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악의 그림자를 먼저 비추시는 하느님
  • 이기우
  • 등록 2019-03-22 19:29:05
  • 수정 2019-03-22 19:31:54

기사수정


창세 37,3-4.12-13ㄷ.17ㄹ-28; 마태 21,33-43.45-46


사회에는 매일같이 범죄 뉴스가 넘쳐납니다. 하도 일상적으로 일어나서 선과 악에 대한 사람들의 감각이 무디어질 지경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세상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을 하느님께서 물로 심판하신 후에도 세상에는 죄악이 끊이지 않고 있어서 하느님께서는 그 죄악이 드리우는 그림자를 먼저 당신의 빛으로 비추심으로써 당신의 나라를 지키시고 넓혀 나가시기로 하셨습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내버린 돌을 오히려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는 전략입니다. 시간적으로는 새벽 동이 트기 전이 가장 어두운 것도 이 전략과 통하는 결과적 이치입니다.


구약성서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원역사와 함께 이스라엘의 첫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첫 역사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드러내보이신 첫 사람인 아브라함과 그 아들 이사악, 그리고 그 손자 야곱의 삼대에 걸친 이야기가 나오고 그 중에서도 야곱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창세기에서 야곱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보이는 데에는 이 한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 ‘이스라엘’일 정도로 이스라엘 백성의 굴곡진 역사가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쌍둥이의 둘째로 태어난 야곱은 장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축복마저도 가로챌 정도로 자기집념이 강한 인물이었고, 그 대가로 모진 시련을 감내하면서도 끝내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족장을 길러냈습니다. 그가 첫 눈에 반했던 여인은 사기꾼같은 삼촌 라반의 둘째 딸인 라헬이었는데, 라반의 술수로 그 언니 레아와 혼인하는 바람에 원치 않았던 아들들과 딸을 두었고, 나중에 아내로 맞이한 라헬과 레아 사이에 아들 낳기 경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무려 열두 명의 아들과 딸 하나를 두게 되었습니다. 


라반의 검은 속셈과 두 여인의 아들 경쟁심을 이용하신 하느님의 전략이라 할 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사랑했던 라헬이 낳은 첫 아들인 요셉은 서열상으로는 열한 번째 아들이었지만, 야곱에게는 사실상 첫 아들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유난히 편애를 했고, 이 편애 때문에 형들의 질투를 사서 요셉은 이집트에 종으로 팔려가게 되는 신세가 되지요. 그런데 이런 형들의 악의어린 질투를 하느님께서도 또 발판으로 삼으셔서 기근 때문에 어려움에 처할 뻔 했던 야곱 집안이 이집트로 이주해서 안정적으로 후손을 늘릴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게 됩니다. 아버지 야곱으로 물려받은 신앙으로 아버지보다 성실했던 요셉이 이집트 파라오의 마음에 들어 재상 자리에까지 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시는 역사의 비유에도 이러한 이치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그릇된 선민의식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과 그 지도자들이 하느님께 충실하기보다는 구원의 자기 밥그릇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포도원을 소작 맡은 주제에 주인에게 소출을 바치지는 않고 주인이 보낸 종들을 박해하다가 마침내 그 아들까지 죽여버리는 소작인들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어찌보면 예수님께서 활약하신 시대는 이스라엘 역사에게 가장 암울했던 시기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어둡기 짝이 없던 시대에 구세주를 보내시어 하느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저지르는 죄악들은 아직 하느님의 빛이 비추지 않아서 남아있는 응달과도 같습니다. 


하느님 빛의 도구로 불리움 받은 신앙인들이 좀 더 열심히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가장 어두운 그늘부터 비추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은 세상의 죄악마저도 시대의 징표로 읽어낼 수 있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선을 실천하라는 성령의 이끄심으로 식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 사순 시기에 우리가 우리 마음 안에서 감지하는 그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빛으로 우리 마음을 들여다볼 때에 아직도 어두운 구석은 먼저 사랑의 빛이 비추어져야 할 으뜸 자리입니다. 성사적으로 말하자면 지은 죄를 알아내고 통회하는 시간은 어둠이 빛으로, 그늘이 양지로 바뀌는 거룩한 시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이 바로 자신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고백하는 모습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야의 표현을 빌어보자면, 새빨간 죄라도 양털같이 희게 만들 수 있는 힘이 하느님의 자비에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이 있는 한, 자기 마음의 죄는 하느님 은총의 가능성입니다. 통회로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는 우리로 하여금 그 죄를 없애는 선을 실천하라는 행동의 부르심입니다. 예수님의 현존을 재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



[필진정보]
이기우 (사도요한) :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명동성당 보좌신부를 3년 지내고 이후 16년간 빈민사목 현장에서 활동했다. 저서로는 믿나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행복하여라』 등이 있으며 교황청 정의평화위원회에서 발간한 『간추리 사회교리』를 일반신자들이 읽기 쉽게 다시 쓴 책 『세상의 빛』으로 한국가톨릭학술상 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다.
TAG
키워드관련기사
0
  • 목록 바로가기
  • 인쇄


가스펠툰더보기
이전 기사 보기 다음 기사 보기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