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5일 목요일, 맑음
엘리자베트 스트라우트의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가 오늘 독서 모임에서 읽은 책이다. 소설의 배경은 아름다운 바닷가 작은 마을. 사람이 산다는 게 다 거기서 거기지만, 주인공 올리브와 엮인 주변 사람들의 얘기를 얼마나 섬세하게 그려냈는지 마치 우리 주변 이웃의 얘기 같다. 분명 평범한 사람들의 얘기인데 ‘이렇게 글을 쓸 수도 있구나!’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여성답게 섬세하고 부드러운 남편에 비해 큰 덩치의 여성답지 않은 거친 성격과 말투의 올리브, 그래도 엄마로서 아들을 감싸 안아 키워 우리 보통 엄마들이 하듯이 마마보이로 만들고, 그 아들이 장가간 날, 아들-며느리 방에서 며느리의 옷에 매직을 긋고, 브래지어를 훔치고, 며느리가 제일 좋아하는 신발 한 짝을 핸드백에 넣어 오는 모습…. 정말 ‘마음으로 그러고 싶은 일을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도 있구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좀 특별한 어머니다.
거식증으로 사랑에 실패하고 소외된 소녀나, 어머니의 자살을 목격한 정신과 의사의 자살기도, ‘빈 둥지 증후군’을 앓는 노인, 집을 갖고 침대를 정돈하고 싶은 게 꿈인 스무 살의 신부가, 제일 친한 친구와 사냥을 간 남편이 어스름에 사슴이라고 오인한 친구의 라이플총에 죽어간 후, 그녀에게 찾아 온 또 다른 고양이의 죽음, 자기가 돌보던 소년 제리와의 재혼, 계획되어진 게 없는 인생에서 아프게 힘들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사실 내게는 모두 슬펐다. 근본적으로 슬펐다. 책 표지에 꺼내 놓은 말처럼 “육지로 갓 잡아 올린 물고기 마냥 펄떡이는 생의 잔인함. 울지 않고 울음에 대해 말하는 법”을 그려놓은 책이다.
결국 인생이란 기쁘든 슬프든 누구에게나 살아내야 할 숙제다. 지금 우리에게도 각자의 문제는 있다. 우리 중 육아와 직장으로 제일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진이는 자기 또래에 혼자 사는 여자를 보면 그렇게 부럽단다. 그런 자유로움을 스스로 던져버리고 자기처럼 결혼하려는 여자를 보면 제일 한심스럽단다. 엄마에게 ‘엄마도 지금 나처럼 힘들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하더란다. ‘그렇게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내가 결혼한다 할 때 좀 말리지 왜 말 한 마디 안 했느냐?’는 물음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좋았던 기억이 더 많았단다’라는 대답. 진이도 세월이 흐르고 더 늙어 가면 그렇게 생각하게 될까? 기대 반 의심 반이란다.
올해의 여름옷과 겨울옷을 가는 시간이 다른 해보다 좀 늦었다. 이젠 치수에 안 맞아 버려야할 옷들도 많고, 입기 싫은 것들도 있어 골라내며 정리를 했다. 몇 년 전까지는 내가 다 했는데 이제는 보스코와 둘이 해야 옷상자를 올리고 내리는데 더 수월하다는 걸 알게 됐다. 늙으면 기억력만 1+1=1이 아니고, 육체노동도 둘이 합해야 겨우 한 사람 몫을 해낼 수 있다. 반푼이가 안 되려면 상대의 존재가 참 소중하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법화사길 넷째 날. 엊그제 미루와 내려올 때 도정 할머니가 이 ‘서울땍’을 알아보고 ‘놀고 가라’고, ‘사람이 너무 없다 보니 사람이 너무 고프다’며 ‘쬐께만 앉았다 가라’ 하셨는데, 오늘은 산봇길에 여러 사람을 만났다.
집을 막 나서서 고춧대를 낫질해 말리는 논에서 인규씨가 붉어진 고추를 따고 있고, 엄니는 상철 지붕에 올라앉아 풋고추를 찹쌀풀 무쳐 널고 있다. 강영감은 안 노인과 들깨를 털고 있고, 기욱이엄마는 병원 갔다 온다며 땅바닥에 퍼질러앉아 아픈 허리를 두드리고 있었다. 수영씨는 도정 가는 한길에서 부인과 도리깨로 콩을 털고, 내려오는 길엔 도정 아랫터 ‘부산사람’ 부부가 강아지 산보를 시키고 있었다. 이 정도면 동네 사람들 절반은 만난 셈이니 만날 복이 터진 날이다.
우리는 오랫만에 부산에서 돌아온 도정 체칠리아씨를 불러내 법화사까지 함께 걸으며 그동안에 그니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을 얘기 나눴다. 그니에게도 벼라별 이야기가 많은데 ‘죽고 살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기에 신앙인으로 감사하며 살아간단다. 여인들의 삶은 어디서나 ‘울지 않고 울음에 대해 말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리라. 사바세계에서 울지 않는 법을 일찌감치 익힌 듯 법화사 주지스님은 가을걷이에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