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9일 수요일, 맑음
어제 밤엔 이틀 분의 잠을 잤다. 바다 속 심연의 침전물처럼 고요에 눌려 잠을 잤다. 이른 새벽 도시까마귀의 소리, 매연에 쉰 목소리가 간혹 귀를 거슬렸지만 우리 서울집 전봇대 위나 지리산 휴천재에서 듣던 까마귀떼 소리려니 하였다. 산골이면 까치떼가 황제처럼 군림했으나 언제부턴가 물까치떼에 쫓겨 권력의 덫에 갇혀 몰락한 귀족 신세가 되었다. 네팔에선 아직 물까치가 까마귀를 제압하지 못한 듯하다.
오늘 아침식사. 카투만두의 ‘옐로우파고다호텔’의 아침식사는 화려했다. 에그스크램블 두개를 제단에 향 피우듯 정성스레 조리하는 소년요리사의 모습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한 기도가 들어 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아침식사를 하고서 짐을 챙겨 7시 30분에 포카라로 가는 전세버스로 떠났다.
거리를 가득 메워 탁류 흐르듯 버스 택시 트럭 오토바이 엄마의 손을 잡고 등교하는 아이까지, 그리고 매연과 앞이 안 보이는 하얀 먼지에 덮여 카투만두의 시간은 정지해 있었다. 1960년대 우리 가난하던 바로 그 시절로 돌아간 거리에서 명치 끝에서 싸하면서도 뻐근히 올라오는 아픔을 맛본다.
그 시절 서구국가 공업지구를 찾아간 박정희가 굴뚝마다 까맣게 뽑아내는 검은 연기를 보고 ‘바로 저거다! 우린 언제 저런 굴뚝의 연기를 볼 수 있나?’ 하며 부러워했다고 한다. 우리가 만들어 팔아먹을 수 있는 건 가발과 와이셔츠 정도가 전부였던 시절의 얘기다. 이제는 그 많은 네팔청년들이 한국에 일자리를 찾아오고, 그들의 인권과 의료를 위해 수십 년 투쟁하며 최의팔 목사님이 일궈놓은 ‘트립티공정무역운동’ 현장을 둘러보러 우리가 네팔에 온 길이다.
모든 초록잎이 먼지에 덮여 회색인 세상, 식육점 안에서는 살 없이도 뼈에 붙은 고기를 팔고 그 앞에선 거리의 굶주린 개들이 더 야윈 모습으로 몰려 있다. 포장 안 된 한길가 수도가에는 물을 받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 긴 머리를 풀어 대야에 머리를 담가 정성스레 머리를 감는 처녀까지 분주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채소가게, 과일가게, 옷가게, 검은 연기를 뿜으며 타이어를 태우는 고물상, 오토바이가게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찾는다면 그것은 추억어린 ‘가난!’
가난하지만 모두 함께 가난하다면 삶은 견딜 만하다. 우리의 어린 시절을 닮았고, 중국의 90년대를 보았고, 인도의 2000년대를 보던 풍경 그대로다. 우린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고 스스로 자만하지만 ‘우린 인도인이나 네팔인만큼 행복해졌는가?’ 묻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낡은 공동주택 난간에 그려진 화려한 꽃들만큼, 가난한 사원에 앉은 가난한 신들에게 바쳐지는 꽃둘레만큼, 네팔여인들의 옷자락에 직조로 짜넣은 화려한 무늬만큼, 그 많은 버스와 트럭의 앞면에 그려놓은 현란한 색조와 무늬만큼 그들은 행복한 듯하다. 그리고 어느 도시 간선도로를 막고 시내 한복판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식행사는 삶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가!
특히 트럭 앞면들이 화려하게 그려져 있었다. 가난해도 저기에는 혼이 있다! 저 색, 저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가난한 삶에도 서린 위대한 예술혼을 보고 그들의 꿈을 들여다보는지도 모른다. 인간은 영혼이기에 아무리 가난해도 그 삶에 여유를 주는 예술을 창조한다.
모든 것이 엉켜진 카투만두 거리를 겨우 벗어나 카트만두계곡을 외가닥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고속도로’로 들어선다는데 2차선의 한 선으로 가다가 좀 한 적한 길에 집이 한 채 있고 청년이 돈을 받고 표 딱지 하나를 주는 게 고속도로 톨게이트 전부. 길은 여전히 2차선이고, 버스 트럭 승용차에 학교 가는 아이들에다 병아리를 거느린 암탉과 희거나 검거나 노랑이 소는 새로이 등장한 주인공.
차에 이상이 생겼다며 버스가 타이어 수리공이 있는 휴게소에 멈췄는데 운전석(영국식으로 오른쪽) 뒷바퀴가 반은 주저앉아 있다. 타이어는 골도 안 보이게 반질하게 닳아졌고 동행한 조수가 차밑으로 기어들어가 돌로 바치고 타이어 두 개를 빼서 튜브를 떼워 바람을 넣어 바꾸기까지 두 시간 반. 함께 가는 일행 누구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고 막간을 이용해 다섯 명은 멀리 보이는 학교까지 방문하여 네팔 교육현장의 생생한 소식을 전해왔다.
비행기로 25분 걸린다는 포카라까지 250여 킬로 거리를 12시간이 걸려 도착. 최목사님이 추진하는 사업이 25분 비행기길을 열두 시간 걸려 현지주민들이 일궈내게 돕는 일 같다. 마차푸차레의 위용이 석양에 설산으로 드러날 무렵에 푸카라 호숫가 호텔에 짐을 풀고 네팔의 제2도시 포카라에서 한식당을 하는, 한국에 이주노동자로 다녀간 네팔인이 돼지농장을 하면서 성공한 식당에서 푸짐하게 삼겹살을 대접받고 호텔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