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월요일 : 민수 11,4ㄴ-15; 마태 14,13-21
오늘은 신앙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미사 중에 거행되는 성체성사의 한복판에서 신앙의 신비에 대해 묵상합니다. 빵과 포도주를 축성한 사제는 “신앙의 신비여!”라는 외침으로 환호하고, 교우들은 이 환호에 대하여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으로 응답합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성체성사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신비의 먼 배경과 가까운 배경이 되는 두 사건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먼 배경은 그 옛날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시나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겪었던 만나를 먹은 사건이고, 가까운 배경은 이천 년 전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 근처의 들판에서 오천 명이 넘는 많은 군중을 상대로 불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이신 빵의 기적 사건입니다.
만나는 일종의 곡식 알갱이였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이 굶주리지 않도록 하늘에서 내려주신 음식이었습니다. 농사지을 땅도 없었고,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던 그 백성은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이 음식을 거저먹을 수 있었는데, 만나의 사건에 대한 보도를 보면 백성들은 같은 음식만 먹어야 했던 현실이 지겨워서 고기와 생선과 각종 채소가 없다고 불평을 했고 이 불평을 도맡아서 들어야 했던 모세도 하느님께 원망 섞인 푸념을 했습니다.
이 고사(古事)를 기억하고 있던 이스라엘 후손들이 만나를 내리게 하여 백성을 먹여 살렸던 모세의 능력을 거론하며 예수님께 대들었습니다. 마침 그분의 가르침을 며칠째 듣고 있던 군중에게 먹을거리가 떨어졌으므로 그분은 군중 속 한 소년이 가져온 보리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원재료로 해서 그 많은 군중이 다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러시면서 하늘에서 내렸던 만나라는 음식은 모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내려주신 것이라고 바로잡아 주셨고, 당신도 하느님의 권능으로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는 것이라고 일깨워주셨습니다.
여기서 만나의 사건과 대비되는 매우 중요한 그리고 혁명적인 진전이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하느님의 권능으로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실 수 있었던 그 권능을 제자들에게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기적을 일으키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셨고, 기적을 일으킨 후에 남은 빵과 물고기만 해도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차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처럼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사람들을 하느님의 기운으로 먹여 살리는 열두 광주리입니다.
미사의 성체성사에서 빵과 포도주가 많아진다거나 물리화학적인 성분이 변화되는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빵과 포도주를 통해서 당신의 십자가 희생에 담긴 사랑을 본받으려는 신자들의 믿음이요 사랑입니다. 물질이 아니라 인격에서, 빵이 아니라 믿음에서 사람들은 하느님의 기운을 얻고 생기를 찾으며 생의 희망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에서 일어나는 거룩한 변화요 신앙의 신비이기 때문에 사제는 이를 믿고 기쁨의 환호로 외치는 것이고 교우들은 이에 믿음과 희생의 다짐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날에 최후의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결정적으로 성체성사를 제정하실 때에 간절히 원하셨던 것도 믿음과 희생의 다짐으로 제자들이 응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가지 양식으로 이루어진 이 응답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응답하는 교우들은 자신들도 이 십자가 죽음으로 사랑의 희생을 실천하기를 다짐하면서 부활에 참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는 것입니다.
당신을 기억하여 파스카 과업이 계승되기를 못내 바라셨던 예수님의 뜻대로, 믿는 이들이 거룩하게 변화되는 일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 일이 신비롭게도 지구상 곳곳에서 세상 끝날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 현상이 기쁨의 외침으로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이 신앙의 신비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의 마음과 삶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고 그 마음과 삶을 다스리시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기적의 현실입니다. 알아보는 눈과 알아듣는 귀가 필요합니다. 적어도,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처럼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불만을 일삼는다거나 제자들처럼 배고픈 군중을 돌려보내어 각자 해결하라고 내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체성사가 거행될 때마다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예수님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위임받아 신자들을 하느님의 기운으로 배불리 먹여야 하는 교회의 책임으로, 또한 십자가를 내치지 않고 짊어짐으로써 부활하려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믿는 이들 안에서만이 아니라 온 세상에서 열두 광주리의 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