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9일 목요일 맑음
자다가도 일어나서 어스름에 데크 위를 걸어본다. 그만큼 고생하며 내 손으로 해냈다는 생각에 오지다. 노동을 해 본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보람이다. 이번 주말 토, 일, 월요일에 연달아 손님이 오신다지만 이젠 걸릴 게 없다.
이번에 데크작업을 도운 친구들도, 어제 왔다간 아우님들도, 집주인 보스코도 한 주간 동안 샌더기로 데크를 온통 벗겨내면서 공사 중 먼지로 범벅된 집안을 어떻게 청소할까 난감했을 거다(집밖 데크에 쌓인 먼지는 콤프레셔로 의외로 순조롭게 처리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50년 가까운 단독주택 살이, 스무번도 넘는 집수리, 열 번 가까운 이사에서 나 혼자 터득한 노하우가 있다. 먼저 먼지를 털거나 쓸거나 진공소제기를 들이대서는 안 된다. 우선 벽에 낀 먼지를 먼지털이로 살살 털어 땅으로 내려앉게 하고, 대걸레를 물 채운 걸레통에 빙빙 돌려 빨아 남은 바닥먼지를 묻혀내서 맑은 물이 나오도록 말끔히 닦아낸 후 쓸어내고 다시 걸래질 하면 정말 깨끗하다. 휴천재 위아래층 60여 평을 청소하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고된 일을 하고나면 그 다음 놀이가 있어야 긴장이 풀리고 일 자체도 힘들지 않기에 나는 늘 ‘일과 놀이’(보스코의 단짝친구 수복씨의 출판사 이름이 ‘일과 놀이’다)를 절묘하게 배치한다.
건너 마을 산청 ‘황매산 철쭉 축제’에 미루가 열흘 넘게 ‘산청 한방 약초 축제’를 홍보하는 ‘꽃차 부스’를 책임지고 일하는 중이다. 꽃순이답게 머리에 꽃을 꽂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연꽃차를 대접하면서 웃음과 행복을 나눠 주고 있다. 님도 보고 뽕도 따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더구나 남해 형부네도 오신다니 즐거움과 행복은 두 배가 된다.
10시 약초시장 미루네 매장에서 파스칼 형부 부부를 만났다. 두 달 만에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친한 사람끼리는 언제라도 반갑고 어제 보고 오늘 만나도 너무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든다. 황매산까지는 이사야씨가 봉고로 우릴 모셔갔다. 산청읍내 베이커리에서 빵고신부가 어버이날 선물로 보내준 케이크를 찾아 황매산으로 갔다. 건너편 전망대에서 멀리 황매산 자락과 산허리를 감아 안고 피어오르는 철쭉밭이 화려한 여인의 자태로 황홀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미루는 열흘 넘는 중노동에 지칠 만도 한데 그미만의 인내와 끈기로 잘 해내고 있어 기특하고 기분 좋았다. 남해언니, 나, 미루 세 여자가 우리 작은아들의 어버이날 축하를 함께 받아 케이크를 자르고 커피를 마셨다.
허락된 시간이 한두 시간정도 밖에 안 되어 철쭉밭 산비탈을 한 시간쯤 걷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 길이 훨씬 넘는 철쭉들이 온 산언덕을 뒤덮은 장관을 이룬 꽃길을 걷고, 멀리 지리산 천왕봉이 꽃병풍 뒤로 장엄하게 솟은 장관도, 가까이로는 황매산 주봉이 털복숭이 새끼 부엉이 얼굴같은 귀여운 자태를 하고 있어 올 가을 ‘갈대 축제’에 다시 올만하다.
미루가 오후 두시에 동의보감촌에서 공무원들을 상대로 ‘꽃차 테라피’ 강의를 해야 해서 점심을 서둘러 먹고 부지런히 황매산을 내려와 산청으로 돌아왔다. 우리에게는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둘이서 동의보감촌 꽃정원도 산보했다.
강가로 난 차도를 따라 방곡을 지나다 승임씨네 집에 들러 그동안 ‘타샤의 집’으로 개간해가는 정원과 꽃밭들도 보고 다과도 융슝하게 대접받았다. 승임씨 부부를 지리산발치로 내려오게 만들고 그 부부에게 농장과 집터를 제공한 양선생도 오랜만에 만났다. 그분과는 2000년 새해 해돋이를 왕산에서 함께 한 후 20여년만에 만난 참이다. 왕산 중허리에 움막을 짓고 사는 도인이다.
보고 싶은 사람들 다 만나고 잘 놀았으니 이번엔 다시 일 할 차례. 집에 도착해서는 도저히 더러워서 소나 탈만한 우리 차를 세차하고, 마당 끝 꽃밭에서 풀을 뽑고, 텃밭에서 목말라하는 채소들에 물을 줬다. 지금처럼 흙이 마르면 거의 매일 물을 줘야 채소도 크는데, 담 주 월요일엔 다시 이곳을 떠나니, 있을 동안이라도 잘해주려고 호스로 듬뿍 물을 줬다.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아는 삶이니 내가 현존하는 그 장소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떠나서는 놓고 온 세상을 뒤돌아보거나 걱정하지 말자고 맘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