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4일 월요일, 앞산이 안 보일만큼 뿌연 미세먼지
빨래를 해서 속옷은 집안에 널었지만, 한참 고민을 하다가 이불은 바깥 테라스 난간에 널며 앞산 인수봉을 쳐다본다. 더러운 공기를 안 마시려 산과 나무들이 호흡을 줄이려고 몸살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봄에 이렇게 뿌여면 ‘황사(黃砂)’라고 불렀고, 황사가 몰고 온 고비사막의 흙먼지가 토지의 산성화를 막는데 도움이 된다고, 토양을 알카리성으로 만든다고 했었다. 그때는 무지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그런 말을 했을까?
아마 앞으로 거리를 걷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처럼 입만 가리는 ‘항진 헝겁 마스크’로 그치지 않고, 영화에서 보듯이, 오염된 지구를 미처 탈출하지 못하고 지하의 벌레들과 함께 동거하느라 얼굴 전체를 가리는 ‘방독 마스크’를 착용할 날들이 올지도 모르겠다. 공포스럽다. 오후에는 보스코는 나더러 공기가 나쁘니 차를 타고 움직이라지만 나라도 탄산가스를 줄이겠다고 걷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2007년 막 귀국해서 한목사에게 ‘티벳 요가’를 배우고서 날마다 사용하던 빨강과 파랑 요가매트가 명을 다하여 청소를 하면 빨강, 파랑 미세먼지가 마루 전체에 떨어져 있다. 먼지니 호흡기를 통해 폐에 쌓이기 십상이어서 LG 요가매트를 사고 쓰던 물건은 폐기하려고 동사무소에 문의했더니, 이런 폐기물은 분리수거가 안 되고 폐기물 배출 딱지를 붙여야 한단다. 수거딱지를 사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이런 물건들이 폐기되는 공간이 점점 늘어나서 내가 ‘어머니 지구’를 괴롭히고 더럽히는 것 같아 걱정이 크다.
동사무소 가는 길에 오랫동안 못 찾아 뵌 한신선배 정희언니네에 들렸다. 형부는 올 12월이면 90이시라니 40년 전에 처음 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형부’라고 살갑게 부르면 이 목사님이 내게 쉬지 않고 얘길하셔서 언니가 핀잔을 주면서 ‘그만 순란이 얘기도 들어봅시다’고 말려야 했는데 이제는 거의 말이 없고 묻는 말에 ‘응’, ‘아니’가 전부다.
뇌종양이라는 진단이 나오자 성모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자는데 언니가 희망이 없는 수술은 않겠다고 반대하자 두 아들이 안도하는 표정이더란다. 병원가기 전 차 안에서 ‘감사드리며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를 했는데, 뇌종양이지만 통증도 없고 생활하는데 불편 없는 게 고맙더란다. 아산병원이나 중앙보훈병원에서도 의사가 ‘우리 아버님이면 나는 수술 안하겠소’라고 하는 결론을 따르기로 했단다.
지금 그 상태가 최상이라고 생각하니 감사했고, 형부를 돌보느라 언니는 더 건강해진 것도 감사의 구실이란다. 오랜 신앙생활에서 얻어진 마음의 평화, 하느님이 주신 크나큰 축복임을 보게 되어 내게도 큰 감동이었다.
‘폐기물배출신고증’을 사러 동사무소엘 갔다. ‘전순란-김말남 전성시대’의 직원들은 더는 없다. 먼 옛날 동사무소 복지과에 있으면서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차상위층 돕기에 앞장섰던 김미혜씨가 생각나 어디에 있나 알아보니 도봉구청 복지정책과장이 되었단다! 예전에 말남씨가 ‘저니는 그 자리가 제격’이라 했는데 그녀의 말이 씨가 되었다. 정말 보기 드문 헌신적이고 모범적인 공무원이다.
말남씨의 작은아들 엽이는 엄마가 떠날 무렵 엄마가 며느리로 점찍었던 색시와 잘 되어 4월 13일에 결혼을 한다고, 부모가 살던 집을 오늘부터 리모델링한단다. 나만큼이나 극성맞던 그니! 어쩌면 아들이 잘 살도록 저 세상에서도 이웃혼령들에게서 연대서명을 받아 하느님께 진정서를 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근 30년을 두고 많이도 만나고 많이도 다투고 뱃장이 맞아 많은 일도 함께 해냈는데… 그니가 떠난 이제는 내 의욕도 열정도 떠나고 그냥 쉬고만 싶다. 그니가 유난히 보고 싶은 하루다. 오후에는 한목사를 잠깐 만났다. 그니도 나도 맘이 뭔가 많이 허전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