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일, 맑음
새벽에야 잠들며 보스코에게 6시에 알람을 해달랬더니 ‘너무 피곤할 테니 7시 미사에 가지 말고 푹 자라’고 한다. ‘그래도 내기 신부 엄만데’하며 잠들었더니만 눈을 번쩍 뜨고 보니 정확히 6:00. 사람 머리속에는 내가 태엽 감고 들여다보는 시계가 하나 있음에 틀림없다.
‘애지람’ 본관 3층의 물탱크 옆 다락방은 겸허하게 머리를 숙이고 몸을 낮춰 기어들어가야지, 뻣뻣하게 서서 들어가다가는 머리를 호되게 후려 맞는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예전에는 허접쓰레기가 쌓여있던 다락방을 엄수사님이 경당으로 탈바꿈시켰단다. 1층 강당에는 동쪽으로 손바닥만한 창이 하나 있던 벽면도 탁 털어내고 데크도 덧붙여 널따란 시야를 확보하고 개인이 묵상할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한 사람의 의지와 추진력이 ‘애지람’ 전체를 전혀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오늘은 가톨릭에서 ‘모든 성인의 날’이어서 매일의 축일이나 기념일이 없는 성인들 모두를 한꺼번에 기념하는 축일이다. 구원받아 하늘나라에 들어간 모든 이가 성인(聖人)이므로 가톨릭 방식대로 소위 무명용사(無名勇士)의 날인 셈이다. 프란치스칸 세 분을 빼놓고도 다락방 성당에는 여나믄 교우들이 올라와 미사를 드리고 영성체를 하였다.
애지람 식구들 모두와 함께 아침을 하고 우리 부부는 미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서 춘천으로 향했다. 미루와 나의 페친으로 최근에 아내를 잃고 깊은 슬픔을 당한 이를 찾아보았다. 얼굴을 마주하고 그분의 아픔, 아내의 병고와 죽음, 그걸 견뎌내는 눈물겨운 사연에 귀 기울였다. 타인의 가슴 아픈 사연에 함께 눈물짓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누구는 빨리, 누구는 조금 늦게 찾아오는 죽음을 맞지만 사랑으로 죽어가는 모습은 항상 용서할 수 있다’는 대화를 나눔은 ‘뛰는 심장을 가진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표하는 예의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사람이 되셨으므로, 사람은 말씀 곧 언어를 통해 치유 받고 서로를 구원한다.
점심 무렵 우두성당 신축 공사장엘 갔다. 미루가 친하게 지내는 이신부님을 찾아뵙기로 하고 거창한 성당을 신축하는데 신부님이 혼신을 다하는 현장이다. 본장 회장님은 얼굴이 까맣게 타도록 현장 감독을 하고 계시고, 신부님은 통키타를 들고 전국 방방곡곡 성당을 돌며 모금을 해다 ‘하느님의 집’을 짓고 계신다. 본당의 성모회장님은 함바집을 차려 공사장 일꾼들에게, 본당식구들에게 점심을 차리고 계신다. ‘잘되는 집’이다. 우리 셋도 성당신축공사 함바집에서 점심을 얻어먹었다.
한 사제가 교우들과 합심하여 5년여의 청춘을 다 바쳐 성당을 짓고, 준공을 하자마자, 아니 때로는 준공식도 올리기 전에 타지로 발령가는 사제의 모습은 가톨릭에서만 볼 수 있는 초탈한 광경이다. 개신교라면 그렇게 교회를 신축한 목사님은 거기서 종신목회를 하고 아들에게까지 자리를 물려줄 것이다.
점심 후 화백 심순화씨가 성화를 그리는 ‘풍수원 성지’엘 갔다. 우두성당 이신부님과 본당 수녀님도 심순화 화백을 보러 동행했다. 한국 최초의 성당 가운데 하나인 이 산골성당 풍수원에는 이웃 배론성지에서 20여년 성지를 개발하고 대성당과 최양업신부님 유적지를 지은 배은하 신부님이 작년에 부임해 오셨다. 그곳 성지에 오는 이들이 조용히 기도할 ‘성체 경당’을 마련하는데 심화백의 그림과 도안한 성물을 설치하는 중이었다.
그 성체조배실은 병인박해를 피해 용인에서 풍수원 산속으로 도망오는 신자들의 피난행렬을 그린 심화백의 그림으로부터 시작된다. 저 깊은 산속, 신앙 외에는 기댈 곳 없는 어둠 속으로 그들은 무엇을 찾아 왔을까?
성지를 둘러보고 심순화 선생을 함께 싣고서 우리 셋이 서울로 돌아오니 밤 8시. 어제 서울에서 강릉으로, 오늘 강릉에서 서울로 차를 운전하면서 자기 지인들을 만나게 해준 미루가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