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0일 화요일, 맑음
내가 없는 사이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 창문 앞에서 우두커니 창밖만 내다보느라 지루했던지 그 곱던 호접란 연분홍 송이들이 청소하느라 한번 건드리자, 우수수 쏟아진다. “꽃이 다 떨어졌어요” “아니, 아직도 남았구만” 내게는 피워 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애타는데 보스코 눈에는 비들비들 가지 끝에 매달린 꽃망울로도 ‘꽃이 남았다’ 하니 그의 긍정적 사고라기보다 무관심의 시선임에 틀림없다.
‘내가 아래층 청소할 테니 당신은 2층 청소 좀 하라’니까 일이 바쁘단다. 나도 다 해 본 참이다. 어렸을 적, 만화책을 봐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시늉만 해도 엄마한테서 모든 걸 면제받고 모든 걸 용서받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 주던 엄마가 되어, 나도 말없이 위아래층 청소를 했다.
서울 집에 비해 두 배는 넓은 집을 청소하면서 친구들이 ‘20평짜리 집으로 줄여서 가니 청소하기가 수월해서 좋다’던 말에 수긍이 간다. 그래도 청소가 끝나 걸레를 빨아 햇볕에 널고 “됐다”며 허리를 펼 때의 기분은 청소한 사람이 받는 상급이다.
빵고신부가 제주 ‘숨비소리’ 정원공사를 다 끝냈다고 사진을 찍어 보냈다. 새로 시작하는 시설에 리모델링과 모든 서류 절차를 마치고, 가구와 주방기구를 장만하고, 정원공사까지 해냈으니 이젠 아이들만 받으면 그 집이 숨비소리를 낼 게다. 모두가 불우한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분들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기적이다.
‘아무 것도 없는데’서 모든 걸 해내는 경험은 좀처럼 흔하지 않은데 이번에 한번 해 냈으니 다음에 더 큰일이 닥쳐도 더 잘 해내겠지. 빵고에겐 큰 경험이었고 복이다. 하느님이 걔에게 뭘 바라시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는 나도 모르고 저도 모르지만 선한 분의 손길에 의지하는 신앙만이 우리 몫이요, 아니 그 신앙조차도 그 분이 주시는 선물이겠다.
청소가 끝나자 이번에는 부엌으로 내려가 점심을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민박사님은 애들이 결혼하여 다 떠나자 집에서 부엌을 없애자 하더란다. 내외만 덩그러니 남았는데 둘이 밥해먹자고 부엌을 둘 필요가 있겠냐는 것. 문밖에만 나가면 ‘먹자골목’이나 다름없고 특색 있는 식당도 셀 수 없이 많으니, 하루에 한곳만 들려도 죽을 때까지 못 가볼 것 같더란다.
집밖에 식당이 많다는 것만이 부엌을 없애자는 이유는 아니란다. 그 나이까지 아내가 부엌살림에 매달리는 것이 안쓰러워서란다. 데리고 있던 여직원들이 명절조차 시댁 부엌에 매달리는 일을 너무너무 싫어하는 모습을 보고서, 아내를 해방시켜 주고 싶어서란다.
그런데 휴천재에 사는 내게는 해당이 안 된다. 우선 동네에 나가 봤자 국수 한 그릇 사먹을 식당도 없고, 나가면 지천인 게 푸성귀인데, 모든 게 다 내 손을 거쳐야 입으로 들어가게 돼 있다.
오늘도 텃밭의 상추, 치커리, 고추, 가지, 깻잎, 토마토를 한 소쿠리 따왔는데 이것들을 키우고 거두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슬프다면 내 인생은 종칠 것 같다. 며칠 여행하다가도 내 손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싶고, 다 되어 근사한 그릇에 담긴 음식보다 싱싱하고 좋은 재료가 더 눈에 들어오고, 그것들을 먹음직한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솜씨가 스스로 흐뭇하다. 보스코는 어머니, 아내, 모든 여인들이 수행하는 이 작업을 일컬어 ‘성변화(聖變化)’라고 불러준다.
한겨레 만평
기무사의 군사반란음모죄를 조사하는 특별수사단을 꾸미라는 문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마터면 그 아비에 뒤이어 그 딸의 군사반란까지 겪을 뻔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일제시대, 제주, 지리산, 월남전, 광주를 거치면서 군대요 경찰이요 안기부라는 집단이 독재자의 손에만 들어가면 국민학살의 병기로만 쓰인다는 참담한 우리 기억이 진실이었음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오후에는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이사 간 집을 등기이전하는데 등기이사 인감증명이 필요하다고 해서 유림면사무소엘 갔다, 인감증명을 떼 보내려고. 면사무소 오가는 길에 강과 산이 며칠 못 봤다고 나를 반기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산그늘을 품어 안고 흐르는 냇물은 언제나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