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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천재일기] 히말라야 해돋이 속의 다울라기리봉과 안나푸르나봉
  • 전순란
  • 등록 2018-12-03 10: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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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일 토요일, 맑음



새벽에 히말라야의 해돋이와 안나푸르나(Annapurna)를 보려고 5시 30분에 전망대 게스트하우스를 나서야 했다. 그런 일엔 유난히 부지런한 보스코가 3시 30분부터 일어나 하늘의 별을 찾는다. 별은 비로드드레스에 박힌 보석처럼 히말라야의 맑은 하늘에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이 게스트하우스에서는 그래도 이 지역에서는 드문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있다. 진짜 좌변기가 있는 수세식 화장실에다 태양열 온수기에서 더운 물도 나온다. 방에는 유리창이 있어 밖을 내다볼 수 있고, 문에는 안쪽으로도 잠금장치가 있어 안심하고 잠들 수 있다(모든 집이 방밖에 잠금장치가 있어 사람이 없어서 잠근다는 표시 같았다). 대문에는 제주도처럼 대나무를 두개 걸쳐 놓았는데 ‘집에 사람 없음’ 표시란다.


옷을 잔뜩 껴입고 어둠 속에 핸드폰 전등을 켜 길을 밝히며 산을 오르는데 반쯤에서 갑자기 축축한 새벽안개가 우리를 감싸며 옷 속으로 스며들어 뼛속까지 춥다. 이렇게 되면 아침놀에 붉게 빛나는 태양을 보기도 틀렸다 싶은데…. 


정상에 올라 전망대까지 오르자 보스코가 일행을 격려하였다.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리며 각자가 올해에 감사드릴 일과 내년의 바람을 서로 나누자’는 제안을 했다. 이 신성한 새벽에 대부분 교인이고 타인을 폭넓게 사랑하는 심성이 비슷해 서로 공감이 갈만한 얘기를 했다. 



한국에서 일하다 귀국하여 네팔에서 성공적으로 재정착하고 의미있는 삶을 개진하는 네팔인들을 취재하는 독립다큐를 제작하는 PD와 사진기자 부부는 얘기가 좀 달랐다. ‘작년에 네팔에서 죽은 두 친구(하나는 히말라야 등정 중에, 하나는 자기 나라의 문화를 펼쳐보려는 삶을 살다 심장마비로 죽은 네팔인 목탄 미노드)를 회상하고, 이번에 제작하는 다큐가 성공해 돈 좀 벌어 좋은 일에 쓸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가장 진솔하고 현실적인 발언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바람에 하늘이 잠깐씩 벗겨지며 해돋이와 히말라야 영봉들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사방으로 둘러선 안나푸르나 5봉과 다울라기리(Dhaulagiri)의 웅장함, 그 외에 크고 작은 설산을 건너다보는 그 벅찬 가슴으로 하늘에 감사를 드렸다. PD부부도 네 번이나 이곳에 왔지만 오늘 처음으로 저 명산들을 정면으로 본다며 좋아했다. 이곳 사람들이 신성하게 우러르는 저 산을 마주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닌데 우리 일행이 엄청 좋은 공덕을 쌓은 듯하다는 덕담도 덧붙였다.


일출봉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로 그 집에서 농사지은 귀리 도너츠 로띠, 구운 감자, 삶은 계란, 그리고 홍차를 마련해 주었다. 다울라기리를 건너편에 바라보며 정성스럽게 차려준 아침을 드니 이 얼마나 황후다운 호사인가! 이런 우리를 알아본 바쿤데 면장도 면직원들을 데리고 그 숙소로 인사를 왔다. 네팔인들은 손님 대접이 극진한 겨레임에 틀림없다.


9시 30분 산동네에서 지프차 세 대에 짐을 싣고 산 아래 도시 바글룽(Baglung)으로 떠났다. 오지마을이라 우리가 빌린 차가 유일한 교통수단이어선지 인심 좋은 우리 기사는 산굽이마다 경적을 울리거나 핸폰을 해서 사람도 태우고, 과일바구니, 감자자루, 귀리자루를 받아 싣고, 옥수수, 아침에 짜낸 듯 아직 온기가 있는 염소젖과 기름 등 생산품 전부를 바굴롱으로 날라주는가 보다. 몇몇은 돈을 맡기기도 하고 새로 사왔다는 옷도 사이즈를 교환해 달라고 부탁한다.



어제 사온 물건도 전해주고, 산동네 사람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선지 평생 평지에 내려가 본 일 없이 산골에서만 낳고 자라고 시집가서 살다가 죽는 여자들도 꽤 된다는 얘기도 있다. 이렇게 가다서다를 거듭하니 바글룽까지 두어 시간은 족히 걸렸다. 


애가 탄 샤이 교장님의 재촉 전화를 줄곧 받으면서도 지프차 기사는 끄떡 없이 자기 할 일은 한다. 11시에 바굴룽에 도착하여 샤이 선생님이 신축하는 학교 공사 현장도 둘러보고, 현지인 기독교교회(이곳은 토요일이 공휴일이어서 현지인 예배는 토요일에 드린다)에 가서 [주일]예배를 함께 드렸다.


점심으로는 샤이 교장님 댁에서 푹 퍼지게 끓여준 라면에 밥과 고추장을 비벼먹고 모처럼 행복했다. 2시가 다 되어 우리 버스는 포카라(Pokhara)로 출발했다. 포카라에서는 네팔인과 결혼한 한국여성이 경영하는 ‘O갤러리 카페’라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 아홉 시경 카투만두로 떠나 새벽 3시 반에 도착했다. 바쿤데에서 바글룽까지 10km, 바글룽에서 포카라까지 70km, 포카라에서 카투만두(Kathumandu)까지 220km, 그러니까 총 300km를, 식사시간을 빼면, 15시간을 걸려 힘겹게 달려왔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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