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 사도 4,1-12; 요한 21,1-14
오늘 복음이 전해주는 이야기도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내용입니다. 부활이 시공을 초월하여 일어난 영적인 사건이라면 발현체험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부활하신 그분을 체험하는 일이고, 이 발현체험을 한 사람이 다른 시간과 공간에서도 부활하신 그분의 힘으로 살아가는 기운을 현존의식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사도로 양성하신 제자들 대부분은 그분이 돌아가시자 어부 직업으로 돌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부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밤새 허탕을 친 그 어부 출신 제자들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하고 권고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낯선 모습의 어부 차림으로 나타나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으면서도 그분의 말씀에 어부 출신 제자들이 순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은 그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보았고, 베드로에게 알렸습니다. 그러자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 배신의 전력이 있던 베드로는 옷을 벗고 있다가 부끄러워서 자신을 감추려고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물에 잡힌 물고기는 모두 백 쉰 세 마리였는데, 이 153이라는 숫자는 어부 출신 제자들을 다시 사람 낚는 어부로 돌아오게 만들었습니다. Magic Number, 마법의 숫자가 제자들의 현존의식을 일깨워 사도로 돌려세운 셈입니다.
153이라는 숫자가 왜 마법의 숫자인지를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1부터 17까지를 모두 더하면 나오는 153이라는 숫자는 1의 세제곱과 5의 세제곱과 3의 세제곱을 더해도 마치 마법처럼 이 숫자가 도로 나옵니다. 100에서 999까지의 세 자리 숫자 900개 중에 이런 숫자는 네 개밖에 없습니다. 가로×세로×높이가 똑같은 정육면체의 수치를 수학에서 세제곱으로 표시하고 이를 Cube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제곱을 해서 더해도 원래의 숫자가 나오는 이런 세 자리 숫자를 Triple Cubic Number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Magic Number입니다. 아무튼 이 마법의 숫자 백 쉰 세 마리의 물고기는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간 제자들을 다시 사람 낚는 어부 즉, 사도로 돌려세웠습니다. 진짜 마법처럼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들로 다시 성별한 것이지요.
이러한 복음의 상황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보겠습니다.
1980,90년대는 살벌한 신군부독재시대였지만 그만큼 이에 저항하는 민중의 민주화 투쟁 열기도 뜨거웠고 이 열기가 도처의 현장에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기층민중과 함께 하는 기운으로 나타났었습니다. 당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은 현장의 복음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주 방문하여 격려하였고, 때마침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두 번이나 방한하여 한국 순교자들을 시성하고 성체대회를 주관하는 등 천주교 붐을 이끌었습니다. 지금 천주교 신자 5백만 시대는 그때 열린 것입니다. 사제성소도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지금의 정치상황은 그 당시와는 완전히 정반대로 바뀌었고 분단 구도가 해체되어 가고 있는 중에 민주화도 진행되어 가고 있습니다. 신군부독재시대의 여당이 야당이 되어 이 민주화와 통일 흐름을 막아보려는 발악적 준동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양극화와 불평등의 사회구조 속에서 억눌리는 민중의 삶은 여전히 고달픕니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는 전처럼 뜨겁지 않습니다.
그보다 복음화 열기는 더 식었습니다. 예비자 증가 추세도 꺾였고 냉담자는 늘고 있으며 성소자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일 년에 단 한 명의 사제도 서품하지 못한 교구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순교자들을 시복하였는데도 천주교 붐은커녕 교황에 대한 대중적 기대가 높았던 만큼 그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천주교회에 실망한 신자들의 분위기와 사회의 시선이 싸늘하게 느껴집니다. 30여 년 전에 늘어났던 사제성소의 결과로 생겨난 사제증가현상은 인사적체로 이어질 뿐 복음화의 자산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 ‘밤새 허탕을 친’ 어부 출신 제자들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153의 마법 숫자가 필요한 때입니다. 그러자면 우리도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져라.” 하신 예수님 말씀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김수환 추기경이 보여준 현장 리더십을 기억하고 다시 복음화의 현장으로 가는 것입니다.
현존의식으로, 마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직접 복음을 전하시는 것처럼, 우리가 그분이 되어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에게 주어진 이름 가운데에서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예수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가는 현존의식이 복음화의 현장에 필요합니다. 선교의 마법이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현장에 있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