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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시대’를 겪어 밥 한 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마음
  • 전순란
  • 등록 2019-08-02 15:38:12
  • 수정 2019-08-02 15: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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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1일 목요일, 흐림



달력은 어느새 8월로 넘어왔다. 한 해의 3분의 2가 지났다. 보스코 인생은 시속 80, 내 인생은 시속 70으로 굴러내린다. 


오전에 평화방송에서 보스코에게 “평화 단상”이라는 2회분 강연을 녹화한다고 했었다. 10시 30분에 사람들이 온다는 약속이 있어서 손님맞이 청소를 하고 9시 30분에야 아침을 먹기 시작했는데 대문 벨 소리가 났다. ‘아무리, 벌써 왔을 리가?’ 하고서 인터폰을 보니 그 사람들이 맞다. 


보스코 얘기로는 조명을 설치하고 카메라를 알맞게 자리 잡으려면 테스트도 해야 해서 일찍 왔을 꺼란다. ‘그렇게 복잡할 것 같으면 당신이 방송국으로 가지 그랬어요?’ 라니까 박봉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따순 점심이라도 한 끼 대접하고 싶었다나?


역시 ‘인공시대’를 겪어 밥 한 끼의 가치를 아는 사람의 마음이다. 우리가 요즘 사람들과 스치듯 만나 서로 주고받는 부질없는 한마디가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인데 그 밥 한번‘의 만남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보스코가 모처럼 TV에 출현하며 의상에 신경을 쓴다. 다른 땐 그가 강연을 가면 내가 ‘이 옷 입어라.’ ‘이 넥타이가 좋다,’ 잔소리를 하고 ‘사람들이 내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들으러 오지 내 패션을 보러 오나?’ 라며 대꾸하던 사람이 ‘여보! 어제 그 새 한복 입으면 멋져 보이지 않을까? 딸내미들 좋아하게? 정장을 할까? 더우니까 남방을 입을까?’ 물어온다. 그답지 않은 몸치장에 내가 깔깔거리니까 면구스러운지 슬그머니 정장에 넥타이를 맨다. ‘늘 하던 대로 할래….’


제네바에서 온 손주가 한국에 와서 제일 즐겨 먹는 음식이 파스타. 그래서 오늘 점심준비를 하면서 손주들이 돌아와 먹을 파스타 소스를 한꺼번에 준비했다. 



① 잘 익은 토마토 30개를 끓는 물에 데쳐 껍질을 까고, 다져서 물을 짜낸 다음 살만 발라낸다. 


② 마늘과 매운 고추를 올리브유에 볶다가 쇠고기와 돼지고기 반반을 다진 듯 썰어 넣고 양파 함께 마저 볶는다. 


③ 거기다 토마토를 넣고 샐러리를 넣어 누린 맛을 상쇄시킨다. 


④ 한시간 쯤 밍근한 불에 끓이다 베이질을 넣어 10분 정도 더 끓이면 완성된다.



칼라브리아가 고향인 친구 카르멜라에게 배운 조리법이고, 그미의 어머니 이사벨라의 파스타도 똑같은 맛이었다. 로마 갈 적마다 아빠와 함께 카르멜라를 찾아가 파스타를 두 접시씩이나 먹고 온다는 시아가 하는 말. 자기가 먹어본 중에 제일 맛있는 파스타가 카르멜라 할머니가 만든 것인데 이상하게 우리 할머니와 똑같은 맛이란다. 손주 칭찬에 신나서 오늘도 내가 흥분했나보다.


오후 3시에는 내 차례. 가톨릭프레스 염은경, 문미정 두 기자가 내 인터뷰를 하러 왔다. 이번 8월 18일에 ‘지리산휴천재일기’ 10년을 마감하며 가톨릭프레스와의 인연도 놓을 참인데, 그 동안의 소회와 궁금한 이야기를 물어왔고 나 역시 일기 인생을 마무리하는 심경으로 그 대담에 응했다.


재주 없는 글을 쓰느라 밤마다 두어 시간씩 씨름을 해왔고, 그 일기에 (대부분) 내가 찍은 사진을 뽑아서 줄이고 인터넷에 올려주느라 밤마다 고생하면서도 짜증 한 번 안 낸 보스코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더구나 미진한 이 일기를 읽고 공감하고 대화를 보내준 분들, 또 전재해 준 가톨릭프레스 식구들… 모두 고맙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점심도 못 먹고 와서 인터뷰한 두 여전사들은 찬밥으로 허기를 메우면서 내 일기의 식탁을 사진으로 볼 적마다 ‘언제 우리도 저런 밥상에 앉아 먹어 볼까?’ 했다던 문기자의 장난스런 두 뺨이 몹시 귀여웠다. 언니다운 염기자가 아우를 데리고 함께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저들은 한 식구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 또한 왜 사람들만 보면 배고파 보이고, 뭔가 먹여야 마음이 편할까? 나 역시 보스코와 같은 ‘인공시대 사람’임에 틀림없다.



[필진정보]
전순란 : 한국신학대학 1969년도에 입학하였고, 전) 가톨릭 우리밀 살리기 운동 공동대표, 현) 이주여성인권센터 상임이사 / 두레방 상임이사이다. Gustavo Gutierrez의 해방신학을 번역했으며, 전 서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성염(보스코, 아호: 휴천)교수의 부인이다. 현재 지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며 그곳을 휴천재라 부른다. 소소한 일상과 휴천재의 소식을 사진, 글과 함께 블로그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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