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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성직자들의 잘못, ‘기도’만으론 막을 수 없다 - (기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 김웅배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09-25 11:42:44
  • 수정 2018-10-02 12: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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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흑백 TV방송 시절, 미국의 드라마나 영화를 방영할 때면 수상기 앞을 떠나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아직 잊혀지지 않는 드라마는 가수 빙 크로스비가 보좌 신부 역할을 맡아 열연 했던 성당과 지역 공동체에 대한 드라마였다. 


젊은 보좌 신부가 어느 가난한 본당에 부임해서, 몇 십 년 동안 사목하고 있던 본당 주임신부를 도우면서 일어나는 여러 에피소드들은 우리의 가슴을 참 따뜻하게 했다. 이미 가수로 성공한 빙 크로스비의 유모러스하고 선한 눈매는 많은 사람들을 매료 시키면서 드라마 속이긴 하지만 가톨릭 사제에 대한 신뢰를 높였다. 또한 독신으로 살면서 신비스런 존재였던 사제들의 세계를 비교적 현실적인 눈으로 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또 하나, 가톨릭의 고백성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새롭게 한 명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신부 역으로 주연한 영화 ‘나는 고백한다’가 생각난다. 살인 범죄를 저지른 신자가 고백성사를 통해 고백한 내용을 해당 신부가 다른 이에게 발설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역이용해 오히려 사제에게 살인 누명을 씌우며 벌어지는 스릴러 영화였지만 고백성사를 대하는 사제들의 내면이 잘 드러나 외교인들의 가톨릭에 대한 인식을 넓힌 영화이기도 했다. 물론 당시 필자는 외교인이었고 가톨릭 고백성사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잘 이해를 못했었다. 세례를 받고 한참 후, 흘러간 명화 시간에 다시 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미국에 살면서 현재 미국 가톨릭의 면모를 보며 과거 영화로 본 가톨릭교회가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에서처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나이 지긋하며 인자로운 모습의 연로한 사제를 보면 괜히 신뢰가 가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따름이다. 미국 성당을 들여다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다. 


한 사제가 한 본당에서 20년 혹은 30년씩 사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어떤 사제는 아예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란 조직은 만들어 놓지도 않았고 사제가 직접 혼자서 주일 헌금을 세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평신도 활동은 거의 없다시피 하고, 모든 성당의 일은 사제에게 일임하는 미국 신자들의 태도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조차 무색할 정도이다. 


물론 필자가 아는 일부 미국 성당의 문제이긴 하지만, 25년 전 우리가 처음 세 들어 한인 가톨릭 공동체를 시작할 때 흔쾌히 성당을 빌려준 미국 성당의 주임신부인 몬시뇰이 성추행 사건에 연루되어 면직되는 일을 보기도 했다. 수십 년 전 사건이 발목을 잡았던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맥캐릭 추기경은 한인 신자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가졌고 십 수 년 전에 워싱톤 슈라인 대성당에서 미 동부지역 한인 가톨릭 신자들의 대미사를 집전하기도 했다. 


▲ 미국 워싱턴 명예대주교 시어도어 맥캐릭 (사진출처=Vatican Insider)


당시에 미주 전역의 한인 신자 수천 명이 참석한 대미사는 우리의 전통 국악을 전례 음악으로 진행했는데, 국악 미사로 신자들의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그 우렁차고 장엄함은 단상의 맥캐 추기경의 찬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도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80년대 중반, 우리가 속한 메타천 교구의 교구장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성추행 스캔들의 중심에 서 있고 더군다나 그러한 행위를 메타천 교구장 때부터 시작 했다니…!  


10여 년 전부터 미주 가톨릭교회에서 촉발된 사제 성(性)스캔들은 이제 세계화로 진행 중이며, 북반구 남반구 가릴 것 없이 사제의 일탈행위가 교구장의 묵인 아래 조직적 범죄 은폐 수준으로 발전 하였고 이미 세상 법의 심판을 받은 교구장도 있다. 게다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다고 이를 이용한 일부 보수적 고위 성직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임을 요구하는 사태까지로 번지고 있다. 


포교 대상지역이라는 전근대적 틀 속에서 가톨릭에 대한 무조건적 호교론이 한국 가톨릭에서도 이젠 통용되기 힘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성직자들의 은밀한 일탈 행위도 은폐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교별 호감도 넘버원이며 민주화 운동의 지대한 공을 세운 한국 가톨릭교회도 성추문을 비롯한 여러 악재로 별로 편안하지 않다. 무릇 많은 이들이 세계 가톨릭이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가톨릭교회는 예수를 닮으려는 인간의 모임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다. 그 지체 안에는 테레사 성녀를 비롯한 성인 성녀도 있고 맥캐 추기경도 있으며 신자라고 자임하는 정상배, 모리배도 득시글거린다. 물론 흉악한 범죄자들 중에도 가톨릭 신자는 존재한다. 마피아도 성호를 그으며 범죄를 저지른다. 전체 인구의 90%가 신자라는 남미 국가들의 양상을 보라! 


