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8일 목요일, 맑음
제주를 떠날 때마다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기 싫듯이, 이 섬을 떠나기 싫고 아쉽다. 새벽 6시가 좀 지나 알람이 울리고 주섬주섬 어제 싸다 만 가방에 남은 물건을 챙겨 넣고 혹시 빠뜨린 물건이라도 있나 닫힌 장롱이나 서랍장까지 다 열어본다. 처음부터 아예 열지도 않은 가구들인데 쓸데없는 일이라도 하고 떠나야지 거기 남겨진 것들에 대한 예의 같아서다. 비교적 철저한 내가 언젠가 중국여행에서 새로 산 외투를 호텔에 곱게 놔두고 떠나와 오랫동안 가슴이 쓰려 더 챙기나 보다.
6시 50분에 현관에 나가니 연수원 경리(예수고난회) 신신부님이 기다리다 차에까지 짐을 들어다 주신다. 원장 김용운 신부님, 원주교구에서 오신 배은하 신부님 배웅을 받으며 엠마오 연수원을 떠났다. 연수원 앞마당엔 제주도 특유한 모양의 무덤자리가 있다. 밭 한가운데에 돌담으로 에워싼 공지에 조상의 무덤을 만들고 농사짓는 내내 바라보고 가꾸고 기억하는 것이 제주사람들의 부모 사랑인가 보다.
연수원을 지으며 제발 이장해 가라고 당부했는데도 묵묵부답이더니 얼마 전에 자진해서 이장해 갔단다. 사람 생명은 유한하고, 자손이 있다 해도 손주, 증손주로 내려가며 선조를 모시는 관심은 떨어져 나중에는 대부분 버려진 봉분으로 내려앉다가 사라진다. 그러므로 수도원이나 성당 터에서 산소를 옮겨가지 않고 생떼를 쓰는 집안이 있다면 그냥 놓아두면 된다. 2000년 세월이 가도 교회나 수도회는 여간해선 없어지지 않는다.
여행을 다녀오면 빈손으로 돌아오기가 어쩐지 미안하여 오늘도 공항 면세점을 기웃거리지만 내게 필요한 것도 별반 없고, 누구에게 썩 사다주고 싶은 물건도 마땅치 않다. 몇 바퀴 돌고 돌아오는 나더러 ‘왜 아무것도 안 샀느냐?’ 묻는 보스코에게 '그냥.‘이라고 싱겁게 얘기하고는 탑승구 앞에 앉아 꾸벅꾸벅 존다. 나이가 드니 갈수록 마음만 바빠져 일상도 서두르다보니 알람을 해 놓고서도 밤새 몇 차례나 잠을 깨서 시계를 들여다보니까 이리도 피곤하다.
창밖을 내다보던 보스코가 ‘비행기 뜬다’ 하면 눈을 뜨고 ‘비행기 내린다’ 하면 다시 눈을 뜨는데, 활주로에 뜨고 내리는 비행기 구경만으로도 저렇게 신나는 보스코를 보면 80을 내다보는 나이에도 그는 아직 비행기를 따라, 연을 따라 잡겠다고 벌판을 달리는 소년이다.
김포공항에 내려 전철노선을 보니 중앙보훈병원에 직행하는 노선 9호선이 눈에 띈다. 공항전철로 서울역까지 가서 4호선으로, 우이신설로 갈아타고 집으로 가서 짐을 놓고 보훈병원엘 가려던 생각을 바꿔 아예 9호선을 탔다. 좀 미안하지만 부부가 다 공짜표다. 때마침 급행열차여서 한 시간도 안 걸려 이쪽 끝 김포공항에서 저쪽 끝 보훈병원까지 단번에 실어다 주니 서울시민이 누리는 특권이라면 특권이겠다.
병원에 도착하니 1시가 좀 넘은 시간. 캐리어를 끌고 바깥식당을 가기도 지쳐 병원 구내식당에서 보스코는 짜장밥, 나는 짜장면을 먹었다. 온 병원이 늙은 남자들로 가득가득해서 좀 조용한 곳을 찾아 보스코가 두 달 전 입원했던 9층 병동 휴게실로 올라가 의자를 차지하고선 보스코는 원고를 쓰고 나는 책을 읽으며 세 시간을 보냈다.
순환기내과 대합실도 늙은 남자들로 가득하다. 기다리다 지친 어떤 아재는 소리소리를 지르며 ‘능력 없는 의사는 바꾸라!’고 기염을 토한다. 나이들로 보아 월남전 참전용사가 환자들 마지막 세대인가 본데 월남에서는 패하고 돌아왔지만 이 병원에서는 점령군 행세를 하나보다.
우리가 지켜보니 의사가 환자 한 명을 보는 시간은 평균 20초! 이보다 더 능력 있는 의사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의사로서는 과연 20초에 환자의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환자도 죽이고 의사도 죽는 꼴이다. (20초 간격으로 하루 종일 환자를 만나야 하니까.)
보스코는 석달치 약을 처방받고 다음 진료일을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부터는 흉부외과 전문의에게 진료를 예약했다.
우이동 골짜기를 검은 구름이 덮고서 험한 얼굴로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비가 쏟아지기 전 걸음을 재촉해서 집으로 오르는 골목길, 오늘 따라 무거운 여행가방을 끌고 오르자니 더 멀게 느껴진다. 여행에 지쳤는지 보스코는 저녁을 먹자마자 벌써 잠에 빠져 있다. 그가 성삼일을 거르는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