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6일 수요일, 맑음
정말 이상하다. 하늘이 보이고 뭉게구름이 나뭇가지에 걸린 모습이 꿈속에서나 동화속의 한 장면 같다. 짙은 초미세먼지로 아침에 아예 안 보이던 북한산도 자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무한한 속박 속에 있다 갑자기 자유로이 날아오를 순간까지 내게 날개가 있었음을 잊고 지내는 수가 있다. 날개를 펴는데 꿈지럭거리지 말고 주저하지 말자. 그냥 본능이 주는 힘으로 세차게 날개를 펴는 거다.
오늘로부터 ‘성화와 심판의 시간’이라는 사순절(四旬節)이다. 40일간. 노예살이 이집트를 떠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다다르는 시간이 40년이었고, 예수님도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40일간을 광야에서 머무르셨단다. 우리가 마음먹고 착한 일을 하려면 마가 끼는 일이 흔한데 그분도 그런 일을 당하셨으니 범상한 우리가 당하는 것도 피할 길이 없다.
나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늙은 독수리가 날개를 펼쳐야 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잠잠하라. 그리고 희망을 갖지 말고 기다려라
희망은 잘못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니. 사랑을 품지 말고 기다려라
사랑은 잘못된 것에 대한 사랑일 것이니. 그러나 아직 믿음이 있다
믿음과 사랑과 희망이 모두 기다림 가운데 있다…
사순절 첫날이면 떠오르는, T.S.엘리엇의 「황무지」에 실린 장편시 “재의 수요일.” 처녀시절 여러 번 읽었던 종교시.
신부님이 작년 성지주일에 집에 가져갔다 되가져온 성지가지를 태운 재를 이마에 발라주시며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하셨다. 재의 수요일 10시 미사인데 우이성당에는 주일 교중미사 만큼 많은 교우가 왔다. 국제정세가 불안하고 북미관계도 흔들거리는데다 날씨마저 북한산이 안 보일 만큼 암울한 나날이 계속되자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많았던 것일까?
성당을 나오며 혜선엄마를 만났는데 내가 ‘미사 오는 교우들이 많아졌네?’ 하니, ‘신부님이 너무 좋으셔서 쉬던 신자나 다른 데로 떠났던 신자들이 다들 돌아오고 있다.’는 답변. ‘인격적으로도 훌륭하시고, 따뜻하고, 강론도 좋고, 음성도 좋고…… 버릴 데 하나도 없는 분’이라는 칭찬. 듣는 사람도 기쁜 일이다. 사제 한 사람이 본당 공동체를 사그리 흩어버리는가 하면 흩어진 공동체를 한데 모아들이는 일치의 중심이 되기도 하고…
성당 앞동산에 모셔진 성모님께 인사를 드린다. 참 답답하기만 한 남북문제며, 미루네 공장이며, 실비아네 아들, 한목사네 아들, 송목사네 딸이며…. 두런두런 드릴 말씀이 참 많다.
특히 엄마 뱃속에서 아직도 태어나길 기다리는 송믿음이는 심장과 폐의 동맥이 잘못 연결된, ‘대혈관전위’로 밝혀져 태어나서 2주 안에 수술을 해야지 그대로 두면 청색증으로 생명을 잃는다니… 부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게다. 갓 태어난 아기의 자두알 만한 심장, 대동맥은 5mm지만 교체해야 할 동맥은 고작 1mm라니 수술할 의사 역시 명의 중에 명의여야만 할 텐데… 다행히 30년간 소아심장수술로 300건 이상을 수술한 의사를 찾아냈단다.
가난한 목회자가 태어날 아기의 그 천문학적인 수술비를 어떻게 감당할까 걱정했더니, 5500만 원이나 되는 수술비에 본인부담은 100여만 원, 유아 중환자실비는 무료라니 얼마나 고마운 대한민국인가! 다 ‘문재인캐어’의 혜택이다.
돌아오는 길에 상일이 엄마와 함께 걸으며 말남씨 살았을 적의 얘기를 그니 입에서 들었다. 사람은 죽고 나서야 자기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을 듣기에 살아생전엔 착한 일들을 저축하며 잘 살아야겠다. 아픈 심장을 갖고 막 태어날 아기나, 70년 넘게 쓰고 난 뒤에 아픈 심장이나 가족에게는 똑같이 소중한 생명이니 심장이 뛰는 어떤 순간도 소홀히 살아서는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