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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램프만과 함께한 날들 - [사건과신학] ‘홀로-나’가 아니라 ‘더불어-나’가 되는 일
  • 정경일
  • edit@catholicpress.kr
  • 기사등록 2019-09-19 14:07:59
  • 수정 2019-09-19 14: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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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학위원회>는 신학 나눔의 새로운 길을 찾아 ‘사건과 신학’이라는 표제로 다양한 형식의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매달, 이 사회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사건 가운데 한 가지 주제를 선정해 신학 이야기를 나누는 ‘사건과 신학’. 이번 주제는 ‘바캉스’입니다. - 편집자 주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 첫 해, 내 일상은 집과 학교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것이었다. 세계적 관광지이며 '브로드웨이'가 상징하는 문화 예술의 용광로인 도시에 살면서도 뉴욕을 즐길 시간적, 심리적 여유가 없었다. 세미나마다 독서와 에세이 과제가 많아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책 읽고 생각하고 글 쓰며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도서관에 제일 먼저 들어갔고 제일 나중에 나왔다. 내가 즐겨 앉는 자리는 마치 내 ‘지정좌석’처럼 되어서 어쩌다 다른 누가 거기 앉기라도 하면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아무개 자리’니 비켜달라며 너스레를 떨곤 했다. 


그렇다고 해서 공부만 하며 건조하게 지낸 건 아니었다. 유학은 내게 인생의 ‘쉼표’이기도 했다. 이십대 젊은 날을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면서 열정만큼이나 열병도 앓았던 나는, 타버릴 듯 과열된 삶을 식히기 위한 내적 성찰과 정화의 절박한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유학 첫 학기에 선택한 게 ‘명상’ 수업이었다. 마음의 화기(火氣)를 가라앉히고 나의 존재와 삶을 깊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한 학기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아침마다 침묵을 따라 낯선 내면의 세계로 걸어 들어갔다. 고요하고 서늘한 치유의 날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유학 생활에 숨통이 조금 트였지만 내 일상은 여전히 단조로웠다. 친구들은 학업 틈틈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즐기는데 나만 붙박이 식물처럼 앉아 공부와 명상만 하며 지내니 답답한 기분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학교 대예배실에서 명상을 마치고 정원으로 걸어 나왔는데, 그날 함께 명상했던 ‘뉴요커’ 친구 하나가 내게 말했다. “그거 알아? 여기가 뉴욕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옥내 정원인 거?” 그 순간 내 몸과 마음이 나비처럼 자유롭고 가벼워졌다. 그랬다. 바로 여기가 ‘뉴욕’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만 하느라 뉴욕을 경험하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니라, 뉴욕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품고 있는 학교에서 공부와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첫 학기를 마친 후 명상 수업에 참여했던 친구 몇과 함께 명상 모임을 만들었다. 처음엔 느슨한 형태로 모여 명상하다, 점점 멤버가 늘어나면서 모임의 틀을 갖출 필요가 생겼고, 명상에 제일 열심이던 내가 자연스럽게 책임을 맡게 되었다. 그때부터 졸업할 때까지 공간 사용 신청, 일정 공지, 프로그램 기획, 비품 관리, 장소 준비 및 정리, 친교 등 명상 모임에 필요한 이런저런 일을 도맡아 했다. 외국인 유학생에게는 배로 힘든 일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 수고였다. 명상을 내가 준비하고 진행해야 했기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빠질 수 없었고, 그래서 더욱 꾸준히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임을 시작한 후 일 년 동안은 학교에서 가장 큰 공간인 제임스 메모리얼 채플(James Memorial Chapel)에서 명상을 했고, 그 다음부터는 작고 아담한 램프만 채플로 옮겨 수행을 이어갔다. 1929년에 만들어진 램프만 채플(Lampman Chapel)은 작지만 표정이 풍부한 공간이었다. 그곳의 세 스테인드글라스 창에는 각각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빌라의 테레사, 그리고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가 엄숙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독특하게도, 가톨릭과 개신교의 위대한 그리스도인들을 함께 기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단에는 정교회의 이콘들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다른 모양, 다른 색채의 종교적 상징들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램프만 채플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영적 에큐메니칼 공간이었다.


이처럼 열린 정신과 분위기만큼 램프만 채플에서의 모임도 다양했다. 일요일 하루만 하더라도, 오전엔 정교회 예배가 있었고 오후에는 ‘구 가톨릭(Old Catholic; 교황권을 부정하는 그리스도교 분파)’ 교인들의 미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른 저녁엔 우리 명상 모임이 있었고 바로 이어서 진보적 가톨릭 그리스도인들의 정기 저녁 미사가 있었다. 저녁 미사를 이끄는 신부님은 내게 이냐시오 영성수련을 지도해 준 분이기도 한데, 가끔 명상 수행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공동으로 명상-미사를 하기도 했다.


