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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독립운동가는 ‘한국 어머니의 역사’다 - 청년들의 역사 멘토,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인터뷰 - #한국여성독립운동가 #청년 #한국여성독립운동가_사전_펀딩 #뱃지펀딩
  • 강지원, 전다현
  • press2@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08-27 17:37:35
  • 수정 2018-09-03 14:4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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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도 여성독립운동가 12인 달력 시리즈. 각 월별로 권기옥, 김란사, 김마리아, 오광심, 박차정, 윤희순, 조마리아, 고수선, 유관순, 조화벽, 정정화, 남자현.


“여기, 이 달력은 여성독립운동가 12분을 소개하고 있어요.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에서 오셨다고 했죠? 조마리아 여사는 아시겠네요. (웃음)”


독립운동연구소의 심옥주 소장은 짐작했던 무서운 교수님 이미지와 달리 환하게 웃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사무소의 화이트보드는 8월과 9월 동안의 일정으로 빽빽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건국의 어머니’들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전국에서 유일하게 한국여성독립운동가를 연구하는 곳에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심옥주 소장에 따르면, 활동상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2009년에 설립되어 약 9년간 부산에 있던 작은 사무소를 올해 서울로 이전했다고 한다. 국회 세미나, 펀딩 사업, 다수의 인터뷰 등 쉴 틈 없는 와중에 대학생들의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해준 것이 의아했다. 하지만 곧 그 의문은 해결되었다.


“문 옆에 세워놓은 포스터 보셨어요? 여기 학생들이 그린 거예요”


“이 뱃지는 우리 학생들이 제작한 건데, 실력이 대단하죠?”


“다음 달에 국회에서 우리 학생들이 발표를 해요. 여기 자료집에 보시면 발표자 중 학생이 거의 절반이에요. 내용이 훌륭해요.”


테이블에 마주 앉아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심옥주 소장은 각종 자료집을 가져오면서 연구소를 거쳐 간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연구소는 백년의 독립운동 역사를 다루는 곳이지만 어느 사회단체보다 젊고 미래를 향해 있었다. 심 소장은 본인의 역할은 이 분야에 있어 청년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심옥주 한국여성독립연구소 소장의 인터뷰 전문이다.


▲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의 어머니, 심옥주 소장.


(안중근 청년기자단) 소장님이 한국여성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윤희순 의사’라고 알고 있는데. 윤희순 의사가 최초의 의병장이라는 점이 특이하기는 하지만, 사실 항일 운동을 주도한 독립 운동가들은 많았잖아요. 그런데 왜 꼭 윤희순이었나요?


(심옥주 소장)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정치사를 전공했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던 제가 우연히 TV에서 본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에 운명처럼 꽂혔죠. 그리고는 의사가 살았던 강원도를 2년간 돌아다니며 기록과 흔적을 찾았고 2011년에 <윤희순의 민족운동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국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졌고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의 비율이 전체 여성독립운동가의 2%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저 역시 두 아이의 어머니로서, 한국 어머니들을 제대로 연구해야겠다고 결심하고 부산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사비로 이 연구소를 차렸어요.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윤희순 의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여성들은 독립운동에서 수동적인 역할만 했다는 편견이 있어요. 하지만 남성독립운동가들의 성격이 다 다르듯, 여성들도 현모양처형만 있던 게 아니었거든요. 윤희순 의사는 집안 전체가 독립운동가인데, 처음에는 시아버지를 뒷바라지 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다가 나중에는 이른바 ‘안사람의병 단체’를 꾸려서 독립투쟁을 위한 화약과 탄약을 직접 만들었어요. 윤희순 의사의 의병활동 25년 동안 의사의 독립투쟁은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했다고 볼 수 있죠.


수동에서 능동으로 변했다? 굉장히 와닿는 표현이네요.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여성독립연구소의 운영은 어떤 식으로 되고 있나요?


2009년에 부산의 작은 사무소에서 첫 출발을 할 때는 자금이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부산대 교수로 있으면서 받는 월급의 30%정도를 운영기금으로 사용 했죠.


외부의 지원 없이 시작했던 일이지만 놀랍게도 청소년들과 대학생들의 관심은 꾸준히 있었어요. 처음에는 부산에 있는 청년들과 활동을 했어요. 그때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8명의 청년들과 같이 소완도라는 섬에 가서 재능기부교육봉사를 한 적이 있었어요. 경비가 부족했음에도 학생들은 자비를 들여서 다녀 왔어요. 청년들이 한국의 어머니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느끼고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생각을 확장시켜줄 기회를 만들어주어야겠다 다짐했어요. 그 결과로 지금 연구소의 다양한 사업과 활동들은 청년들이 직접 기획하고 참여하고 있어요.


현재 사무실 직원은 다섯 명이 채 안되는데 사실 지금도 월급은 없어요. 저도 마찬가지구요 (웃음). 아무 준비도 안 돼 있는데 마음만 앞서서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은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저희는 휴가 때도 쉴 틈이 없어요. 그럼에도 늘 함께 해주는 사무실 사람들에게 미안하면서도 감사해요.


저희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어려운 조건에서 일을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운영기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계신가요?


운영기금을 마련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는데, 지금은 텀블벅 웹사이트에서 뱃지 펀딩을 하고 있어요(8월 24일 마감). 여성 독립운동가 뱃지와 엽서 디자인부터 기획까지 모두 연구소와 함께 활동하고 있는 <대한민국청년도전단>과 고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이 했어요. 웬만한 업체에서 해준 것 보다 훨씬 이쁘지 않나요? (웃음) 연구소 소속의 청년단체인 <한국청년도전단> 졸업생들이 이번 펀딩에 참여했다고 오랜만에 저한테 연락이 올 때면 든든하고 자랑스럽고 고마워요.


