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2일 월요일, 맑음
꽃이 떠난 자리엔 붉고 아름다운 꽃잎이 포근한 향기를 나눠준다. 사람이 떠난 자리엔 내게 남긴 숙제가 많아 우선 빨래 청소 뒷정리가 있고, 그런 거야 끝내면 되는 일이지만, 마음에 남기고 간 말들은 내 스스로 해결해야 되는 짐이라, 떠난 이는 자취도 없는데 그 여운이 남아 심사를 어지럽힌다.
보스코와 둘이만 살면서 각자 자기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마음에 부딪히지 않는 이야기나 재미있는 얘기나 실없이 하고는 한참을 웃고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게 둘의 일상이다. 그러다 모처럼 찾아온 사람이 몇날며칠 폭포처럼 말을 쏟아놓고 가면 머리도 마음도 그 소리들을 제자리에 찾아 쟁여놓고 일상으로 돌아가는데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머릿속이 한참 뒤엉킨다.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은 말을 잘하고 말을 즐긴다. 특히 오빠는 입의 기능이 말이라고만 생각하는 듯,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말하는데 100% 활용한다. 오빠집이 이웃에 있어 함께 차로 어딜 가는 자리라면 운전하는 내가 도망갈 방도도 없어 끝도 갓도 없이 얘기를 들어야 하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익숙했고 우리 오빠니까 견딜 만한데, 보스코는 본인도 평소 말이 없는데다 많은 말을 듣는 일은 익숙치 않아 몹시 힘들어한다.
말수적은 남자와 반백년을 살다보니, 며칠간 누구와 붙어 지내며 끊임없이 말을 들어 줘야하면 머리에 과부화가 걸린다. 왜 수도회에서 침묵피정을 하는지 이해가 간다. 법정스님은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며 당신의 책까지도 더는 출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사실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고 나면, 내 영혼에서 뭔가 중요한 게 빠져나가고 껍데기만 남는 휑한 기분이 들곤 한다. 오늘 오전엔 청소와 빨래를 빼고는 멍하니 앉아 머리 속을 헹궈냈다.
마음을 비우는 좋은 방법 하나가 몸을 비우는 일. 미루가 준 팔보효소와 함초로 사흘 절식을 시작했다. 보스코더러 같이 하자니까 자기는 머리 쓸 일이 많아 안하겠단다. 고급의 단당류가 필요한 머리니까 ‘배가 나와도 입은 먹어야 한다’는 지론. 한국가톨릭교회를 위하여 내가 양보했다(그가 하는 교부의 번역작업은 50년 100년을 두고 읽힐 도서들이니까). 아침상도 그에게 걸게 차려주고 나는 효소 한 컵. 그에게 점심 독상을 차려주고 나는 효소 한 컵을 마시며 맛있다는 추임새를 넣어주고...
점심이 끝나자 법화사까지 왕복 8km를 걷자고 제안했다. 26일에 먼 곳까지 걸으러 가는데 일행들이 77세 노인의 합류로 걱정들 한다는 소문이라고, 젊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걷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논리적으로' 설득을 하니 역시 '철학자답게' 순순히 따라나선다.
거기에는 스.선생의 공도 크다. 얼마 전 산티아고 가기 전, 그는 하루에 27~28km씩 걷기 연습을 했다. 첫날은 삭신이 쑤시고 아파 죽을 것 같다며 자리에 벌렁 눕더니만 둘째, 셋째 날부터 점점 몸이 부드러워졌고 드디어 산티아고 800km 길을 하루 30km씩 거뜬히 걷고 돌아왔다. 우리 몸은 주인이 하는 말이 아니라 하는 행동을 보고 적응하는 게 틀림없다.
도정 산길엔 산국과 개미취가 만개했고, 먼 산에는 창조주께서도 스스로 찬탄하실 멋진 가을 그림을 그리셨고, 하늘에는 한가로이 늦가을 구름이 오가는 중이다. 산비탈 다랑밭에서는 아짐들이 들깨를 털고 콩타작을 하며 가을걷이에 분주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보스코가 힘들어도 힘들다 말 않고 첫날 걷기를 잘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산국과 개미취 꽃향유를 한아름 꺾어와 방방이 꽂아 놓으니 집안도 늦가을이다. 그러나 알프스 마리오가 이번 폭풍으로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수백만 그루 쓰러진 숲에서 가진 애도의 영상은 참 씁쓸하다. 하지만 자연에도 바하의 음악으로 애도를 바치는 이탈리아인들, 감수성 깊은 그 사람들의 마음이 아름답다.
밤에는 빵기가 우간다 잘 다녀왔다는 전화를 했고, 한 달에 한번 가게를 쉬는 실비아도 전화를 해서 아무도 없는 집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단다. 하느님도 엿새 일하시고 이렛날은 쉬셨다니 아들도 실비아도 나도 생긴 모상 그대로 좀 쉬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