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사도 19,1-8; 요한 16,29-33
의롭게 살기 위한 회개
일치하기 위한 회개
6월은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5월이 성모 성월인 것을 생각하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 성월에 교회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신 예수 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달로 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하시면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셨고 제자들을 불러 모으셨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고 계셨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실 때에도 물러섬이 없으셨고, 환영을 받으실 때에도 교만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박해하거나 미워하면 흩어지기도 하고, 세상이 떠받들어주면 교만에 빠져 권력을 추구하려 들거나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다가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이는 후대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교 당국과 로마 제국과 조선 왕조의 박해 때 신자들은 흩어져야 했지만 이로 인해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박해가 종식되자 로마 제국의 영토와 백성을 반분했던 동서방 교회가 분열되기도 했고 조선 왕조의 뒤를 이은 일제 총독부에 친일행각으로 아부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나 후대의 역사 안에서나 오늘날에서도 제자들은 하느님과 함께 계시는 예수 성심을 온전히 본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분의 성심을 본받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초대 교회에서 고대 교회로 넘어가는 시대에 사오 바오로와 아폴로는 신자들이 예수 성심을 본받기 위해 벌여야 할 노력을 두 단계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요한의 세례요, 또 다른 하나는 성령의 세례였습니다. 죄악이 판치는 세상에서 의롭게 살기 위한 회개가 요한의 세례가 겨냥하는 목표라면, 선을 목표로 하면서도 서로 경쟁하다가 갈라지는 분열 사태를 넘어서기 위해 일치하기 위한 회개가 성령의 회개였습니다.
고난 가운데 용기를 내어
정도를 걷는 태도
가톨릭교회에 입교한 신자들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서 의롭게 살아가려는 회개를 하는 요한의 세례 단계는 물론,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지려는 성령의 세례도 받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서 착하게 살아가려는 마음가짐을 먹는 데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실제로는 요한의 세례 단계에 머물러있습니다. 사랑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성령의 세례 단계에 이르면 마음의 갈등이나 신자들 사이의 갈등을 불가피하게 만나게 되는데,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성령의 기운을 수용하고 표현하는 데 매우 무능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은 이 단계를 회피하지 말고 맞닥뜨릴 수 있어야 거룩함의 영성생활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성령의 세례가 실질적으로 의미하는 거룩한 영성생활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세속의 온갖 갈등을 회피하거나 무균실의 환자처럼 편하고 안전하기만 한 방편으로 생활에 안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땀을 흘리며 고뇌하시던 겟세마니 동산의 예수님처럼 때로는 고뇌하는 가운데 자신의 정당한 기득권이나 이익마저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는 자세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다고 하더라도 용기를 내서 정도를 걷는 태도야말로 그리스도의 평화를 얻는 첩경입니다. 지금 교회가 지내고 있는 예수 성심 성월은, 세상에 거짓 평화가 아니라 참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사랑의 불을 우선 내 마음 안에 채우고, 내 인간관계도 불타오르게 하며,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도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를 수 있는 마음가짐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기억하는 가롤로 르왕가와 그 동료 순교자들 역시 19세기 말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이 사랑의 불을 전하다가 치명한 성인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