▲ 텀블벅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 영웅 뱃지 프로젝트’. 뱃지 디자인은 각각 강보민 학생(사직고)과 박지현 학생(부산조형여고)이 했다. 왼쪽은 남자현 애국지사를, 오른쪽은 권기옥 선생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한국여성독립운동가 인물사전’ 편찬도 펀딩을 통해 하고 계시는데,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광복 70주년 영화 ‘암살’ 이후에 한국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유관순 열사 외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게 현실이에요. 그래서 기획하게 된 인물사전인데 건국의 어머니들 중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은 여성독립운동가 299명 중 100명을 선정하는 것은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모두가 알려져야 할 분들이니까요.


그래서 세운 나름의 기준은, 사진이 있는 분들 중 100명만 선정해 알리는 것이었어요. 목표가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것인 만큼 사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려운 역사책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 특히 청소년들이 쉽게 볼 수 있게 에피소드 위주로 구성했습니다. 다음스토리에서 펀딩을 진행하고 있어요(8월 25일 마감).


이 외에도 한국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해 알리기 위해 시작한 프로젝트로는 여성독립운동가 열 두 분을 선정하여 제작한 달력이 있어요. 국가보훈처에서는 매년 독립운동가 열두 분을 선정하여 달력으로 제작하고 배포를 하고 있지만 매년 여성은 단 한 분만 선정되고 있어요. 더 많은 분들이 소개됐으면 하는 마음에 2019년도 달력 시리즈 1이 완성되었고 시리즈 2는 북한여성독립운동가를 담아 제작 중에 있습니다.


소장님 말씀에는 늘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열정과 함께 청년들에 대한 고민도 녹아들어 있는 것 같아요. 현재 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청년단체는 무엇이 있나요?


우선 중고등학생들 위주로 활동하는 <여성독립운동학교>와 <독립영웅기자단>이 있어요. <여성독립운동학교>는 지난 5월 달에 서울교육박물관과 함께 진행했고 올바른 역사관과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강의를 듣고 창의활동을 하는 곳이에요. 저도 직접 강의를 하고, 여러 전문가들도 강사로서 함께했습니다. 올해 하반기에 2기를 모집할 계획이에요.


<여성독립운동학교> 졸업생들은 대부분 자연스럽게 <독립영웅기자단>을 해요. <독립영웅기자단>은 연구소 소속 청년기자단이에요.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참여하는 <한국청년도전단>도 있어요. 역사 공부를 넘어 역사와 문학을 융합해서 역사 연구를 하기도 하구요, 다 같이 공모전을 나가 입상을 하고 특허를 내기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저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주고 실력을 발휘할 환경을 갖추어주는데 주력했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학생들이 저를 ‘멘토’라고 불렀더군요 (웃음). 주도적인 활동들을 통해 학생들의 역사 인식에는 ‘점’이 하나 찍힌다는 생각을 해요. 주체적인 활동을 통해 본인의 역사적 가치관을 세워나가는 거죠.


▲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


▲ 여성독립운동학교, 독립영웅기자단, 대한민국청년도전단 단체티.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유관순 열사와 동풍신 열사, 윤희순 의사, 곽낙원 여사, 남자현 열사, 박차정 열사, 정정화 의사 등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면서 이들을 ‘건국의 어머니’라고 기렸을 때 저는 그 표현이 낯설었습니다. 그만큼 최근에 들어서야 이들이 주목을 받는 것 같은데요, 현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문재인 대통령과 여러 정치인들이 한국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자주 언급하면서 대중들이 더 관심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하지만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잠깐의 인기에 편승해서 사람들이 제대로 된 독립운동에 대한 역사 인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단편적이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남을까봐, 그 부분을 항상 경계하고 있어요. 여성독립운동사에 대해 ‘관’에서 여러 가지를 주도하고 있는 것은 반갑지만 ‘민’에서 제대로 확산 되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시류에 편승해서 본질을 놓치지 않고 격 있게 가길 바라요. 왜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에는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한국여성독립운동가는 다름 아닌 ‘한국 어머니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여성독립운동사는 한 세대가 아닌 국민 전체가 고민해보아야 하는 주제고 무엇보다 앞으로 한국여성독립운동사의 미래를 주도할 청년들과 함께하는 것이 관심이 깊어지는 지금 집중해야할 포인트라고 생각해요. ‘여성독립운동가 연구원’과 ‘청년들의 멘토’, 이 두 타이틀은 제 어깨에 동등하게 실린 책임이에요.




#기자소감_인터뷰를 끝내며


강지원 기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데 동참하고자 찾아온 연구소였는데 벽을 메운 책들과 청년들의 활동 기록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소장님의 모습을 통해 삶의 자세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날로 추억된다.





전다현 기자: 월급을 받지 않고 십년 동안 활동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열정이 필요할까. 가늠 할 수조차 없었다. 많은 이들이 가는 쉬운 길이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어려운 길을 꿋꿋이 간 그녀가 존경스럽다. 청년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인터뷰 하는 내내 느껴져 한국여성독립연구소에 절로 관심이 가기도 했다.




[필진정보]
안중근 청년기자단 : 마지막 순간까지 동양평화를 염원했던 안중근 의사를 기억하며, 글과 영상 등의 컨텐츠를 제작해 통일과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가는 <안중근의사 기념사업회 - 청년안중근> 소속 기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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