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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당신들에게 이 아이의 죽음은 무엇이었습니까?”
  • 김은순
  • 등록 2018-11-09 17:37:57
  • 수정 2018-11-09 17:3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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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순


2012. 11. 8 충주성심맹아원에서 숨진 12살 故김주희 양 사망 6주기입니다. 부모님이 다니시는 교회의 부목사님을 모시고 부모님 댁에서 추모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루 종일 내리는 비가 억울한 죽음의 기일임을 알듯 구슬프게 내렸습니다. 지역에서도 시간되시는 분들이 올라가 주희의 기일을 함께 기억하고 기도했습니다.


찬송가 487장 ‘어두움 후에 빛이 오며’를 부르고 목사님의 기도로 추모예배를 시작했습니다. 함께 읽고 묵상한 복음은 누가복음 10장 25절에서 37절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 설교해 주신 내용 나눕니다.


오늘 복음말씀 전에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찾아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습니까?” 질문을 했더니, 예수님께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으시고 율법교사에게 “하느님은 어떤 자에게 영생이 있다고 율법에 기록해 두었냐?”고 역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율법교사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하고 율법교사답게 정확히 답을 했습니다. 율법교사는 예수님께 또 질문을 합니다. “그럼 네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네 이웃이 누구인지 율법교사에게 또 질문을 한 것이 오늘 복음의 비유말씀입니다.


강도를 만나서 죽어가고 있는 한 사람을 보고 제사장도 레위인도 모두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인이 돌봐서 회복시켜주고 끝까지 책임지는 그런 모습을 통해 우리도 사마리아인처럼 그렇게 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생각해볼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보면 도와주고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피해서 지나갔을까요? 여리고의 위치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통로에 있어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느님께 예배드리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율법에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져서 또 다시 정결해지기 위해서는 일정기간 지내고 부정을 벗는 예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켜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더 중요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돌보지 않고 그냥 모른 척 지나쳤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기보다 율법을 온전히 지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게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만나 죽어가는 이웃에게 상처를 소독해주고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봐주며 돈까지 주며 비용이 더 들면 그 비용도 주인에게 갚아주겠노라고 합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더 중요한 가치관으로 여겼던 사람입니다.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세 사람 중에 누가 자비를 베푼 사람이냐고 묻는 예수님의 질문에 율법교사도 자비를 베푼 자라고 대답하며 정확히 답을 알고 있었습니다. 가서 너도 그렇게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부인할 수없는 진리입니다. 인생을 살며 이렇듯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알고 있는 것과 행하는 것은 실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답대로 행할 때 내 삶이 다르게 움직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 ⓒ 김은순


주희가 당한 사건과 그것을 보고 싸우는 것도 어떻게 보면 권력과 권력을 잡은 자들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고 하는 사람들을 자기가 가진 힘과 권력과 능력으로 억누르고 제압해서 피해보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권력이 갖고 있는 진실과 사실들을 파헤치고 가진 것마저 잃어가면서 헌신하고 있는 것 역시 생명을 선택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권력을 지키는 게 옳은가, 공의와 정의가 이 땅에서 이뤄지길 행하는 게 옳으냐고 묻는다면 우리도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베푼 사랑과 행함은 생명을 살리고 연약한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어 이 땅에 진정한 사랑과 화평과 평화가 이 땅 가운데 임하시길 사역을 했고 십자가를 통해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중요한 것은 희생과 고통을 받지만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이 이 땅에서 사랑을 행하는 길이었고 공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었기 때문에, 비록 우리가 십자가와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겪을지라도 그 일을 겪었을 때 하느님께서 그 일을 통해 하시는 일이 있으시다는 것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권력으로 인한 상처와 아픔들이 있고 보이지 않는 깜깜함도 있지만, 그 고통과 시련 속에서 예수님의 아픔과 시련을 묵상하며 앞으로 더 힘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할 수 있는 일들 해나가면 좋겠다고 목사님께서 말씀을 나눠주시며 위로와 기도로 축복해주셨습니다. 


함께 한 모두가 주희의 억울한 죽음이 안타깝고 하루 빨리 진실규명 되길 간절히 바라며 기도했습니다.


▲ ⓒ 김은순


예배 후 부모님께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을 여쭤봤더니, 가까운 지인께서 무료로 땅을 내어주시며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며 작은 소농이라도 하며 지내다보면 정신적으로도 도움이 될 거라고 내어주셨다’고 하네요. 농사짓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하시며 경험이 없어 실패도 했다고 말씀해주셨고, 10살인 아들이 누나의 죽음을 눈치는 챈 것 같은데 이야기 꺼내시는 게 두렵고 자신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동안 주희의 기일은 거리에서 보낸 터라 아시는 분이 청와대로 오시어 국화꽃을 갖다 주면 피켓에 꽃을 붙이고 시위하셨다고 합니다. 작년 11월 9일 대법원 판결일까지 늘 거리에서 시위했던 터라 딸의 기일도 거리에서 보냈고 진실이 규명되지 않아 기일이라고 형식을 갖춘 적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추모예배를 모두 마치고 청주에 돌아와서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드렸더니 어머님께서 6주기 추모예배를 함께 하며 너무 따뜻하고 좋으셨다고 하셔서 제 마음도 좋았습니다.


천주교회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로 보내고 있습니다. 충주성심맹원 의문사 사건에 관련된 모든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에게 이 아이의 죽음은 무엇이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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