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 20일 월요일, 맑음
요즘은 간첩이야기가 판을 치고 있다. 그것도 이중간첩이라고 6년이나 형을 살고 나온 사람 얘기다. 보통 ‘간첩’이라는 말이 나오면 ‘낮에 하는 얘기는 새가 듣고, 밤에 하는 얘기는 쥐가 듣는다’는 공포감을 갖고 주변을 둘러본다. 게다가 이중간첩이라면 좌우 어느 쪽에서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해도 당연하다는 게 한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다.
그런데 그 간첩이라는 사람이 라디오에 나와 풀어내는 얘기가 흥미롭기도 하고 ‘사실일까?’ 의심쩍기도 하지만, 남북은 갈라져 있고 민중은 분단으로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나라 위해 정치 하라고 뽑아놓은 대통령과 정치가들이 자기네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남북분단의 상황을 끊임없이 이용했다는 사실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공작>이라는 영화로 나왔다는 이중간첩 ‘흑금성’ 말대로, 정권연장을 위해서라면 국민의 혈세인 돈을 북한에 갖다 주면서, 전면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국지전쟁을 일으켜 달라’고 애원했으니 저것들이 사람인가! 오늘 ‘이산가족 상봉’을 하며 70년의 이별을 서러워하는 민중의 눈물이 저 자들에겐 한낱 웃음거리일 뿐! 앞으로 ‘김현희의 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세월호 진상’이 밝혀지면 그 분노를 내가 어찌 감당할까!
친일파의 후예로 민족의식은 눈곱만큼도 없이 강제징용자들이 제기한 ‘전범기업에 대한 배상책임 소송을 제지하라’는 바끄네를 대통령으로 뽑아 두고 ‘양승태 사법부’를 기득권세력의 충견으로 길들여온 반민족 세력을 국민은 작년에 촛불로 몰아냈다. 그런데 아직도 이 잔당들이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들려 하니 속이 터진다.
아침마다 텃밭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풀을 뽑아선지 무릎이 아프다. 동네 할메들이 ‘에구구구~’ 제일 아파하는 곳이 언제나 무릎이고, 그 다음이 기역자로 꺾인 허리다. 아직 허리는 안 아픈데 나이가 들자 다리 아픈 대열에는 드디어 합류하였다. 도회지 ‘싸모님’으로만 살아온 터라, 새댁으로 시집와서 한평생 논일 밭일 집안 살림으로 문지방보다 더 닳고 닳은 이곳 여인들의 무릎에는 되레 미안하기도 하고…
동네 아짐들에게 ‘세상에서 제일가는 명의’면서 다정하기까지 한 ‘엄천보건소’ 소장님께 들렀다. 소장님은 ‘몸의 병은 맘의 병에서 온다’는 이치도 터득하고 있어서 아프다는 설명을 1분 듣고, 2분에 약을 지어주고 약값 900원을 받고는, 30분이고 한 시간이고 아짐들 얘기를 들어준다. 보건소의 이 하소연은 의료상담에 해당하므로 딴 나라에서는 제일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여기서는 공짜다!
그게 고마워 아짐들은 생산물을 들고 와 선생님의 먹거리를 해결해 드린다. 그러니 보건소는 동네의 살롱이고 거쳐 가는 플랫폼이다. 거기 가니 바로 이웃에서도 보기 힘들던 인규 씨가 누구를 기다리며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다. 갈비뼈가 부러져 붙는 중이라 ‘일은 하나도 안 하고 놀고 먹는다’고 한탄한다. “엊그제 어디 가던데 어디냐?”고 묻기에 ‘친구 초상에 갔다 왔다’니까 ‘인명재천’이라며 ‘난 죽을라꼬 자동차 바퀴 밑으로 기어 들어가도 안 죽어!’ 하며 너스레로 날 위로해 준다.
맞기는 맞는 말이다. 누구는 아주 하찮은 사고로 죽어버리고, 누구는 불가사의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건진다. 어제가 ‘삼오제’였는데 말남 씨 아들들이 엄마를 잘 보내드렸나 전화로 묻고 출상부터 장례미사, 그리고 하관과 매장을 내가 찍어온 사진 100여 장을 이메일로 보내주었다. (결혼식은 전문사진사도 부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상가행사나 장례식은 찍어 남기지 않는다.)
사람이 죽고 나면 너무 쉽게 잊힌다. 벌써 그니의 죽음이 비현실로 느껴진다. 보스코는 그니의 가난한 인생과 가련한 모습이 눈에 밟혀 선지자 주 로사리오 알을 굴린다니 그니와 환경운동하며 든 정이 깊었나 보다.
인규 씨에게 고춧가루를 샀는데 가격이 내려갔다며 5만 원을 빼주기에 ‘이미 흥정한 가격이니 받으라. 무릎도 못 쓰는 엄니가 고추밭을 기어 다니며 제초제도 안 쓰고 풀 뽑고 키우고 따고 말린 고생을 생각하면 더 드려야 한다’ 했다.
그랬더니만, 고추 근도 넉넉히 담아주고 엄니가 만든 콩잎장아찌와 들기름, 토마토를 잔뜩 얹어왔다. 정으로 주고받는 이웃에서(‘이우제서’라고 소리 낸다)만 느낄 수 있는 인심이 지리산 골바람처럼 시원하다.
날씨가 시원해지더니 풀섶 벌레 소리도 맑고도 크고도 간절해졌다. 미물들의 사랑노래로 도회지 낮보다 더 시끄러워진 산골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