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4일 화요일, 맑음
날이 밝으면 몇 시인가 시계도 안 보고 옷 먼저 입는다. 사물이 보이는 시간이니 밭에서든 마당에서든 할 일은 늘 충분하다. 보스코가 ‘다섯 시도 안됐는데 어딜 가냐?’고 묻는데 ‘멀리 안가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도 따라 일어난다. 늘 오밤중에 일어나 일을 하다 다시 자는 습성을 가졌기에 그는 낮잠을 꼭 자는데 어제는 사촌 종호서방님이 찾아와서 쉬지 못 했다.
텃밭에서 우리는 고추, 가지, 토마토를 묶어주고 오이가 타고 오를 열릴 망을 설치했다. 나는 꽃을 피우려는 루꼴라를 베어주고 올라오고 보스코는 축대의 덩굴들과 쑥을 뽑아간다. 정말 악착 같이 영토를 확장해 나가는 것이 황매다. 대나무처럼 뿌리를 뻗으면서 뿌리 중간 중간에서 싹을 틔워 자리를 넓혀간다.
오늘 내 차 소나타의 수리와 도장을 하러 인월에 있는 단골 ‘동아공업사’에 가야 한다. 팔순 다 된 노인이 아침도 안 먹고 땀 흘려 일하다 일 날 것 같아 카푸치노에 떡을 갔다 대령했다. 얼굴이 발갛게 익어 사다리에 앉아 떡과 우유로 흡족한 식사를 하는 풍경이 돋보이는 아침이다.
공업사 아저씨는 ‘웬일로 이렇게 오랜만이냐?’며 반긴다. 처음 지리산에 내려오면서부터 사방에 위험요소가 즐비한 산길에 어지간히 차를 긁고 박고 부딪혔기에 그는 내 차 외과치료에 익숙해진 전문의다. 회계를 보는 부인이 와있으면 치료비를 훨씬 더 부르기에 부인이 출근하기 전에 견적을 끝냈다. 부인이 와서는 내 차를 둘러보고서는 너무 싸게 받는다고 투덜댔지만 우린 둘 다 모르쇠. 어찌 보면 남자들이 덜 영악한 듯하다. 그래도 수리하는 이틀간 부인이 자기 차를 빌려줘 별다른 불편 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도정 체칠리아가 전화를 했다. 오랜만에 김교수 부부도 내려왔으니 함께 점심이나 하잔다. 실상사 앞에 ‘까만집’이라는 올갱이수제비집이 있는데 예전에는 마천 개천가에서 움막을 짓고 장사를 하던 가게다. ‘지리산 둘레길’ 전부를 몇 바퀴나 돌던 ‘만인보(萬人步)’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자주 들르던 집이다. 집은 허름했지만 허기진 시간에 한 끼로는 만족한 식사였다. 무허가 건물이라 철거명령이 떨어져 아쉬워했는데, 실상사 앞 가게로 이사와 번듯하게 터를 잡으니 옛정을 생각해서 가끔 들른다. 변함없는 맛과 변함없는 불친절로 보아 그 집이 확실하다.
식사 중 우리 여섯의 대화 내용은 유시민과 홍준표의 어젯밤 썰전 ‘홍카X레오’의 촌평. 유시민이 95%의 논리적인 생각과 말이 설득력 있었고 홍준표의 말은 5% 정도나 들을 만하더란다. 듣고 있자니 90대 꼴통을 똑똑한 청년이 타일러가는 대담이더란다.
산내 까만집으로 차를 타고 가며 가타리나가 최근 자기 주치의를 만난 얘기를 전한다. 그미는 10년 전부터 의료보험공단의 정기검진을 안 받는단다. 나이 예순을 훨씬 넘겼으니 그냥 살다 죽고 싶은데 의사가 자꾸 검진을 채근해서 ‘자꾸 정기검진 받으라 하면 아예 안 오고 혈압약도 안 타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단다.
나 역시 각종 건강보험에 들라는 전화가 올 적마다 ‘힘들게 전화하지 마시라. 나는 보험 안 들고, 아프면 그냥 죽을 테니 기운 빼지 마시라’고 답변하는데 그래도 내 사후까지 보장해주겠다고 불철주야 다이얼을 돌리느라 애쓰는 사람들인지라 ‘젊은 사람들이나 보험 많이 들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기 바란다’는 축원으로 전화를 끝낸다.
우리 세 부부는 휴천재로 돌아와 과일과 커피를 하며 그동안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상주에서 갓 도착한 도메니카도 합석하였다. 경상도에서 사는 우리가 경상도 대구 김천 상주 부산 함양에 사는 주민들을 어떻게 의식화시켜야 민주화하는 정치상황을 받아들이게 만들까 답답하다는 얘기다.
꼴통아저씨와 사는 어느 여교우는 ‘남편과 함께 다니면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가 남편이 불같이 화를 내고는 지금까지도 부부간에 말을 않더란다. ‘교황이 만일 북한을 방문하면 난 더 이상 성당 안 나오겠다!’ 큰소리치는 교우들을 만나면 그들의 증오에서는 고인 늪처럼 냄새가 고약하더라는 한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