사제들의 성범죄 또한 일반인들의 성범죄와 다를 바 없다. 어느 분야이던 이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은 있게 마련이며 그들을 교정하는 것 또한 인간 사회의 무한 책임이다. 미투 운동은 각계각층을 망라하고 있다. 첩첩산중의 암자에서도 대형빌딩의 사무실에서도 정계 법조계에서도 성당, 예배당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새삼스럽지도 않으려니와 얼굴 붉히며 목청을 높이는 것도 어색할 지경이다. 그렇다고 사제의 성범죄를 물타기 한다거나 우리 사법부처럼 꼬리 자르기를 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요한 2, 23-25)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사람(신자)까지 신뢰하지 않으셨다. 인간의 나약함을 예수님은 일찍이 간파하셨다.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아시는 예수님은 지금의 성 스캔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실까?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의 성 스캔들이 있었을까? 관련 문헌을 읽어 보진 못했지만 ‘일탈’이 있었다는 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헤로디아를 취한 헤로데의 불륜을 맹공한 세례자 요한을 보면 더욱 더 확신이 든다. 


어쨌든 불교나 개신교 등, 종교를 불문하고 성직자들이 일반인들의 성추행보다 더 비난을 받는 것은 예수님이 그토록 미워하신 사두가이 사제나 율법학자 바리사이들과 같은 ‘교만과 위선’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종교나 개신교와 달리, 일부 사제와 고위 성직자들의 잘못을 13억의 신자로 구성된 전체 가톨릭교회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언뜻 불공정해 보이지만 가톨릭이 자랑하는 보편 교회의 의미로 볼 때 이를 절대로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며 사도좌의 큰 고민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러한 신앙 외적의 사회적 파문은 가톨릭 신자들의 자부심을 손상시키며 자괴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세기, 성직자들의 과도한 권위적 행태가 야기한 이 사태는 이제 그 윤곽이 더욱 확실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더욱이 종교적 권위를 앞세워 저항이 불가능한 어린이들까지 농락한 이 사태를 인간의 원죄적·동물적·자연적 본능 행위로 환원시키기에는 유사 이래 인간이 그동안에 쌓아올린 인문 철학이 어리석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의 회개를 담보로 한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나는 고백한다’를 만든 영화감독 히치콕은 엄격한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지만 감독으로서 자신이 출연시킨 여배우를 성추행했다는 추문을 남겼다. 몽고메리 클리프트도 당시 세태에선 커밍아웃을 할 수 없었던 양성애자였다는 설도 있다. 


인간의 도덕적 기준은 인권의 신장으로 보다 세밀화 되고 고차원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학의 발달은 인간을 더 깊게 탐구하게 만들었고 많은 지식을 축적했다. 그러나 이런 작업의 심도가 깊어진다고 해서 계시 종교의 실존적 당위성이 저하되지도 않는다. 

 

과거의 잘못되었던 인식을 현대의 새로운 잣대로 재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잘못을 단연코 과거의 낡은 인식의 잣대로 허용할 수 없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과학의 신세계가 도래해서 인공지능이 발달한다 해도 인간의 이성과 감정을 초월할 수 없고 인간의 깊은 내면 역시, 인간이란 종의 출현 이래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는 설명하기가 어렵다. 


지난 5월, 마르타의 집에서 행한 아침 미사에서 교황님의 ‘고전적’ 강론 말씀이 폐부를 찌른다. “거대한 거짓말쟁이, 악마와는 대화할 생각을 아예 하지 말라”고 했다.


신부님들이 교우들에게 부탁하시는 말씀 중에는 아마 이 말씀이 가장 대표적인 것 같다. “교우 여러분, 저를 위하여 (악마로부터 벗어나게) 기도해 주세요” 이 부탁은 영원히 유효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교우 여러분, 저에게 (악마가 시키는) ‘일탈 행위’가 보이면 즉시 고발해 주세요. 묵히지 마시고…!” 라고 부탁해야 한다. 이는 사도좌의 ‘간절한 부탁’이며 ‘미래에 벌어질 사태’의 해법이기도 하다.


추기경을 비롯한 고위 성직자들의 못된 행실과 잘못된 판단을 ‘기도’만으론 절대 막을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필진정보]
김웅배 : 서양화를 전공하고, 1990년대 초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지금까지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에디슨 한인 가톨릭 성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4 복음서를 컬러만화로 만들고 있다. 만화는 ‘미주가톨릭 다이제스트’에 연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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