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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기름주유소 사장님 대신 말씀주유소 사장님
  • 전순란
  • 등록 2018-10-29 10:51:42
  • 수정 2018-10-29 10:5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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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8일 일요일, 흐리고 비 그리고 우박



전에도 가능한 한 어린이미사에 갔다. 교중미사엔 주임신부가 미사만큼 긴 시간의 사족을 다는 수가 있어 어린이만큼 참을성 없는 이 ‘무식한 프로테스탄트’는 어린이와 같이 되기로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에 눈뜨는 시각을 보고 미사 갈 시간을 정할 요량이었는데, 습관이 무서운 게, 일요일이라고 특별히 늦잠이 안 온다. 우리 처지엔 도정 이기자가 하는 말처럼, ‘날마다 휴일’(Every day Holy day!)이어서!


오늘도 새벽에 들어왔습니다

일일이 별들을 둘러보고 오느라구요

... ...

참 돌아오던 길에는

많이 자란 달의 손톱을 조금 바짝 깎아주었습니다 (이병률, “살림”)


시월도 하순, 달은 그믐으로 이울고 차디찬 하늘엔 별들도 유난히 초롱초롱 빛나지 않던가? 


새로 온 주임신부님이 아이들을 어찌 다루는가도 궁금했다. 전에는 명랑한 신부님이 제단에서 애들과 끊임없이 눈 장난을 주고받아 정신 사나웠었는데, 반대로 새로 오신 신부님의 점잖은 태도에 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먼저는 그렇게 까불고 정신없던 애들이 의외로 얌전해졌다. 학교에서도 담임 따라 애들의 성격과 태도가 바뀌듯이, ‘나는 절대 안 그러는데 우리 애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애엄마들의 말이 다 거짓이듯이, 신부님 따라 어린이미사 오는 애들도 바뀐다.



미사는 조용하게 진행됐다. 강론시간에 신부님은 아예 얘들 앞으로 내려섰다. ‘신부님이 무슨 얘길 해줄까?’ ‘돈 많이 버는 얘기요!’ ‘아파트1000채 사는 얘기요!’ 성당에서치곤, 초딩 1,2학년 입에서치곤 참 엉뚱한 대답이었다. 그러다 성당에서는 뭔가 달라야 한다고 느낀 애는 ‘성당 50개 짓는 돈 얘기요!’란다. 


어른들이 듣는 TV 뉴스에서 부동산 얘기가 나오고 미성년자 명의로 엄청난 부동산과 주식이 소유되어 있더라는 뉴스가 저렇게나, 주일학교 애들에게까지 충격적이었던가? 엄마 입에서, 주변에서 돈 버는 얘기 외에는 별로 들어 본 일 없을 아이들에게 신부님이 어떻게 접근할까? 왕년에 교회학교 선생을 하던 나는 아주 흥미로웠다.


“50채 성당이라… 나도 성당이 많이 지어지길 바래요”라고 답하고선 “여러분은 커서 무엇이 되고 싶지? 꿈이 무엇이지?” 평소에 꿈에 대한 생각을 별로 안했던지 대답이 없다. 남이 하지 않은 꿈을 꾼 청바지장사 얘기로 시작하여 당신이 어려서 복사를 설 때 본당신부님이 ‘제덕이 바오로 다음에 커서 신부님 돼야지!’ 하셨을 때 ‘아니요. 저 장가갈 꺼예요. 그리고 주유소 사장이 될 꺼예요라고 얘기는 시작됐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뒤돌아보니 그때 신부님의 속삭임이 부르심이었단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눈먼 거지에게 ‘예수님이 지나가신다!’고 일러주고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라고 말해 주던 사람의 한 마디가 부르심이었듯. 당신은 기름주유소사장님 되는 꿈은 못 이뤘지만 그 대신 곁에 있는 사람들 귀에다, 여러분의 귀에다 반가운 소리 넣어주는 ‘말씀주유소 사장님’이 됐단다. 사랑스런 얘기다.


오늘 날씨가 개떡같다. 초봄에 쑥을 잔뜩 넣고 우리밀로 빚는 ‘개떡’이야 얼마나 좋은 건강식품인데, 날씨에다 이런 이름을 붙이다니! 바람 불고 비오고 천둥치고 우박까지 쏟아지며 ‘날씨 하나, 참 가지가지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이런 날일수록 부엌에서 뭐라도 만들고 싶어, 구례 데레사가 보내 준 왕밤을 날밤으로 한 통 까놓고, 딴 친구의 선물은 군밤으로 까서 한 통 만들고, 무화과 포도 배 단감을 저녁상에 가득 차렸다. 어제는 안 먹어도 배부른 아름다운 날씨였는데, 오늘 같이 하늘이 우울증 앓는 날은 욕구불만을 먹는 일로 채운다. 밤이 긴 겨울이면 유난히 찬바람에 골목을 누비며 ‘메물묵 찹쌀떠억~’ 하는 소리로 고픈 배를 더욱 시리게 만들지 않던가?


방콕에서 열흘 남짓 보내고 한 달여 만에 제네바 가족에게로 어제 돌아간 빵기가 잘 도착했다고 스카이프를 했다.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시우가, 그 새 아빠가 고팠던지, 오늘은 아빠 팔에 고목나무에 매미처럼 가만 매달려 있다. 그 옆에 시아, 그리고 며느리 지선이…


이렇게 가족에게로 돌아가 안온한 행복을 느낄 때마다 우리 아들은 두고 온 난민촌 사람들이 눈에 밟혀 마음은 그리로 또 떠나겠지. 아닌게 아니라 벌써 내일 새벽엔 다시 아프리카 우간다로 떠난단다. 우리 손주들, 다시 이산가족이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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