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5일 화요일, 맑음
‘꿈속에나 보는 화이트크리스마스’ 제일 먼저 작은아들의 축하전화를 받았다. 본당에 가서 전야미사를 공동집전하고 새벽까지 ‘숨비소리’ 아이들과 파티를 벌였단다. ‘아빠한테만 선물을 했고 엄마는 지나쳤네요. 하긴 부부는 일심동체니까 받은 걸로 하세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주의 공현 대축일까지는 성탄절로 간주하고 사후 접수도 가능하니 염려 말아라.’ ‘그럴 일은 없을 꺼에요, 엄마.’ 라는 통화가 오갔다.
빵고신부는 워낙 섬세하게 사람들을 살필 줄 알아 여교우들이 어떻게 여자보다 더 자상하다는 말을 듣는데 ‘엄마한테 잘 배우고 실전에 임하는 중’이라고 대답한단다. 빵고의 유치원시절, 선생님과 꽃이 만발한 정원에라도 다녀오면 그 고사리 손으로 꽃둘레나 팔찌나 꽃다발을 만들어다 엄마에게 선물하곤 했다. 고맙다고 뽀뽀를 해주면 그 의기양양하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우리집 집사들도 3년 정도 함께 살다 가면 그렇게들 한다. 어제밤 들어오며 ‘내 선물은?’이라고 물었더니 ‘성탄은 내일 25일이니 내일 드리겠다.’ 했다. 그리고 오늘밤 커피와 케이크를 사들고 들어왔다. 우리는 성탄 축하노래를 함께 부르고 케이크를 커팅했다. 성탄날도 새벽부터 어린이공원에서 알바하고서 벌어온 돈을 알겨먹은 셈이지만 기분이 좋았다.
또 ‘라총각 엽이’가 오늘 전화를 해서 성탄축하를 전하고 언제 홈커밍데이를 하는가 묻고 내년 봄 쯤 하잔다. ‘아이 하나 키우기가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어요. 둘이서 어떻게 하나, 머리를 맞대고 씨름을 하지만 언제나 실전에서는 만만치 않아요.’란다. 서울집 살다간 총각들한테서 태어난 다섯 번째 아기(전부 아들)다.
12시 청파동에 있는 식당 ‘더함’에서 김원장님댁 가족과 함께 성탄 오찬을 했다. 김원장님과 문섐과의 담소는 전식이고, 정말 영양가 있는 메인디쉬는 싱싱하고 팔팔한 두 청년 지애, 지우를 만나는 일이다. 누가 이 나이든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해 주고 가차 없이 촌철살인의 명쾌한 대답으로 정신이 번쩍번쩍 나게 해 주겠는가! 이 가족과 얘기를 나누노라면 머리 속에 끼었던 찌꺼기가 말끔히 볼링되는 느낌이다. 온 가족이 인간 본연의 가치관을 추구하다 보니 사실 나이 차이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설빙에서 팥빙수와 커피도 마시고, 언어가 갖는 재미로 놀이를 하다 보니 시간이 너무 빠르다. 두 젊은이가 먼저 일어서고 우리 네 어른은 올 8월 29에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잠시 관람했다.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역사와 그에 부역한 친일파의 죄상, 빛나는 항일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최초의 일제강점기 전문역사 박물관이다. 놀라운 것은 정부의 도움 없이 순수하게 민간에서 건립했다는 것이다. 임종국선생의 평생에 걸친 노력과 투쟁으로, 우리와 친한 송기인 신부님의 2억 원 쾌척이 시작의 발단이 되어 저런 장소가 마련되었다니 참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시간이 없어 간단히 돌아봤지만 날 잡아 차분히 방문해야겠다.
4시30분 일산 동국대병원으로 병문안을 갔다. 보스코의 동창 종수씨 어머니가 갑자기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것이다. 연세 92세의 어머님은 큰아들 종수처럼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이시라는 보스코의 권유를 순순히 받아들이셔서 당장 짧은 교리를 하고 보스코가 ‘글라라’ 세례명으로 대세(代洗)를 드렸다. 그이의 아들 종수씨가 교통사고로 수개월 인사불성으로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누워 있을 적에 보스코가 복자 ‘루아’의 이름으로 대세를 준 것이 30여년전 일이다. 하느님 은총과 섭리의 손길은 인간의 계획을 뛰어넘으니 우리는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일산 어느 식당에서 종수씨네한테서 푸짐한 저녁을 대접받고 돌아오는 길, 대자로 이어진 인연들에 한 송이 한 송이 성모송으로 장미의 사연을 엮어 로사리오를 올렸다. 성탄을 맞은 제네바 두 손주에게서 성탄축하 카카오톡을 비롯 그 많은 지인들과 전화로 성탄인사를 나눈 하루, 모든 게 감사해야 할 일 뿐인 ‘메리 크리스마스’다. ‘예수님, 참 잘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