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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그건 당신이 내 차 타고 다니는 값이야’
  • 전순란
  • 등록 2018-08-08 11: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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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7일 화요일, 맑음


새벽부터 일어나 마당의 풀을 뽑고 잔디를 깎고 정원 손질을 다했다. 손바닥만한 넓이고 아침 일찍인데도 무지 덥다. 오늘이 입추라는데 가을의 기미는 커녕 더위가 한풀 꺾이는 기미도 없다. 


더위를 먹었나? 냉방병이 걸렸나? 머리가 아프고 자꾸만 토할 것 같아 저녁엔 두통약을 먹고 두어 시간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지금 겨우 일기장을 폈다.


수십 년 살았던 서울인데 겨울에는 미세먼지로, 여름에는 불볕더위로 괴물이 되어버린 도시에 앞으로 어떻게 돌아올지 대책이 없다. 낮에 더워도 밤이면 시원해진다는 위로가 있어야 그 뜨거운 불볕더위와 싸울 힘을 얻는데 열대야에서는 기대고 쉴 언덕이 없다.



능소화도 더위를 먹었는지 꽃이 다 지고 나서 다시 한번 꽃을 피우고 있다



빵기만 떠나면 우리야 그날로 산으로 내려가겠다 벼르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쩌나? 어제 저녁에도 서광빌라 아줌마들이 건물귀퉁이에 자리 깔고 앉아 부채로 모기 쫓으며 다른 때 같아선 자리를 내주며 ‘빵기엄마, 여기 앉아봐. 골바람이 에어컨이야. 이런 동네 서울엔 없다.’라고 했는데 ‘오늘은 바람이라고는 한 점도 없어. 부채를 부쳐도 뜨뜻하고 끈적여 앉으라는 말도 못하겠다.’라는 인사. 지리산 엄천보건소에서 얻어온 부채를 선물로 하나씩 주고 돌아서는데 지영할메가 한마디 툭 던진다. ‘너무 더워 모기도 별로 없어.’ 좋다는 말인지 싫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곤충들마저 살아남지 못하는 폭염이라니…


전철을 타고 10시에 종각에 있는 공안과에 갔다. 왼눈은 사물이 크게 보이고 수술한 오른 눈은 멀리 조그맣게 보여 안경으로 조절할 문제인줄 알고 지난달에 안경 처방전을 써 달라고 찾아갔더니 백내장 수술 후 10% 정도의 환자에게서 오는 부종이라며 약을 처방해 주고 한 달 후 오라고 해서 오늘 가는 길이다. 


담당선생님은 많은 사람이 자기 눈의 이상을 감지하지 못하는데 그래도 민감하게 알아내어 다행이라며 치료가 잘 되어가는 중이라면서 위로의 칭찬을 해 준다. 앞으로 한 두어 달은 더 치료를 해야 하고 그때마다 병원에 오란다. ‘네, 선생님 보고 싶어서라도 올 게요.’라고 답하고 병원을 나섰다.


병원 바로 앞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어 ‘지하상가입구’라는 팻말에 혹시 1호선 종각역으로 이어지는 상가가 아닐까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런데 계단만 계속 내려가고 아무 상가도 없다. ‘세상에, 계단으로만 이루어진 집이 있나?’ 하고 마지막 층에 ‘입구’라고 쓰여 있어 선택의 여지없어 들어갔다. 그곳은 병원이 들어 있는 건물의 지하였다. 마치 개미굴 같이 미로로 이어진 식당가였다!


사람들이 근무하는 사무실 건물이 위에 있다면, 사무실 화이트 컬러도 생명을 유지하려면 먹어야 하고, 그들의 먹을 것을 장만하는 블루컬러 아닌 앞치마 근로자들의 취약한 작업환경을 보고는 가슴이 먹먹했다. 지하 3층! 이 한더위에 환풍도 안되고 온갖 음식냄새가 뒤엉켜 숨을 쉴 수도 없는데도 가게마다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젊은이들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해야 할 시간을 이런 곳에서 보내다니! 여기서 일하는 사람도 여기로 오는 손님도 모두 병들겠구나.’ 병든 지구, 병든 세상, 병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살려놓으시려면 하느님 고생 참 많으시겠다. 환경학자들과 미래학자들이 지구는 이미 자정능력과 환경회복의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는 불길한 진단들을 내려놓아서 하는 말이다. 



아침에 자동차 엔진오일을 갈아달라고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시내를 다녀왔더니 온갖 것을 다 갈아 놓고 16만원을 내라 한다. 다른 때 같으면 자세히 따지고 깎았겠지만 지난봄 성당 다니는 요셉이라는 사람한테 사기를 당한 사장, 아이 넷을 키우며 부인까지 고생을 하고 있기에 말없이 그 돈을 다 줬다. 기름밥 먹으며 살아가기가 참 폭폭한 듯하다. 


바퀴도 위험하다며 바꾸라기에 그 말엔 대답을 않고 단골 타이어 집으로 갔더니만 할인행사 중이라고 (영수증에 ‘브리지스톤 미쉘린 225 50R 17 94V’라고 적혀 있다) 개당 12만원씩 해서 48만원에 갈아주었다. 네 명의 청년이 함께 덤볐으니 한 명이 한 개씩 갈았다. 건장한 청년들이니 무슨 일이라도 해야 되지만 바로 옆길에서 오는 열기에 그들 얼굴과 등짝에 땀이 비처럼 흐르고 있다. 이 더위를 어찌 견디냐니까 일이 없으면 한 평 반 에어컨 된 사무실에 들어가 몸을 식히고 ‘또다시 불속으로’ 들어간단다. 세상에 쉬운 일이 없다. 


타이어 교체비가 너무 커서 집에 돌아와 “여보, 이 돈은 내가 받는 (내 일기를 사흘에 한 편씩 옮겨 싣는 곳에서 주는) 원고료에서 내는 거에요!”라고 보스코에게 자랑을 하니 “그럼, 카센터에 냈다는 16만원은 누가 내?”라고 반문한다. “응 그건 당신이 내 차 타고 다니는 값이야.”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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