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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주면 더 달라고 할거라니··· 줘 보지도 않고”
  • 문미정
  • 등록 2018-12-17 21:00:21
  • 수정 2018-12-21 14: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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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기탁, 박준호 파인텍 조합원을 위한 밥이 빨간 바구니에 담겨 굴뚝 위로 올라간다. ⓒ 문미정


14일 오전 10시, 서울 목동 굴뚝농성장은 아침식사 준비로 분주했다. 한쪽에서는 계란프라이가, 다른 한쪽에서는 오리고기와 양파, 마늘이 한데 볶아졌다. 


김옥배 파인텍 조합원은 오늘 굴뚝농성장 아침을 책임지는 김주휘 씨가 홍기탁, 박준호 파인텍 조합원을 위해 지은 따뜻한 밥을 줄에 매달아 75m 굴뚝위로 올려 보냈다. 


농성장에 아침상이 차려졌다. 모두 밥상에 둘러앉아 김주휘 씨가 지은 밥을 입에 넣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잘 먹었습니다’ ‘잘 먹어줘서 감사합니다’란 인사말이 오갔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2017년 11월 12일,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의 75m 높이 굴뚝으로 올라간 홍기탁, 박준호 파인텍 조합원들은 어느 덧 또 한 번의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2010년 이들이 일하던 한국합섬이 스타플렉스에 인수되고 스타케미칼이 세워졌다. 하지만 2013년 김세권 대표는 공장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2014년 5월, 노동자들의 일터를 지키기 위해 당시 차광호 파인텍(구 스타케미칼) 지회장은 굴뚝에 올랐다. 


스타플렉스(파인텍의 모기업) 김세권 대표에게 ‘고용, 노동조합, 단체협약 승계’를 약속받고 ‘408일’이란 기나긴 시간을 보낸 후 땅에 내려왔다. 이후 충남에 현재의 ‘파인텍’이 세워졌지만 그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아 다시 한 번 굴뚝 위로 오를 수밖에 없었다. 


두 명의 동료가 굴뚝 위로 올라간 후, 남은 3명의 조합원은 동료들이 또 다시 굴뚝에서 오랜 시간을 있게 할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땅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6일에는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종교계 인사와 시민들이 함께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4박5일간 청와대서부터 스타플렉스 본사 앞까지 온 몸을 던져 오체투지를 했던 차광호 조합원은 그날로 스타플렉스 사무실이 있는 목동 CBS건물 앞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했고 오늘로 8일째다. 


▲ 파인텍 김옥배 조합원 ⓒ 문미정


13일, 굴뚝농성장에서 만난 김옥배 조합원은 “408일이 점점 다가오면서 밑에 동지들이 단식을 결정했다. 우리는 투쟁 밖에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김세권 대표가) 돌려도 그만, 안 돌려도 그만인 공장을 만들어놓고 저희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2016년 1월, 연고도 없는 충남 아산에 지어진 파인텍 공장으로 출근했지만 이 곳은 유령회사에 불과했다. 단체협약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애초에 최저임금+1000원을 요구했지만 조합원들이 받은 임금은 한 달 120만 원이 조금 넘었으며, 회의 시간도 무노동·무임금으로 쳤기 때문에 당시 지회장을 했던 홍기탁 조합원은 월급이 적을 땐 70~9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파인텍 조합원은 8명이었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3명의 조합원은 떠나갔다. 김옥배 조합원은 “5명이 뭘 할까 하다가 4시간 파업, 하루 파업, 이틀 파업도 했지만 달라지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다. 


그해 10월, 이들은 전면파업을 시작했다. 파업이 길어지면서 공장 기계를 철수시키고 건물주는 다른 사람에게 공장을 임대했다. 기계도, 공장도 없는 상황이다. 2017년 11월 12일, 이들은 스타플렉스 본사가 있는 목동의 굴뚝 위로 다시 올라야했다. 


▲ ⓒ 문미정


“408일 투쟁하고 다시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았다. 차광호 동지는 다시 고공농성하는 건 맞지 않다고 했지만, 김세권 대표가 법적으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절박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현재 굴뚝 위 홍기탁, 박준호 조합원의 건강이 많이 좋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여름을 지나면서 살이 많이 빠졌는데, 이 상태에서 추운 겨울을 맞이하니까 많이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차광호 동지가 단식을 결의했고 시민사회단체에서도 계속 연대하면서, 김세권 대표가 나와서 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마음 모아보자고 결의한 상태”라고 전했다. 


