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23일 토요일, 맑음
이른 아침 미루가 ‘지리산 종교연대’가 개최하는 ‘지리산 생명평화 기도회’에 함께 가겠느냐고 연락해왔다. 해마다 6월 25일을 전후해서 지리산권에 사는 종교인들이 좌우의 격전이 처절했던 지리산에 모여 그 전몰자, 희생자 혼령들을 위로하고 그분들의 희생과 염원으로 이 땅에 평화와 통일이 오기를 비는 기도모임이다.
죽은 이들에게 우리가 해드릴 것이 전혀 없어 이렇게라도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덜고 그분들이 바라던 꿈에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해 해마다 이 모임에 참석하면서 마음을 다잡아왔다. 미루네는 봉재 언니네 가족(봉재 언니, 임 신부님, 사촌동생 수녀)을 동승하고 우리 동네 문정리를 지나다 우리까지 실어서 달궁으로 갔다. 우리가 이 골짜기에서 학교 교가처럼 부르는 노래 ‘지리산’(박문옥 작사작곡, 정용주 노래)에도 익히 나오는 달궁이다.
아무 말이 없구나 한걸음 또 한걸음
작은 돌멩이 하나도 쓰다듬고 싶구나
달궁의 별빛 따라 반달곰 울음 따라
너의 사랑 찾아 헤맨다, 그대 이름 지리산... (‘지리산’)
오랜만에 만난 미루가 유난히 힘이 빠져 있어 안타까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오뚜기처럼 일어나고 속이 상해도 전혀 내색을 않던 친구가 저러니 내 마음까지 심란했다. 어머니가 계시는 양로원에서는 미루를 ‘명월이’라고 부른다 해서 “비단이 장수 왕서방, 명월이한테 반해서 비단이 팔아 모은 돈, 통통 털어서 명월이한테 다 주고 돈이가 없어도 띵호와, 명월이하고 살라서 왕서방 죽어도 좋다고 띵호와…”를 부르며 내가 놀려도 “내는 명월이가 아니고 만월이어유”라며 힘없이 웃는다. 아무튼 명월이든 만월이든 함께 달궁에 행사하러 간다는 것만으로도 모두 행복하다.
기도회 시작은 산내 굿패의 길놀이가 한껏 흥을 돋구고, 창녕에서 온, ‘우창수와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의 공연이 있었다. 알록달록 종이옷에 검정고무신,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춤과 노래로 우리를 즐겁게 했고 마지막 노래 ‘안아드려요’가 끝나고서는 관중석으로 달려와서 우리 모두를 안아주었다. 그 곰살스러운 행복감이라니…
마산에서 온 ‘가난한 노래 김산’이 ‘내 동상’ 김유철 시인의 시로 노래를 지어 불러주니 감회가 남달랐고, 시대를 훑어간 시 낭송(정지문 시인)은 감격적이었다.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이번에는 60세 이상 어른이 국토를 순례하고 있는 ‘은빛순례단’(보스코도 나도 가입은 하고서 한 번도 순례행렬에 참석 못했다)의 의의를 도법스님이 소개했고 순례단장으로 오신 이삼열 교수와 부인 손덕수 교수를 만나 반가운 인사도 나눴다.
2018 평화선언 합송
본 행사로 개신교 목사님들, 불교 스님들, 원불교 교무님, 천주교 신부님(수사님, 수녀님, 평신도) 순으로 기도를 올리고, 예의 비쥬얼 합창단 ‘길동무’의 노래도 여전히 동정의 박수를 받았다. ‘2018 지리산 평화선언’을 온 회중이 합송하였는데 젊은 세대가 작성한 글이어서 매우 구체적이고 감동적이었다.
다함께 ‘평화의 춤’으로 프로그램을 끝내고, 보스코의 제안으로 참석자 모두 돌아가면서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고서 실상사에서 마련한 주먹밥과 떡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1시부터는 오늘 은빛순례단의 순례코스인 뱀사골을 걸었다. 뱀사골 입구에는 지리산 탐방안내소가 있는데 여태 한 번도 그곳 전시관을 관람한 일이 없었는데 오늘은 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그곳을 둘러보았다. 해설사는 좌우 이념의 투쟁에 균형을 잡은 여성이어서 탐방안내소가 있는 남원이 전라도임을 실감했다.
현대사의 아픔을 품에 안고 침묵하는 산, 녹음처럼 짙고 생생하게 지리산에 아로새겨진 이념대립의 상처를 되새기며 계곡을 걸었고, 뱀사골 바윗굴에서 신문을 발간하던 석실을 보았으며, 우리 일행은 유룡대까지 올라가 뱀사골 시리도록 찬물에 발을 식히면서 속으로 헤아렸다.
이 산속을 누비던 빨치산들이 얼어죽든가 굶어죽든가 총 맞아 죽는 최후를 맞으면서 무엇을 얻고자 투쟁하다 사라졌는지, 그들이 영원에로 눈감으며 꿈꾸던 자유와 민주, 민족과 통일은 오늘날 어느 지경까지 다가왔는지 물으며 한없이 가슴이 아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