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30일 화요일, 맑음
그분이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무엇을 신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씀은 안하셨다. 11월 말에 어디 먼데를 다녀오려니까 ‘간다~ 걷다~ 신다’로 결론이 난다. 두 켤레 신발은 필요 없다지만 최소 한 켤레는 필요하다.
15년 전인가? 살레시오 보네티신부님이 알프스에서 산악구조대원을 하며 등산용품을 파는 당신 4촌동생을 소개해주었다. 등산화가 변변치 않던 우리는 먼저 엄청 비싼 등산화 값에 놀랐고, 반면 값이 싼 등산화는 너무 싼데 놀랐다. 물론 이 천하의 열녀가 보스코에겐 비싼 것으로 내 것은 ‘제이쌍거’로 한 켤레씩 샀다. 보스코가 그 신발을 10년 동안 신은 뒤 비브람 등산화를 그에게 사주면서 보스코가 신던 것은 내가 물려받았다. 그렇게 한 5년 다시 신다보니 바닥창이 너덜거리는데 그동안 든 정을 뗄 수가 없어 버리지를 못하겠다.
등산화 수선 하는 곳이 많이 검색되는 걸로 보아 고쳐 신는 사람이 나만이 아닌 것 같아 고객들의 추천벨을 제일 많이 받은 암사동 ‘슈메딕’에 전화를 하니 사진 옆모양 전부를 찍어 보내란다. 찍어 보내니 내 나이를 묻고 가죽 상태로 보아 이번에 갈면 내 남은 세월과 함께 평생 갈 꺼란다. 지금까지 신은 세월이 15년, 그럼 내 나이 85세까지만 산다는 얘길까? 요상하다고 갸우뚱하다가 85세에 한번 더 고쳐 100세까지? 아니면 ‘그 나이에 등산화 신고 산에 갈 일 있겠소?’라는 얘기는 아니었을까? 그는 말씨가 구두수선공이라기보다 힌두의 ‘그루’ 같다.
헌신발을 우송해야 해서, 또 날짜가 15일이나 걸린다 해서, 가까운 곳에는 없나 찾아보니 450m 전방 법종사 앞에 수선소 하나가 뜬다. 걸어서 찾아가보니 자욱한 매연 속에 창을 가는 사람들의 고생이 한눈에 보인다. 주변은 목공소, 싱크대공장, 구두생산판매장, 인테리어… 이웃에 살면서도 이렇게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가까이서 일하고 있음을 몰랐던 무심함이 맘에 걸린다. 모두들 열심히 살고 있었다.
빵기도 구두창을 갈아달랬다는 생각이 나서 가격이 4만원이란 말에 그 비용으로도 갈겠느냐 큰아들에게 카톡을 보내니 갈아 달란다. 설마하니 이번에 갈면 나머지 생과 함께 할 꺼란 말은 말기를…. 걔는 앞으로 50년은 더 살아야 하니까. 궁리 끝에 내 남은 생과 함께 하게 해 주겠다던 암사동으로 신발을 부쳤다. 그의 친절에 별 한 개를 더 얹는다.
오후 4시에 한 목사가 찾아왔다. 내일 아침에 강릉으로 함께 떠나기로 미루가 오는 길이니 함께 ‘4·19탑’에 가서 단풍놀이를 하자 했다. 해넘이 시각에 덕성여대 캠퍼스를 지나 4·19탑으로 올라가는 골목길로 접어들자 사람 사는 속내가 다 들여다보이는 단독 주택들이 이어진다. 따개비처럼 등대고 올망졸망 붙어있는 집, 넓은 집, 더 넓은 집, 안채를 가려면 문간채에서 한참을 가야 하는 집까지….
그런데 이 나이가 되니 아침에 드린 기도 외에는 더 바랄 게 없다. “주여, 우리의 온 생애에 우리를 성하게 해주소서” 하루하루를 별 탈 없이 보내게 해 주신 게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내 한평생이 반고비에서 떠나고 남은 햇수는 저승 문 앞에서 지내게 될” 나이가 되서야 깨닫다니 얼마나 아둔한가!
해질녘 4·19탑골에 누운 영령들은 지금 이 불타오르는 단풍과 그것보다 더 뜨거운 남북 평화공존의 움직임에 대해 얼마나 흥분들 하실까? 그때 함께 싸우다 살아남은 자들의 눈부신 변절을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어 돌아누운 분들에게, 이 ‘처절하게 가엾은’ 조국, 내 사랑하는 한반도를 위해 빌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정작 본인들은 역사의 진창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등으로 받쳐주는 저 영령들의 희생을 딛고서 민족의 수레는 그래도 굴러가고 있음이여!
솔밭 공원을 가로질러 와 춘천막국수와 녹두전을 먹고 한목사는 정릉으로 돌아가고, 미루와 나는 덕성여대를 질러서 되돌아왔다. 미루는 장가보낼 아들이 둘이나 있어선지 캠퍼스의 여학생들이 유난히 예뻐 보이는 듯하다. ‘종아리가 예뻐서 샘나는’ 처녀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었다. “우리도 한때는 물 잘 오른 봄날의 버드나무였단다. 너희들은 모르지?”
미루랑 우리 부부 셋이서 저녁기도를 드리고, 손석희 뉴스룸을 함께 보고, 한참이나 노닥거리다 각기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