파인텍 노동자들과 함께 연대하고 있는 신영철 씨는 “(농성장에) 와서 하는 건 별거 없다. 단지 머리 숫자 더하는 것뿐이지만 그래도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안타깝게도 파인텍 분들이 다섯 분밖에 안되는데 그 중 두 분은 올라가시고, 밑에 세 분 계시다. 그 중 한분은 단식을 시작했다”며 “단식을 하는 사람을 돌봐줄 사람이 없다. 옆에서 담배 안 피게 잔소리도 해주고, 따뜻한 물이라도 주고 싶고… 소박하다”고 말했다. 


신영철 씨는 “동시대의 사회적인 문제, 특히 인권 관련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우리 후세대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생각한다”면서 “사회적인 파급력은 없을지라도 최소한 머리 숫자 하나 정도라도 보태서 내가 살고자 하는, 또 후세대가 살았으면 하는 세상을 향해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빼앗아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먹는 사람도 있어야 산다


▲ 굴뚝농성장의 아침을 준비하는 김주휘 씨 ⓒ 문미정


오늘 아침을 책임졌던 김주휘 씨는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피케팅을 하고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부모님들을 위해 밥을 차려주기도 했다. 세월호 미사에도 꼬박꼬박 나갔는데 그때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남편과 애들 밥은 어쩌고 이렇게 나와있느냐’라는 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집에서 차린 밥상을 사진 찍어 포스팅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스팅 댓글에 농성장에 있는 노동자들이 ‘나도 집 밥 먹고 싶다’ ‘나도 겉절이 먹고 싶다’ 한마디씩 던지는 게 무척 가슴 아팠다고 말했다. 김주휘 씨는 그렇게 농성장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도 밥을 해주기 시작했다. 


목동의 굴뚝 위로 홍기탁, 박준호 조합원이 올라갔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간 김주휘 씨는 음식점에서 산 돼지국밥이 다 식은 채로 포장 용기 그대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김주휘 씨는 보온도시락을 사서 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굴뚝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물품 후원을 하고 투쟁 기금을 전달하지만, 밥을 해서 올린다는 생각은 잘 못했다”며, “처음에 올리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는데, 주변에서 알게 되니까 감사하게도 연대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가 노동자와 함께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오체투지를 하는데, 마을버스 기사가 엎드려있는 사람 옆까지 차를 대고 ‘이것들은 다 죽여버려야 된다’고 말했다”면서, “진로를 방해하고 짜증난다 해도 이 추운 날 땅에 몸을 다 눕히면 오죽한 마음일까 하는 생각을 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와서 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전했다. 


일상을 빼앗기고 가족이 해체 당하고, 억울하고 원통해서 길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본은 자본대로, 권력은 권력대로 ‘나몰라’라 한다. 시민들마저도 걸리적거리는 사람으로 여긴다.


▲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 단식농성장에도 파인텍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있다. ⓒ 문미정


김주휘 씨는 이곳저곳 연대를 하면서, ‘우리에게 욕하는 시민은 봤어도 밥 갖다주는 시민은 처음 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들 옆에 누군가 있어준다는 건 그들의 자존감 회복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차광호 동지가 ‘우리는 무슨 복에 주휘 동지를 만났냐’고 하는데, ‘뺏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나눠먹는 사람도 옆에 있어야 산다’고 말해줬다. 


1년이 넘도록 굴뚝 위에 있는 두 노동자를 걱정했다. “홍기탁 동지는 애가 셋이다. 애들은 1년이 다른데, 애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못 겪는거 아닌가”라며, “일상을 뺏긴다는 건 다 뺏기는 거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김주휘 씨에게 물었다. 노동자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세상’이란 노래 가사가 있다. 사람들은 주면 더 달라고 할거라고 하지만, 줘보지도 않고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너무 나쁘다.


일한 만큼 주면 될 것 같다. 내가 가진 것을 뺏기지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회사나 국가가 보장해줘야 한다. 저렇게 (굴뚝에) 올라간 사람이 일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열심히 하겠나.


오늘(17일), 목동 스타플렉스 본사 앞에서는 김세권을 규탄하고 문재인정부, 국회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사회원로들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자신의 일터를 지키겠다는 노동자를 굴뚝 위에서 또다시 408일을 보내게 하지 않겠다는 동료들, 시민들의 바람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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