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일요일, 비
창문을 두드려 대는 빗소리에 밤새 잠이 설었다. 오늘은 주일이니 저 꼬맹이들을 앞세우고 성당엘 가려면 내가 더 바쁘다. ‘빨리 먹어라!’, ‘빨리 입어라!’, ‘빨리 챙겨라!’ 외국에서 두세번만 한국 관광객을 맞은 사람이라면 가이드의 입에 붙어 있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모를 수가 없다.
저 80년대에 이탈리아 오스티아에서 우리와 같은 아파트 4층에 살던 친구 까르멜라네 아들 시모네는 내가 빵고를 채근하는 소리를 듣고 두고두고 그 말을 써 먹었다. 빵고가 함께 놀다 화장실에 가서 시간을 지체하면 “빵고, 빨리 똥싸!”라고 놀리더니만 그 뒤로도 몇 해 만에 한 번씩 만나면 ‘빵고, 빨리 똥싸!’라고 인사했다. 시모네는 지독한 장난꾸러기로 한번은 전화기가 울리고 고장인지 저쪽 소리가 잘 안 들리자 송화기에 대고 이탈리아말에 존재하는 모든 쌍욕을 다 늘어놓았다. 하필 아빠가 회사에서 집으로 한 전화기는 통화스피커를 켜둔 상태였다!
그날 밤 아빠가 집에 들어서며 “너 뭐랬어? 내 뼈를 추려주겠다고!”하며 고함을 지르자 그 꼬마는 자기 뼈가 아빠 손에 추려지지 않겠다고 신발을 들고 우리집으로 달려 내려와 현관문을 두드렸다. “사람 살려!”를 외치며…
또 한 번은 어리숙한 여섯 살짜리 한국인 꼬마 빵고를 꼬셔 돈을 반땅 해서 자기 친구한테서 포르노 잡지를 샀다. 자기는 3000리라를 내고 빵고에게는 2000리라를 내게 했다는데 자기가 돈을 더 많이 냈으니 소유권은 자기가 갖고 빵고에게는 언제라도 볼 수 있는 열람권만 주었단다. 빵고가 ‘잡지의 5분의 2의 소유권’을 주장하자 분쟁이 났고 그 말다툼으로 제 엄마에게 발각되어 흠씬 두들겨 맞고 잡지를 몰수당하고 말았다.
빵고더러 왜 그랬냐고 내가 물으니 ‘시모네가 사자고 했다. 그런데 자기한테 2000리라 어치를 보여주고서 자기네 친구 루까에게 되팔기로 미리 약속한 터여서 자기 투자금 2000리라를 달랬다 싸움이 났다’는 얘기였다. 그때 빵고가 한 말은 ‘담엔 꼭 혼자서 사겠다’는 다짐이었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회는 온성싶지 않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포르노 잡지 동업자’ 한 사람은 로마에서 세무경찰이 되었고 이름난 사진작가가 되어 미녀들의 사진을 실컷 찍어 올리고, 어리숙한 한국 꼬마는 신부가 되어 있다.
오늘 아침도 내가 시우한테 ‘빨리 먹으라’는 말을 열 번쯤 하자 어멈과 아범이 ‘걔들은 빨리 먹으라고 하면 더 못 먹으니 아무 말도 말라’고 당부한다. 요즘 시쳇말로 ‘까도 내가 깐다!’
며칠 전 제주에서 빵기 빵고가 보스코와 함께 맥주를 마시다가 소금맛을 가미한 아몬드를 보스코가 몽땅 접시에 쏟아 놓는다고 두 아들이 제 아빠를 구박하자 내가 곁에서 ‘내 남편 구박하지 마!’라고 했더니 둘이 동시에 푸하하 배꼽을 잡고 웃음을 터뜨린다. “엄마, ‘까도 내가 깐다!’ 이 말씀이죠? (그렇게나 잔소리가 심한 엄마가?)”
우리 며느리가 워낙 말이 없고 숫기가 없어 오늘 아래층 총각들이 무심하다고 오해한 듯해서 내가 한참 며느리를 변명했더니 2층에 올라온 내 귀에 보스코가 조용히 한 마디 한다. ‘까도, 내가 깐다?’
오늘 성당에서는 시아를 내 옆에 앉히고 시우는 뒷줄 제 엄마 아빠 사이에 놓으니 아무 탈 없이 평화롭게 미사를 한다. 시아는 성가 책에서 처음 보는 노래도 악보 따라 노래를 부르고 시우는 드뎌 형아를 빼놓고 엄마 아빠를 독점했다는 포만감으로 대만족이다. 시아네 네 식구가 점심과 저녁을 친구네랑 하느라 외출해서 집안 청소를 하고 내리는 비를 보노라니 그 고요함이란!
3시에 한목사와 엄엘리가 집에 와서 나를 위해 기념달력을 편집한다며 보스코와 의견을 나눈다. 아내를 위하여 눈물겹게 열심인 보스코를 위하여 두 사람은 장장 밤 11시가 넘어서야 초벌일을 끝내고 떠났다. ‘다들 왜 나에게 이렇게 잘해주는거야?’ 행복한 비명을 지르는 전순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