램프만 채플에서의 영적 경험도 다채롭고 풍요로웠다. 그곳에서 읽고 묵상했던 성서는 천지창조, 이집트 탈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초대교회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었다. 램프만에서 맛본 관상(contemplation)은 이미 하느님 안에 있기에 하느님을 찾지 않아도 되는 신비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램프만에서의 명상은 종교와 인간의 가장 보편적 언어는 ‘침묵’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그런 램프만 채플에서의 경험들 중 지금까지도 나의 수행을 지탱해주고 있는 두 가지 특별한 ‘아하’ 경험이 있다. 하나는 ‘연결’의 관계적 경험이고 다른 하나는 ‘지금’의 시간적 경험이다. 


고요한 가운데 사람들과 함께 앉아 명상하는 것이 늘 평화롭고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호흡이 잘 맞지 않거나 기운이 너무 다른 이들과 앉아 있으면 수행의 조화와 균형을 잃기도 했다. 습관적으로 명상에 늦게 와서 흐름을 깨뜨리는 이도 있었고, 명상 중에 연신 한숨을 내쉬거나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 분위기를 흩트리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면 홀로 수행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욕망하기도 했다. 고요와 고독도 욕망과 집착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가끔, 다른 호흡과 기운의 사람들이 나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때가 있었다. 그러면 우리 각자의 호흡과 침묵과 미소가 마치 한 몸에서 나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명상이 더 깊어지면 램프만 안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바깥사람들과도 내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존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아니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우리는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 ‘또 다른 나’인 타인에 대한 자비심이 샘솟았다. 나와 무관한 존재는 아무도 없다는 진리를 경험하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공감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램프만은 명상의 목적은 ‘홀로-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나’가 되는 것임을 깨우쳐 주었다.


램프만 채플에서의 두 번째 아하 경험은 ‘지금’의 힘이다. 램프만의 분위기는 대체로 조용했지만, 가끔 외부에서 발생한 소음이 채플 안으로 들어오는 때도 있었다. 하루는 채플 건너편 강당에서 뜨거운 성령집회가 명상 모임과 같은 시간에 있었다. 집회 내내 열정적인 찬양과 통성기도가 쉼 없이 이어져서 도무지 명상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오늘은 명상을 그만 두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그날 명상을 이끌던 신부님이 우리의 동요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그러나 단호히 말했다. “저분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하십시오.”


우리가 할 일은 명상이었다. 우리는 다시 호흡으로 돌아왔다. 밖에서의 소리는 계속되었지만 내면은 한결 고요해졌다. 그러다, 문득, 소리와 소리 사이에, 불과 일이 초였을 뿐이지만, 모든 소리가 소멸되는 절대 정적의 순간이 있었다. 그 일이 초의 정적이 몇 시간의 정적과 같은 밀도로 느껴졌다. 그것을 경험한 후로 나는 너무 바빠서 수행할 시간이 없다는 소리를 더 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삶이 아무리 분주해도, 상황이 아무리 복잡해도, 환경이 아무리 소란해도, 언제 어디서나 최소한 몇 분, 아니 단 몇 초의 밀도 있는 ‘지금’을 경험할 수 있음을 램프만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가끔 뉴욕을 생각하면 타임스 스퀘어와 센트럴 파크와 브로드웨이와 메트로폴리탄 뮤지엄과 자유의 여신상보다도 램프만 채플이 먼저 떠오른다. 아마도 램프만이 내게 뉴욕이었나 보다. 다른 한편으로는 램프만은 내게 수도원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수행을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좋은 수행자는 아무 데도 없는 곳(nowhere)을 찾아 헤매는 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now-here)를 사는 자다.


지난겨울, 학교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학교에 새로 빌딩을 짓느라 램프만 채플을 폐쇄하면서 램프만의 ‘은퇴 예배’를 한다는 소식이었다. 은퇴하는 사람의 헌신을 기억하며 감사하듯 90여 년 동안 많은 이들의 영적 공간으로 헌신해온 램프만 채플을 기리는 예배였다. 그 소식을 읽는데, 마치 오랜 ‘친구’와 헤어질 때 느끼는 서운함의 감정이 일어났다. 그리고 램프만 채플에서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램프만은 내가 사용했던 공간이 아니라 나와 함께했던 친구였다는 사실을. 램프만은 내 수행의 도량(道場)이 아니라 도반(道伴)이었다. 나는 램프만 ‘안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램프만과 ‘함께’ 있었다. 오늘 내게 램프만은 어디일까, 누구일까?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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