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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계약의 표징
  • 이기우
  • 등록 2019-02-21 11:27:18
  • 수정 2019-02-21 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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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우 사도요한 신부의 매일강론입니다. 이기우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로 3년간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습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지난해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습니다. 세상의 빛이 되는 깨달음, [이신부의 세·빛]으로 매일강론 연재를 시작합니다. - 편집자 주


창세 9,1-13; 마르코 8,27-33


▲ 카이사리아 필리피 (사진출처=Wikimedia Commons)


오늘 독서 말씀은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하느님께서 살아남은 노아와 그의 자손들에게 복을 내리시며 그 축복을 보증하는 계약의 표로 무지개를 삼으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 말씀은 모처럼 군중을 벗어나서 제자들만 데리고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향하여 호젓하게 길을 떠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시던 중에 베드로로부터 신앙 고백을 들으시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신앙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칭찬하시기는커녕 함구령을 내리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앞날에 십자가 죽음과 부활이 놓여있으리라고 예고하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방금 전에 비장한 듯한 어조로 신앙을 고백하던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꼭 붙들고 반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의 신앙 고백 속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 허약한 마음이 들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매우 단호한 어조로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아마 이 말씀은 스승으로서 예수님께서 제자에게 하신 말씀으로는 가장 야박하고 강경한 호칭이요 꾸짖음이었을 겁니다. 그만큼 베드로의 반박은 예수님께 아주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사람들의 소행에 대해서는 단지 십자가 죽음으로 받아들일 생각만 하셨지 그들에 대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으시고 단지 당신의 제자라면서도 당신의 생각과 마음을 알지 못하는 베드로를 나무라셨을 뿐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베드로의 태도를 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노아의 후손들을 축복하신 하느님처럼 그리고 그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세상에 오셔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처럼 비록 십자가 죽음을 당할지언정 세상을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 노력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되어서 자신의 구원을 확신한 나머지 세상 사람들을 비신자로 가르고 이등 인간 취급을 하는 일은 옳지 못합니다. 신자와 비신자라는 구분을 단지 편이상의 이유라고 하기에는 비신자로 불리우는 세상 사람들이 느끼게 될 소외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든 그렇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일을 할 사람들을 당신이 부르시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신자들이 해야 할 일은 하느님께서 당신을 믿을 마음을 일으켜 주시는 사람들을 돕는 것뿐입니다. 행여나 우리가 하느님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억지로 하느님을 믿게 할 수 있다고 여겨서는 곤란합니다. 교회의 역사를 돌이켜 생각하면 믿는 이들이 하느님의 도구 역할을 훌륭히 해 낸 경우도 있지만 그와는 반대로 자신들이 하느님이라도 된 것처럼 굴어서 정작 하느님의 뜻과는 어긋나는 처신을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특히나 비신자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들거나 위세를 부려서 비신자들이 반발하게 만드는 일은 두고두고 반성거리가 되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의 모범을 묵묵히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도구로 삼으시는 하느님께서 하실 몫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반대자들에게 당할 십자가 수난까지도 감수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이들이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의 모범을 묵묵히 따라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도구로 삼으시는 하느님께서 하실 몫입니다. 그 또한 세상에 대한 축복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위적인 선교 전략이 그래서 위험한 이유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 나라를 살고, 우리가 먼저 예수님의 복음을 사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입니다. 그것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될 때라야 세상은 하느님을 알아보고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축복의 도구요 복음의 표양인 그리스도인의 삶, 이것이야말로 하느님께서 세상과 계약을 맺으신 표징으로서의 무지개일 것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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