속으로 까맣게 탄다는 건 안 봐도 안다. 분노조절이 안 되는 아이에게 무작정 다량의 약을 먹이면 오히려 조정이 더 안 되기에 의시가 약 대신 담배를 처방해서 긴장을 저하시키더란다. 그럴 경우 담배도 안 피우는 신부님이 아이가 담배를 태우며 분노를 가라앉히기를 옆에서 기다려야 한단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살레시안들이 하는 일이 대부분 ‘곁에서 기다려 줌’임을 알겠다. 그 격한 시기를 넘기며 아이들이 새로운 세계로 건너가도록 기다려 주면서 여태와는 다른 삶으로 손잡아 동반하는 분들이다. 각자의 인생을 돌이켜 보아도 주님이 ‘이 형편없는 나를 참고 기다려 주셨음’을 알기에, 예수의 제자답게 그런 삶을 사는 살레시안들이 돋보인다.


미사 후 함께 식사를 했다. 먹는 모습은 ‘C.J 된장국’과 밥, 라면, 빵과 우유… 그분들이 함께 사는 아이들이 먹는 것 그대로여서 웃음이 나왔다. 우리 빵고도, 소년원에 갈만큼 중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제주에서 맡았다. 나 클 때만 해도 우리 다섯을 두고 우리 부모는 그럭저럭 키웠지만, 요즘은 애 하나를 두고도 쩔쩔매는 터라 그런 아이들과 어떻게 살아낼까 걱정스럽다. 힘들면 더 많이 기도할 것이고 아이들을 정작 보살피시는 분은 자기가 아니고 주님이심을 깨닫는 기회가 될 꺼다.




식사 후 신부님들더러 서암에 들렀다 오도재를 넘으며 지리산 전망대에서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를 한 눈에 바라보고서 상림엘 가라고 일러주고 우리는 ‘석가탄신일’을 축하하러 종교연대와 동지로 지내는 실상사 스님들에게 갔다. 스님들도, 종교연대도 모두 반기며 우릴 맞아 주었다. 새로 그곳 주지가 된 송묵스님은 인사말에서 이해인수녀의 글을 인용했다.




부처님 당신께서 오신 이 날 세상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 잔칫집인지요!

당신의 자비 안에 낯선 사람 미운 사람 하나 없고 모두가 친구이고 도반이고 애인입니다…


회주 도법스님이 봉축법어를 하셨다. 싯달타 왕자가 태어나자마자 일갈했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 세상에 오는 인간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하게 존엄한 존재라는 설법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경탄, 그것이 곧 그리스도교요 복음”이라던 가톨릭의 교리(요한바오로 2세의 '인간의 구원자' 10항)와도 맥이 같아서 듣기 좋았다. 


봉축식에서는 실상사 마야 합창단의 노래, 우리 종교연대 ‘길동무’ 중창단의 축하노래, 그리고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의식도 있었다. “업을 씻어내는 거라면 부디 오기 부리는 북쪽 우리 동생 마음도 바르게 펴지도록, 저 망나니 트럼프가 현대인류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는 어리석은 짓 말도록” 간절히 빌었다. 실상사 신도들을 대표하는 분의 ‘발원문’도 저 두 몽니를 중재하러 미국으로 날아간 문대통령이 부디 저 둘을 다독여 한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불교는 품도 넓고 늘 넉넉해서 절간에 오는 사람 모두에게 밥을 준다. 개신교는 외래인들에게는 안 주지만 적어도 신도들끼리는 점심을 나눈다. 가톨릭은 식사는커녕 차 한 잔 안 준다. 점심공양으로 나오는 비빔밥은 번잡스럽지 않고 소박하기에 여러 사람에게 먹을 것을 골고루 나눠줄 수 있다. 오늘은 떡도 나왔다. 


이번에 새로 주지가 된 송묵스님 방에서 그분이 손수내린 커피를 대접받고, 산내마을 여인들의 미투운동이라고 할 ‘이어말하기’를 잠깐 지켜보다 돌아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