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4일 일요일, 맑음
함양본당에 계시던 신정목 신부님이 진주 장재동성당으로 가셨는데 보스코에게 오늘 사순절 특강을 부탁하셔서 신부님 새로 가신 곳도 찾아볼 겸 10시 반 미사에 맞추어 출발했다. 빵기-빵고 말이, “메뚜기도 한철이라, 아직 아빠가 필요한 곳이 있어 부르면 서리 내리기 전 부지런히 다니셔요”란다.
진주 외곽에 있는 장재동 성당은 마산에서 문산본당 다음으로 일찌감치(1931년) 세워진 유서 깊은 본당이다. 신자가 600명이 못 되는 ‘미니 성당’으로 성당 건물도 자그마하고 사제관도 너무 소박하여 누구라도 불쑥 편한 마음으로 들를 이웃집 같다. 교우들은 주로 주변에 농사를 짓던 노인들이 대부분이고, 최근에 이사한 분들과 가까이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어 그 인구가 유입되면 젊은 교우들이 늘어날 것 같다.
지금은 타 본당과 비슷하게 노년층이 주를 이룬다. 이곳은 경상도고, 노년층이라면 ‘태그끼아재’들이 많을 텐데 보스코의 미사 중 강연(40분간)이 사회교리를 겨냥하고 있어 행여 그들의 정치적 견해에 껄끄럽지 않을까 은근히 염려스러웠다. 그래도 보스코는 자신이 옳고 맞다 생각하는 말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파하는데 주춤거리지 않는 성품이라 우선 말씀은 전하고 그 다음은 성령께서 하실 일로 남겨 둔다.
과연 본당 노인들의 ‘모이세회’가 주축이 되어 모인, 미사 후 식사에 나이든 어르신(사실 보스코 또래) 한 사람이 보스코에게 다가와 “문재인정권이 이렇게 나라를 사회주의 국가로 만들고 있는데 어찌 되느냐?” 묻기에 신신부님께 대답을 미뤘더니 “그럴 일은 없을 게요. 사회주의는 끝났어요. 염려 마세요”라고 일러주시더란다. 유튜브의 ‘가짜뉴스’는 어디서나 기세를 부리고 있다.
함양에 계실 때도 신신부님 특유의 조용하고 따뜻한 부드러움으로 상처 입은 교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셔서 착한목자로서의 책임을 다하셨는데, 이곳에서도 걸음걸이나 웃음이나 말씨까지도 따사로워 교우들이 가까이 다가가 많은 위로를 받으리라.
돌아오는 길에 미루네 산청공장 공사장에 들렀다. 공사 지연으로 애를 먹고 있는 이사야가 애가 많이 타겠지만 어디 그 공장뿐이랴? 딱히 진전된 공정이 눈에 안 띄는 걸로 보아 사람들이 ‘오죽하면 죽을 수(數)에 집을 짓는다고 하겠어요?’ ‘집 세 채 짓고 나면 인생 종친대요.’라고 탄식했겠는가! 시간이 해결해 줄게고 마라톤 결승지점이 가까이에 보였다. 단지 머리가 갑자기 더 희어지고 지친 이사야 얼굴이 좀 가여웠다.
유림 맞은편 화계에서 동강 쪽으로 돌아서 차를 몰았다. 보를 막은 강에는 고기도 많고 그것을 먹이로 삼는 새떼가 자주 보이는데 오늘은 원앙이 떼를 이루어 수십 마리 노닐고 있다. 원앙도 철새여서 새 천지로 떠나기 전 한데 모여들었는지, 진달래 필 무렵이 원앙들의 짝짓기 시즌이라선지, 찬란한 빛으로 성장한 숫원앙을 앞세워 수수하게 못생긴 암원앙이 쌍쌍으로 성대한 수상 파티들 하며 물결 따라 품위 있게 춤을 추고 있었다.
보스코가 읽은 바에 의하면, 원앙은 부부금실의 상징이지만 암컷이 일단 알을 품으면 저 잘난 숫원앙이 나몰라라 하고 딴 암컷들을 찾아 바람을 피운단다. 다만 인간 세계에서도 남성들의 그 숱한 바람기에도 반드시 상대는 여성이니까 남성들만 탓할 일 아닌 듯하다.
휴천재에 돌아오니 드물댁이 마당화단의 김을 잘 매 놓았다. 우리 텃밭 쪽파 농사가 워낙 잘 지어서 서울 친구들에게 보내겠다고 뽑아들고 오니까 드물댁도 따라 들어오면서 이왕이면 까서 보내잔다. 식당을 하는 실비아네는 너무 바쁘니까 손질해 보내기로 했는데, 엘리에게 보낼 몫도 까 보내자며 나를 추썩인다.
“추접구로 어데, 이 흙을 질질 묻혀 보내노? 걍 마 맬꼬롬 허게 까 보내뿌립씨다” 그러다 보니 오후 두시부터 일곱 시까지 둘이서 원 없이 파를 깠다, 보스코가 배고프다는 전화를 할 때까지…. 그니는 파 까는 일에 못지않게 실은 내게 ‘이바구’를 즐기는 중이다. 혼자 지내는 여인들일수록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허스토리를 길게 길게 풀어놓는 언어의 마술을 갖추고 있다. 하느님은 적어도 언어는 여자들을 위해서 지어내주신 선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