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4주간 토요일 : 사도 13,44-52; 요한 14,7-14
광주시민이 떨쳐 일어나 항거했던
5.18기념일입니다.
오늘은 1980년에 계엄령을 내리고 시민을 학살하던 신군부에 맞서 광주 시민이 떨쳐 일어나 항거했던 5·18 기념일입니다. 거의 40년이 다 되어 가는 이 사건의 진상이 피해자들은 물론 그 사건에 가담했던 용기 있는 관련자들의 증언으로 조금씩 그 윤곽이 밝혀지고 있어서, 한국 현대사를 다시 써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지난 월요일(13일)에 국회의원 회관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는 당시 광주에서 활약했던 보안사 요원과 미국 정보부 요원이 충격적인 증언을 했습니다. 이 증언에 의하면 당시 광주에서 일어난 시위를 내란 음모 사건으로 조작하기 위해서 시민으로 위장한 특수군 편의대를 침투시켜서 세무서와 문화방송 건물에 방화를 하거나 무기고를 탈취해서 진압군이 발포하고 사살할 명분을 제시하게 했으며, 이 모든 사건의 기획자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정권을 탈취할 목적으로 이 모든 사건을 기획했던 보안사령부는 광주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고 군사 작전을 벌이듯이 전남도청에 모여 있던 시위대를 전원 사살하고 진압함으로써 제5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박정희에 이은 군사 독재로 정권을 장악하려는 사실상의 내란을 주도했습니다.
국민의 치안과 국방을 위해 국민이 국가에 위임한 경찰과 군대 등 국가 공권력이 거꾸로 국민을 학살하고 고문하며 억압해 온 한국의 현대사는 부당하고 불의한 공권력 행사에 맞서는 시민들과 국민들의 저항을 불러 일으켜 왔습니다. 권력이 무능하고 부패하면 할수록 이에 맞서 견제하고 저항하려는 시민들과 국민들의 힘과 조직과 집단지성 역시 더 커지고 정교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입니다.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해서 민족정기가 왜곡된 채로 독재세력으로 잘못 진화한 역사의 교훈을 잘 살펴서, 부당하고 불의한 국가폭력의 역사적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에게 합당한 법적 처벌로 응징해야 이 땅에서 불행한 국가 공권력 행사가 자취를 감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5·18의 학살자를 옹호했던 조선일보 같은 언론과 그를 계승한 자유한국당 같은 정당이 스스로 참회하고 학살자를 법정에 세우는 데 앞장서기를 바라는 일은 불가능해 보이는 이상, 역사의 진실 앞에 깨어있고자 하는 국민들의 여론이 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끌고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예수님께서도 아무런 죄도 없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죄목을 뒤집어쓰시고 억울하게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셔야했지만, 민중이 억눌리고 착취당하며 지배자들이 불의하고 부당하게 권력을 남용하던 역사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셨습니다. 때문에 십자가형을 언도한 총독 빌라도의 재판에서 침묵으로 저항하셨고, 이를 기획한 사두가이들이나 공모한 바리사이들에 대해서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들 지배자들이 꾸미고 어지럽힌 역사를 아예 새로 쓰시려고 열두 지파를 대체할 수 있도록 열두 제자를 부르셨으며, 이들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가 옛 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고 파스카 과업을 이룩한 참 이스라엘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이러한 스승의 의도를 미처 다 짐작하지 못하고 하느님을 뵙게 해 달라고 청하던 필립보에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승천하시어 성령으로 함께 하실 그분께서는 이를 위해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주겠다”고도 약속하셨습니다.
제자들과 그리스도인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계시 말씀과 격려와 약속의 말씀에 따라서 초대 교회는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고, 그 일환으로 바오로 일행을 소아시아 지역에 파견하여 복음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 복음선포 활동은 일정한 성과를 유다인들 안에서 얻기도 했지만 예루살렘 바리사이파 본부의 지령을 받은 듯한 일부 유다인들의 박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박해 때문에 바오로 일행은 유다인들에 대한 복음선포를 미루고 이방인들에게로 선교의 방향을 틀었습니다.
이스라엘 본토에서나 소아시아의 디아스포라 지역에서까지 이어진 유다인들의 박해는 그들 스스로 구원에서 멀어지는 화를 자초했습니다. 예수님과 그 제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는 그 박해 속에서 도리어 이방인들로 이루어진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의 이끄심을 들었고, 결과적으로 박해는 복음의 씨앗을 더 널리 퍼뜨리게 했습니다.
진리는 종교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사회적으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그 후계자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신 바 있습니다.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도록 함께 하실 것이며, 그분의 이름으로 청하는 바를 다 이루어주겠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힘 있는 자들이 저질러온 국가폭력과 죄악의 역사를 발판으로 삼아 정의와 사랑의 미래를 구현해 나가야 할 시대의 징표를 생각하게 하는 오늘입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