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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뉴스공장’에서 흘러나오는 보스코의 음성
  • 전순란
  • 등록 2018-10-12 12: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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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11일 목요일, 맑음



식구가 아직도 잠들어 있는 시간 가족 몰래 인천에서 서울 끝자락 우이동까지 차를 몰고 달려가 보스코를 상암동 ‘뉴스공장’까지 동행해준 친구가 몹시 고마운 아침이다. 그리고 새벽부터 일어나 흑임자떡 한 조각과 두유 한 모금으로 요기를 하고서, 올 들어 제일 기온이 낫다는 쌀쌀한 날씨에 지하철을 갈아타며 한 시간 반은 걸릴 길을 걱정했는데, 대문 앞에서 자기를 기다리던 차가 너무 고마웠다는 보스코는 엘리한테 감격해서인지 감기 때문인지 라디오에서 들리기로는 목이 잠겨 있었다. 


“왜 함께 ‘공장’에 들어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공장장’이라도 보고 가지 그랬냐?”니까 이엘리는 새벽에 나오느라 차림과 몰골이 말이 아니었고, 부지런히 집에 들어가면 가족 누구도 자기의 새벽 외출을 눈치 채지 못한다고(그래서 남자들은 참 둔하다고) 대답하였다. 


‘김어준의 뉴스 공장’에서 들리기로 보스코의 목이 잠겨있어 평소의 맑은 목소리가 아니어서 듣기에 좀 답답했지만, 교회의 핵심을 아는 사람답게 잘 한 인터뷰다. 평화와 민족을 사랑하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제2차 북미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리고 종전선언을 하면서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세 사람이 손잡아 올리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듯이, 이 땅의, 아니 전 세계의 가톨릭신자라면 언젠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판문점에서 문재인, 김정은과 함께 손잡아 올리는 장면을 왜 꿈꾸지 않겠는가?



인터뷰를 듣고 난 작은아들은 아빠가 전교를 많이 하셨다고 격려를 했고, 지리산 위아래 동네, 전국에서, 미국과 유럽에서까지 잘 들었다며 내게 보내오는 인사들을 듣다보니 SNS의 위력을 실감하겠다.


오랜만에 심순화 화백도 전화를 했다. 10월 17일 바티칸 광장에서 빠롤린 국무원장이 집전할 미사에 문재인 대통령과 주교황청 외교사절단, 한국 성직자 수도자 교우들과 교민들이 함께하는데 미사경본까지 제작되었단다. 심순화 화백이 이 ‘평화미사’ 경본의 앞면 사진을 보내왔다. 그니가 그려 2006년에 교황께 헌정한 그림이 앞면에 실려 있다. 통일의 그날,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축복 속에 우리 국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다.


그니의 회고에 의하면, 2006년 북한의 핵개발로 한반도 분위기가 극한으로 치달을 때 대사를 지내던 보스코가 ‘앞으로 10년 안에 남북에 평화가 온다’면서, 자기가 베네딕토 16세께 헌정하고 싶은 그림에 ‘평화’를 주제로 그리라고, 그리고 주교황청대사관저에 걸 그림(이것도 그니가 헌정했다)으로는 휴전선에서 성가정이 북한을 향해 축복하시는 장면을 그려달라더란다. ‘성대사님이 말씀하시던 일들이 11년 만에 기적같이 이 땅에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좋아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특히 예술가들의!



12시에 윤희씨가 보스코도 집에 없는데 점심이나 하자 했다. 집을 나서려는 참에 퇴비 나르는 아저씨가 도착하여 반은 우리 텃밭에 내려놓고 반은 방곡 사는 승임씨네로 실어갔다.


한기씨는 방곡에 집을 짓고 지난 5월부터 들어살면서, 그 땅에 꽃 가꾸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을 텐데, 꼬마 포클레인까지 사서 놀이하듯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고 있었다. 언젠가 ‘타샤의 정원’으로 가꿔내겠다는 그 부부의 꿈이, 하늘을 날아오르는 오색 풍선처럼, 곱다. 승임씨네가 퇴비를 실어온 아저씨에게 정성스레 차려내는 간식상만 보아도 타인과 사물을 대하는, 상대를 귀히 여기는 부부의 태도가 보인다.


윤희씨는 ‘사랑스러운’ 여인이다. 간결하고 유머러스하지만 그니 말에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움도 들어있다. 사물을 허투루 보아 넘기지도 않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자신에 대해선 깔끔하게 처신한다. 어디 나무랄 데 없나 그니를 뜯어보지만 예쁘기만 하니 내 눈이 삐었나?



보스코가 하루만에, 집 나갔다 돌아오는 가출소년 같은 꺼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읍에서 만나 윤희씨가 보스코에게 커피와 과일을 대접했다. 집으로 오자마자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바로 책상 앞에서 어제 아침에 하던 일을 계속하는 모습에서 방송인이 그의 천직이 아니었음을 본다. 


그는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데 공부 안하는 아이를 둔 많은 여인들에게 염장을 지르는 말 같아 이 얘기는 일단 비밀로 한다. ‘세상에 재미있을 게 없어 공부가 재미있다니…’ 우리 전씨 집안에서는 큰일 날 소리다. 나도 공부는 싫다, 노는 게 좋지.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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