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8주간 금요일 : 신명 4,32-40; 마태 16,24-28
사람이 믿어야 할 진리와 지켜야 할 윤리
오늘 독서인 신명기 4장의 말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업적을 일깨워주심으로써 당신 존재를 알려주시고 당신의 계명을 잘 지키도록 당부하시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믿어야 할 진리와 지켜야 할 윤리를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인류에게 계시하신 셈입니다.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에서 증언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는 구약성경에서 전해주는 하느님의 존재와 업적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향해서 구원의 진리와 윤리로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임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고백해 온 전통에서 구약의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으로 강생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할 진리로 고백하는 한편, 하느님께서 명하신 계명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으로 그 정점에 달했으므로 이것으로 지켜야 할 윤리가 나타났다고 고백해왔습니다.
그래서 특히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서 16장에서 우리는 구약 시대 이래 계시된 하느님으로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믿고 그 뒤를 따라야 하며, 그분이 보여주신 사랑이 희생의 십자가이기 때문에 누구나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분을 따라야 함을 예수님께서 가르치셨습니다. 그 내용이,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믿을 진리와 지킬 윤리가 우리가 인생에서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그분이 보여주신 대로 자기를 희생하는 사랑을 십자가로 받아들여 살아가는 삶이 우리의 구원을 채웁니다.
사람은 저마다 인생에서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갑니다. 그리고 뒷사람들에게 발자취를 남기지요. 복음서들도 예수님의 발자취입니다.
해방 직후 38도선은 그어졌지만 아직 남과 북에서 미국과 소련이 군정을 실시하던 무렵인 1948년에 백범 김구 선생은 민족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지 않고 통일된 정부를 수립할 수 있도록 남북협상을 하러 38도선을 넘으면서 한시(漢詩) 한 편을 남겼다고 합니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어지러이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나의 발자국은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
백범은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의 동지들이었던 김일성과 북의 지도자들을 만나러 가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민족이 분단되는 사태만큼은 막아보려고 38선을 넘어갈 때 지녔던 마음가짐을 이 한시로 남겼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도 벌써 71년 전입니다. 그 후 이 땅에서 일어난 일은 우리 모두가 다 잘 아는 대로, 단독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그리고 전후에는 분단이 고착화되면서 적대관계가 이어져왔고, 한반도는 분단된 채로 지구상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냉전지대가 되었습니다. 북의 김일성은 소련의 무기 지원과 중국의 병력 지원을 받아 남침을 했고, 남의 이승만은 미국과 16개 유엔 회원국의 무기 및 병력 지원을 받아 반격을 했지만, 그 결과는 수백 만의 인명이 죽고 천만여 명의 이산가족이 생겨나고 국토가 폐허로 바뀌었으며 상호 적대감만 커졌을 뿐 양쪽의 영토 경계선은 38도선이 휴전선으로 바뀌었을 뿐 거의 그대로입니다.
남과 북의 사회를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공동선으로 건설하는 노력이 그 시작입니다.
백범과 달라도 아주 달랐던 김일성이나 이승만의 선택은 후세의 사람들이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될 발자취를 남긴 셈입니다. 분단의 역사적 책임이 있는 일본이나 군사적 책임이 있는 미국의 선택에 대해서는 여기서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선택이 더 중차대하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식민통치로 떨어진 백십 년 전이나 남북이 분단된 70여년 전과 지금이 다른 차이점은 분명합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는 자각과 함께 그렇게 결정할 수 있는 물리적 힘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남과 북의 사회를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공동선으로 건설하는 노력입니다.
정의의 명령은 인류 보편적인 윤리이고, 사람 누구나 믿어야 할 진리와 지켜야 할 윤리에 따라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각자의 국가에서 공동선이 구현된 사회를 이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선택은 우리 후손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는 발자취여야 합니다. 그 발자취가 진리에 부합하고 사랑과 정의의 윤리로 세우는 공동선의 십자가이기를 기도합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사제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파견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