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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죽음의 골짜기 - 신성국 신부의 ‘요한, 생명이야기’ 42
  • 신성국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8-09-26 11:22:23
  • 수정 2018-09-26 11: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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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장의 서문 제목은 ‘목자와 양’이다.


이 문장의 핵심 단어를 보면 ‘목자’, ‘양’, ‘강도’, ’도둑’이다. 예수는 ‘목자와 강도’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알려준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목자는 양들 한 마리 한 마리의 특성과 상태를 잘 알고 있다. 


목자는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이름도 알고, 인격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도둑과 강도는 대중들을 비인격적인 무리 또는 군중으로 대한다. 그들은 대중들을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수단이고, 권력의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강도들이 양들을 양 우리에 가두는 이유는 보살피고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아먹거나 잡아먹기 위해서다. 본래 양 우리는 양들이 안전하게 피신하는 보금자리이지만 강도에게는 도살장에 보내기 위한 대기 장소다. 강도에게 사로잡힌 양들은 목숨을 빼앗기는 공포의 감옥이 양 우리다.


그래서 강도들에게 잡혀 있는 양들은 겁을 먹은 상태에서 지내며, 언제 잡혀갈지, 팔려갈지 모르는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지난 10년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 시기에 국민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살았다. 용산 재개발 과정에서 보여준 경찰의 과잉 진압과 수많은 인명 살상, 쌍용차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의 살인 진압과 잔인한 폭력 사태, 그로인한 30명의 자살자 발생, 304명의 세월호 학살 사건. 그야말로 도둑이며 강도들이 정권을 잡은 뒤, 수많은 국민들은 희생제물이 되었다. 


국민은 국가의 존재 목적이 아니라 정권 유지 수단에 불과했고, 언제든지 쓰레기처럼 버려지고, 개돼지처럼 희생물로 바쳐지는 희생양으로 취급되었다. 우리는 너무도 비참하고 불행한 시대를 겪어야 했다.


예수의 목자상은 우리가 바라는 지도자상이다. 예수는 우리들 하나하나를 아시고, 살갑게 챙겨주시고, 우리 삶의 처지와 상태를 잘 아시는 분이다. 그래서 우리를 잘 보살펴 주신다.


“목자는 자기 양들을 하나하나 불러내어 밖으로 데리고 나간다. 이렇게 양떼를 불러낸 다음에 목자는 앞장 서 간다.”(요한 10,3-4)


이 구절에서 ‘불러낸다’는 뜻은 ‘성전에서 불러내어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의미다. 성전은 사람들을 조직과 제도에 가두는 일, 율법 속에 가두어 옭아매는 유대교 체제와 이념을 말한다. 그래서 성전은 ‘어둠’이고, ‘죽음의 상태’를 상징한다. 노예처럼 만드는 억압 구조가 성전을 지칭한다. 


성전은 유대교 시스템의 상징이다. 성전에는 계급, 질서, 제도, 교리적 이념이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다. 이 성전 시스템에 의해 유대교는 질서를 잡아야하고, 백성들은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 그런데 예수가 나타나 성전 시스템을 붕괴시키려 한다. 예수는 사람들을 성전에서 벗어나도록 선동하고, 성전을 거부하고 있다. 목자는 사람들에게 빛과 생명을 주기 위해 성전 체제를 무너뜨리고 양들을 구하고 살린다. 그리고 당신이 앞장서서 양떼를 몰고 가신다. 


예수는 성전을 차지하고 권력과 이득을 취하는 자들을 강도, 도둑이라고 몰아세우며, 살기 위해서 거기를 벗어나라고 소리친다. 예수의 말을 알아들은 사람들은 그를 뒤따른다. 태생 소경이 그랬고,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고, 간음한 여인이 그랬다. 바로 이들이 목자의 음성을 알아들은 양들이다. 예수의 음성을 알아듣게 되면 세 가지를 얻게 된다. 


‘생명’을 얻는다. 즉 살게 된다. 성전은 죽음의 골짜기다. 생명을 얻은 자는 생명의 빛으로 살아간다. 두 번째, 양이 드나드는 문으로 마음대로 드나든다. ‘자유롭게’ 된다. 성전은 자유가 없다. 이념과 제도라는 틀 속에 가두고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한다. 사람들을 죄라는 올가미로 씌우고 억압한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자유롭게 산다. 세 번째, 예수를 따르면 ‘좋은 풀’을 먹는다. 착한 목자는 푸른 목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좋은 풀은 예수의 진리, 예수의 생명, 예수의 빛이 나를 살리는 좋은 양식이다. 착한 목자 예수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시는 분이다.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목숨마저 기꺼이 바친다. 그러나 강도는 자기 이익을 위해, 명예와 권력을 위해 양들의 목숨을 가차 없이 죽이는 자들이다. 오늘날 종교 지도자들은 목자인가, 강도인가? 요한복음은 묻고 있다. 




[신부열강]은 ‘소리’로 듣는 팟캐스트 방송으로도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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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진정보]
신성국 : 천주교 청주교구 소속으로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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